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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특별기획] 탈출에 성공하다

사진: Unsplash의 lucas Favre

[정전협정 70주년 특별기획]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20)

아침 해가 눈부시게 떠올랐다. 나는 해 뜨는 곳에 왼팔을 펼치고 동서남북을 그려보며 남쪽 방향으로 갈 길을 정하고 일차 목표지점을 정했다. 우선 앞 산 봉우리를 향해 계곡을 내려가서 다시 목표 고지의 정상으로 올라가는데 하루 종일 걸어야 했다. 너무나 힘이 들었다.

직선거리는 불과 200m 정도인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이제는 악착같이 살아서 대한민국의 품에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는 시간이 너무 걸릴 것이고 우선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것이다.

도로 기슭을 따라 남하할 것을 결심하고 진로를 모색 중인데 높은 산 능선이 남쪽으로 뻗어 있었다. 능선을 따라 걷고 있는데 능선 바로 밑에 여러 명의 인민군 병사들이 보였다. 가까이 접근해보니 모두 죽은 상태였다. 시신은 상당히 부패했지만 군관으로 보이는 장교의 허리에 권총이 보였다. 망설임 없이 권총을 빼냈다. 나의 보신에 꼭 필요한 도구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화창한 날씨에 달이 밝아 능선을 걷기에 좋았다. 내가 얻은 권총은 소련제로 인민군 따발총 실탄을 사용하게 되어 있어 실탄을 구해야 했다. 우선 확보한 권총에는 실탄 다섯 발이 장진되어 있었다. 오르막길 능선의 소나무 밑에 사람이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몸을 낮추고 동태를 살폈다.

상당한 시간이 경과 했는데도 꼼짝하지 않고 있어 일단 권총 노리쇠를 당겨 발사준비를 하고 기어갔다. 아주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했는데도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살펴보니 국군 이등상사가 카빈총을 메고 배낭을 짊어진 채로 앉아 있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접근해서 권총으로 그의 철모를 걷어내며 ‘손들엇’하고 위협을 가했으나 역시 꼼짝하지 않았다.

사실 살아 있는 자가 두렵지 죽은 자는 두렵지 않다. 확인해 보니 소나무에 매인 채 죽어 있었다. 정황으로 미뤄볼 때 인민군의 소행인 것 같았다. 나는 무엇보다 먹을 것을 구해야 했다. 그의 배낭을 열어보니 항고에 마른 명태를 겹겹이 집어넣고 고추장을 발라 재워 놓았다. 순간 입맛이 당겼다. 항고를 들고 슬금슬금 능선 아래 숲에 들어가 단숨에 맵고 짠 명태자반을 먹어 치웠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짠 명태조림을 먹은 탓에 갈증이 생겨 물을 못 먹으면 죽을 것 같았다. 높은 산꼭대기에서 어디서 물을 찾겠나 할 수 없이 산을 내려와 사방을 둘러보니 물이 가득한 웅덩이가 눈에 띄었다. 웅덩이 앞에 엎드려 정신없이 물을 먹었다. 그리고 숨을 돌려 눈을 들어보니 눈앞에 농구화가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웅덩이에 인민군이 거꾸로 박혀 있는 거였다.

어차피 물은 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돌아서서 산 위로 올라가는데 산세가 몹시 가파르다. 바위틈에 있는 소나무 한 그루를 잡고 올라가는데 불과 100m 아래에서 ‘동무…’ 두런두런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뒤를 내려다보니 인민군 한 명은 전화를 하고 있고, 또 한 명은 아시보 총을 어깨에 메고 나를 쳐다보는 듯했다. 나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인민군의 처분만 바라며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데 아무 말 없이 일어나더니 그곳을 떠나 버렸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가리어 주셨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목격하며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멍하니 소나무를 잡은 채 한참을 매달려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아래쪽 물이 고인 웅덩이를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 웅덩이는 필연코 아군 포탄의 낙착지점으로 해석된다. 왜 하나님은 여기에 웅덩이를 미리 만들어 놓으셨을까?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너를 굳세게 하리라(사 41:10)

하나님 이토록 지켜주시니 감사합니다. 수용소에서 빡빡 깎았던 머리가 2cm 정도 자랐고 수염도 덥수룩하니 내 모습이 영락없는 빨치산 공비 같다고 느껴졌다. 이틀 동안 산중에서 헤매다보니 다시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에는 보슬비가 내려 바위 틈에서 새우잠을 잤다.

밤낮 이틀이면 양양을 가고 오건만 못가는 이 심정을 그대는 알고 있을까. 당신과의 수많은 사연들을 이 깊은 산자락에 묻어 버리고 무릎을 꿇고 당신의 안녕을 빕니다. 나는 이토록 분에 넘치는 하나님의 가호를 받고 있는데…. 꼭 살아서 당신 곁에 가리라 다짐을 했다.

