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DAP, 50여년전 日이민자 공동체 마약 오남용 사망사고 계기 시작
직원 30% 중독경험자·입소자 공동체 역할 부여…“청소년 치료과정에 학교 시스템 필요”
LA한인타운 치료시설 ‘KYCC’…“韓, 중독자를 범죄자로 보는 시선 바꿔야” 촉구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뭔지 아세요? 마약중독자들의 완치율이 얼마나 되냐는 거예요. 이곳을 퇴소하고 나서 다시 연락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치료가 실패했을까요? 아닙니다. 이제는 마약을 다시 하더라도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는 알게 됐다는 게 달라진 점이죠.”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부지역에 있는 민간 약물 중독 치료시설인 ‘아시아계 미국인 약물남용 프로그램'(Asian American Drug Abuse Program·AADAP).
이곳에서 프로그램 책임자로 일하는 로렌 리(58·한국명 이방락)는 지난달 26일 취재팀과 만난 자리에서 마약중독자의 재발문제를 두고 이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재발은 중독 치료에서 거쳐 가는 과정일 뿐 실패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그는 AADAP에도 중독 치료를 받다 ‘단약’을 선언하고 유쾌하게 시설을 나섰다가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만큼 중독치료는 시설에서 치료받는 기간이 중요하며, 그 기간이 길면 길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는 마약 중독자들이 다시 일을 할 수 있게끔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친구들이 나가서 마주하고 힘들어하는 건 사회적 편견”이라고 지적했다.
로렌 리가 몸담은 AADAP는 1970년대 초 일본 이민자 공동체에서 벌어진 마약 오남용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당시 사건으로 일본인 10여명이 사망했는데, 이들이 속해 있던 공동체는 미국 정부에 마약 치료를 위한 프로그램 설치를 적극 요청했다.
미국 정부 지원을 받은 일본 이민자 공동체는 마약 온상지나 다름없었던 한 모텔을 사들여 AADAP를 시작했고, 이곳은 시간이 지나며 중독 전문 치료 시설로 자리 잡았다.
취재팀이 로렌 리와 함께 둘러본 AADAP는 50년이 지난 시간에도 과거 모텔 내부가 연상될 정도로 변한 것이 많지 않아 보였다. 1·2층을 채운 방들은 여러 명이 공동 거주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남성과 여성의 거주 공간을 분리하되, ‘몰래 투약’을 방지하고자 누구도 홀로 방을 사용하는 일을 금하고 있다.
중독자들은 이곳에서 3∼6개월씩 머물며 치료·재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이들은 매끼 식사를 준비하는 요리팀, 청소를 전담하는 서비스팀, 시설 수리를 맡은 관리팀, 옷가지 세탁을 전담하는 세탁팀 등으로 역할을 나눠 맡아 공동체 생활을 이어간다.
이런 프로그램의 목적은 중독자들이 마약으로 잃어버렸던 자신감, 성취감을 회복해가는 것을 돕는 데 있다고 로렌 리는 설명했다.
시설 안에는 약물중독 치료를 받는 부모가 어린 자녀들과 만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놀이방도 있다. 건물 내부 작은 공간에 마련된 도서관은 입소자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 외부 기부를 통해 조성했다.
AADAP는 ‘치료적 공동체'(TC·Therapeutic Community)로 규정된다. 끔찍했던 약물 중독에서 벗어난 이들이 직접 프로그램 스태프로 참여해 중독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을 치유하는 리더 역할을 맡는 것이다.
현재 AADAP 직원 15명 중 3분의 1 정도가 이런 약물 중독 경험자다.
“마약 중독자들은 ‘네가 내 문제를 어떻게 알아?’라며 반감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널 이해해주는 사람이 여기 있다. 너도 약을 끊으면 이 사람처럼 사회적으로 지위도 올라가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요.”
한국에는 AADAP같은 입소형 민간 중독치료시설이 많지 않다. ‘다르크(DARC)’로 불리는 생활 치료공동체가 전국에 몇 개 있을 뿐이다. 중독치료 수요가 매년 늘어나는 데 반해 시설 공급은 크게 모자라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로렌 리는 “마약 중독은 치료가 굉장히 힘들기 때문에 많은 인력과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청소년이 치료받을 경우 학업을 마치기 힘든 탓에 치료 프로그램 안에 학교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 위치한 또 다른 민간 약물중독 치료시설인 ‘한인타운 청소년회관'(KYCC·Koreatown Youth Community Center). 이곳은 중독 예방은 물론 치료와 사회적 자립을 지원하는 경제개발 서비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KYCC는 미국 LA지역에서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하며 약물중독을 치료하는 몇 안 되는 시설이기도 하다. KYCC를 찾는 이들의 20∼30%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청소년부터 노년층까지 연령이 다양하다. 나머지 시설 이용자의 50%는 히스패닉계, 20%는 흑인으로 지역사회에서 대표 민간 중독치료시설로 자리 잡았다.
지난달 24일 KYCC에서 만난 한국계 1.5세 이원준(36) 약물사용 치료사도 로렌 리와 마찬가지로 중독 재발을 치료 과정의 하나로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씨는 지난달 24일 취재팀과 인터뷰에서 “약물 중독 치료에서 무척이나 흔히 일어나는 게 재발이다. 우리는 이를 회복의 일부분으로 본다”고 했다.
“무언가를 바꾸려 하면 생각하고, 준비하고, 행동으로 시도하고, 또 노력하려 애써야 하지만 그사이에는 재발이라는 문제가 끼어 있습니다. 저는 마약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약물을 사용한 분이더라도 존엄성을 잃지 않도록 하고, 회복에 대한 희망을 그 희망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봐요.”
그러면서 이씨는 “한국에서처럼 약물 중독자들을 범죄자로 보는 시선은 개선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곳에는 이씨를 포함해 약물사용 치료사 5명이 활동하고 있다. 각각 15명 정도의 중독자들을 상담하고 치료하는데, 그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기호용 마리화나가 합법화된 이후 (이곳을 찾는) 친구들의 연령층이 점점 더 낮아지고 있어요. 마약을 접하기가 쉬워졌지만, 약효는 더 강력해진 거 같습니다.”
이씨는 호기심으로 마약에 관심을 갖거나 시작하는 청소년에게 “평생 아프면서 살아갈 수 있기에 중독을 쉽게 보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13살 때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가 몇십년간 마약을 하는 친구도 있다. 청소년들이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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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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