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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믿음의 세 가지 요건

사진: Jessica Mangano on Unsplash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에는 필요를 느끼고, 만족하고, 헌신하는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필요를 느끼다.

사람이 구원의 절박함을 깨닫기 전에는 믿음이 시작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은 자신이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구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필요를 느낄 때까지, 그리고 그것을 깨달을 때까지 믿을 이유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사울이 교회를 핍박했을 때 그에게는 구원이 절실히 필요했지만, 그는 구원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다고 철저히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의 경우, 주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으로 그를 대면하셨을 때 비로소 그의 필요를 알게 되었고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필요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의 영적 필요를 몇 년 후 로마서를 저술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삶에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것과 그 해답이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 뿐입니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보통 사람이 느끼는 필요는 부분적인 것일 때가 많습니다. 첫 번째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삶의 어떤 목적이나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하고 보살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일 수 있습니다. 또는 내적 평화를 위해 용서받고 죄책감을 없애고 싶은 욕구일 수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자신의 필요에 대한 해답이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예수님을 찾아왔고, 그중 일부는 다소 사소한 문제로 찾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왔을 때 예수님은 그들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 주셨습니다. 그들은 육체적인 치유에 대한 필요만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영적인 치유도 제공하셨습니다.

필요를 느끼는 데는 구원의 교리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가 필요하지 않으며,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진실한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반면에 구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신학이 뛰어나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는 거리가 멉니다. 필요를 느끼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내용

사람이 구원받기 전에 구원의 교리에 대한 완전한 지식과 이해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죄로 인해 길을 잃었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영접해야 한다는 복음의 진리(고전 15:1-5)는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복음을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믿음’이라는 생각은 영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도 하늘에서 주님을 직접 뵙기 전까지는 하나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할 것이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이유를 알려주지 않고 믿음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예를 들어 히브리서 기자는 진리 위에 진리를 쌓아 올리며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약속한 메시아로 제시합니다. 또한 새 언약이 옛 언약보다 훨씬 우월하며, 옛 제사는 효과가 없었고, 오직 새 제사만이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음 이야기는 유명한 극작가 채닝 폴락의 이야기입니다.

폴락은 다른 작가와 함께 희곡을 공동 집필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폴락의 뉴욕 아파트에서 늦게까지 작업하고 있을 때, 그 친구가 폴락에게 “혹시 신약성경을 읽어 본 적이 있니?”라고 물었습니다. 폴락은 읽어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고, 그들은 이른 아침까지 일을 계속하다가 헤어졌습니다. 폴락은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순하고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던 친구의 질문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그는 마침내 침대에서 일어나 집안을 뒤져 신약성경을 찾았습니다. 마가복음을 다 읽은 후 그는 옷을 입고 새벽까지 거리를 걸어 다녔습니다. 나중에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는 “집에 돌아와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어.”라고 말했습니다. 막연하게 느껴지던 필요에서 출발한 그는 진리와 그 증거를 바라보고 믿게 되었습니다.

헌신

신앙의 절정은 헌신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 없이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은 구원받는 믿음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가로지르는 외줄타기를 즐겨 했던 줄타기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습니다(가급적이면 누군가를 등에 업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줄 타는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했지만, 정작 자신의 등에 올라탈 자원자를 구하는 데 항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사람들은 입으로는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을 주님께 맡기지 않습니다.

뉴헤브리디스 제도에서 성경을 번역하는 선교사였던 존 패튼은 원주민들에게 믿음이라는 단어가 없었기에 오랫동안 사역에 어려움을 격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위해 일하던 한 사람이 집에 들어와 큰 소파에 주저앉았습니다. 선교사는 그에게 방금 했던 일에 대한 단어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대답한 단어가 바로 패튼이 신약성경을 번역할 때 사용한 믿음에 대한 단어였습니다. 그 사람은 주저하거나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몸을 의자에 완전히 맡겼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소파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것을 확신하고 소파에 몸을 내 맡겼습니다.

신자도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그것만이 믿음이며 구원받는 믿음입니다. [복음기도신문]

존 맥아더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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