산봉우리에 있는 바위에 앉아 있으니 따사로운 태양 빛이 내려 쪼이는데 입고 있는 인민군 작업복이 젖었다 말랐다하며 도저히 몸이 가려워 견딜 수가 없었다. 걸치고 있는 옷을 몽땅 벗어 보니 이가 말도 못하게 기어 다니고 있었다. 심지어 하얗게 알을 번식하고 있었다. 내 손으로 이를 일일이 잡을 수도 없어 무조건 옷을 바위에 태질을 쳤더니 수없이 많은 이가 떨어졌다. 내가 짐승같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을 넘고 고개 넘어 험한 길을 헤치며 매일매일 자유 대한민국 땅을 찾아 남쪽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사리원을 탈출한지 약 10여 일이 지났지만 아군이 어디까지 후퇴했는지 아니면 어디까지 북으로 진격했는지 가르쳐 줄 사람은 내 곁에 아무도 없다.

초조한 마음이 들어 산에서 내려와 도로 변을 타고 남하하기로 결심했다. 평지로 내려와서 도로변 개울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야하는데 남북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높은 고지에서 판단한 방향은 정확한 듯 했다. 다행히 사리원 수용소에서 교육을 받은 독도법 때문이었다.

교육 중에 들은 이론이 생각났다. 첫째 고산지대에 있는 수목의 70%는 그 가지가 남쪽으로 자란다고 했다. 이것은 실제 100% 정확했다. 강과 하천에는 푸른 청태 이끼가 끼는데 청태는 반드시 북쪽으로 낀다는 것이다.

실개울을 따라 가는데 길옆에 우뚝 서 있는 이정표를 발견하고 사방을 경계하며 살폈다. 인제 48km라고 표시되어 있다. 드디어 남쪽 땅이다. 나는 그 간선도로를 나의 생명선으로 명심하고 낮에는 숲속에 숨어 있다가 밤이면 그 길을 따라 인제 방향으로 남하하기로 했다.

문제는 오나가나 먹을 걸 찾아야 했다. 하루는 개울가에 중공군이 버린듯한 군마가 쓰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 지난날 인민군과 함께 후퇴하면서 인민군들이 말고기를 먹는 걸 본 적이 있다. 가지고 있던 칼로 말 뒷다리를 찔러보니 아직 부패하지 않은 것 같았다.

사실을 확인한 후 야산에 올라가 마른 싸리나무 가지를 꺾어 불을 피워 손바닥 2개 정도의 살을 베어 보니 말고기가 빨갛다 못해 자주색 빛이다. 절박한데 달고 쓴 걸 가릴 때가 아니다. 말고기를 불에 구워서 맛있게 먹었다. 이것도 독도법을 배울 때 알게 된 거였다. 마른 싸리나무는 연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원도 화천 땅을 지나고 높지 않은 고갯길을 오르는데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전혀 인적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고갯길 정상에 오를 무렵 중공군 10여 명이 마주 내려오면서 나를 보고 말을 걸었다.

“이승만 따따, 이승만 따따” 내 등을 밀며 북쪽으로 도망가자고 하는 것이다.

“이승만 따따”라는 것은 한문으로 풀이하면 국방군(이승만 대통령)이 많이(多多)오고 있으니 빨리 북으로 함께 후퇴하자는 뜻이다. 나는 이때도 빠른 판단력과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중공군에게 고맙다는 표정을 지으며 후퇴하는 중공군과 같이 뛰었다.

얼마나 오던 길을 뛰었는지 지면에 어둠이 깔리고 중공군도 기진맥진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내가 중공군에게 빨리 가자고 한 놈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그들은 그런 내게 먼저 가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먼저 가겠다는 시늉을 하면서 무작정 북쪽으로 달렸다.

얼마만큼 뒤돌아 왔을까. 이미 밤이 되어 나는 도로변 개울 숲에 숨었다. 한참을 지나 후퇴하는 중공군을 보려고 기다렸다. 잠시 후 그 무리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중공군을 따돌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나는 또 다시 남쪽으로 발길을 돌려 중공군을 만났던 지점까지 오는데 성공했다. 밤이 깊어 하룻밤 의지할 바위틈을 찾았으나 마땅한 곳을 발견하지 못하고 잡념에 쌓여 있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새우잠을 자는데도 이력이 생겨 깜박 잠이 들었는지 날이 밝은 후에야 잠에서 깨어났다.

사리원 수용소 탈출 이후 주로 배를 채웠던 것은 도라지와 더덕 그리고 송구(소나무 가지의 단물)였다. 그런 걸로 배를 채운 탓인지 손발이 부어 있고 만져보니 살이 찐 것 같이 느껴졌다. 변비까지 생겨 며칠 전부터 변을 볼 수가 없다. 얼굴이 축축하게 부풀어 있어 비벼보니 송구를 먹다가 말라붙은 송진이 비에 젖어 때가 밀리듯 마구 떨어졌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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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학 | 1934~2013. 충남 단양 생(生). 학도병으로 6.25전쟁 참전. 삼미그룹 총무과장 정년퇴직. 서울 노원구 국가유공자수훈회 사무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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