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외국인 속속 대피
현지인 속수무책… 대가족인 데다 휘발유도 없어 피란 불가능
“너무나 피곤하고 지쳤지만, 수단을 떠나기도 쉽지 않습니다. 대가족의 이동은 악몽과 같습니다.”
군벌 간의 무력 충돌이 격화하는 북아프리카 수단에서 미국과 프랑스, 사우디 등 외국인은 속속 대피하고 있지만 현지 주민들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매일 두려움에 떨고 있다.
현재까지 최소 400명이 죽고, 수만 명이 대피한 가운데 집에 남을 수밖에 없는 주민들은 음식이나 물조차 부족한 상황이다. 휘발유도 구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라마단(이슬람 단식 성월) 기간을 맞아 수단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영국에서 왔다가 현지에 갇혀버린 의사 이만 아부 가르자는 22일(현지시간) CNN방송에 현지 상황을 전했다.
그는 “너무 피곤하다. 지쳤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에너지를 다 소진했다”며 긴장 상태로 인한 피로를 호소했다.
수단 쿠데타 군정과 준군사조직 신속지원군(RSF) 간 교전이 이어지면서 현지 주민이 느끼는 공포도 연일 커지고 있다.
이만은 밤늦게 미사일로 추정되는 소리를 들었다며 “집 근처에서 아주 큰 소리가 두세 번 났고 아이들을 안심시키려고 코란을 읽기 시작했다”라고도 했다.
그는 가족들이 모두 불안에 떨고 있다고 했다.
그는 “편찮으셔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거실 창문 근처에서 벽이 있는 더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며 “딸도 큰 충격을 받았다. 96세인 할머니도 포격 소리를 듣고 흔들림을 느꼈을 정도였다”고 상황을 묘사했다.
그의 가족들은 특히 필수 의약품을 구할 수 없고, 그렇다고 외국인들처럼 수단을 떠나지도 못하는 처지에 빠졌다.
그는 “많은 사람이 버스를 타고 수단에서 이집트로 피신하고 있지만, 우리는 대가족인 데다가 구성원마다 사정이 달라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며 “우리 같은 가족에게는 이동하는 게 악몽”이라고 토로했다.
쉽게 대피하지 못하는 처지인 것은 아프리카에서 수단으로 일하러 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만은 케냐와 에티오피아에서 온 가사도우미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그의 집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면서 “가족에게 보낼 돈을 벌고, 더 안전한 곳을 찾으려고 수단으로 왔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매우 불공평하다”고 했다.
그는 “긍정적으로 보자면 아직 우리 집에는 기름과 전기, 그리고 수돗물이 있다”며 “자동차도 있지만 이를 움직일 휘발유는 없다”고 말했다.
이만은 군벌 양측 모두 주민 목숨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들은 그들이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의 목숨과 존엄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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