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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복음의 비밀이 담긴‘아노뗀(ἄνωθεν)’변화

키 임 베토라트 아도나이 헤프초
‘다시, 또 다시’의 패턴을 반복하는 우리의 열심은
허상이고 가짜이며,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없다

영혼의 참된 변화는 하부 세상의 상황과 조건이 달라진다고 흔들리지 않는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변화는 약발이 떨어지면 한 시간도 못 가서 ‘팔린’(πάλιν, again) 즉 ‘다시’ 병든 자아의 악순환을 되풀이 해야 한다.

그래서 위로부터 존재의 변화 즉 ‘아노뗀’이 아닌 것은 참 변화가 아니다. 진정 거듭난 자는 인간 존재의 변화를 ‘위로부터’(ἄνωθεν) 거친 자이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위로부터 태어나야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 3:5~7)”

당신은 거룩한 영에 의해 단 한 번에 위로부터 태어난 자인가? 예수님께서는 이 변화를 니고데모에게 가르치셨으나(요 3:3) 안타깝게도 그는 그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여전히 아래 하부 세상의 틀 즉, 보이는 공간에 매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영생을 얻으려면 ‘위’에서 내려오는 새로운 힘에 의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아노뗀’이라고 하는 위로부터의 복음이 깊숙한 내면에 내리 꽂히지 않으면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 바로 여기에 십자가 복음의 의미가 들어있다.

우리 인생은 대부분 하부 세상과 보이는 물질이 전부인 줄 아는 일원론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 중 일부는 니고데모처럼 진리에 관심을 보이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하부 세상에서 단지 보고 느껴지는 경험과 제한된 지혜를 의지하며 마치 진리를 아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래도 이만하면 나는 복음에 대해서 알지’라며 자아에 충만해 공동체나 교회에서 목을 세우고 목소리를 높이고 어깨를 으쓱대며 다닌다.

이렇게 복음을 알았다 치고 넘어가는 자들을 향해 사도 요한은 말한다. “이 사람을 보라! 우리 유대 최고의 지성으로도 안된다” 하늘의 계시를 받아 헬라어 ‘아노뗀’(ἄνωθεν) ‘위로부터’란 단어를 사용해 그들의 심장과 폐부를 향해 복음의 예리한 칼을 들이댄다. 그리고 한 방에 끝내고자 하는 하나님의 질투, 정열적인 열심(pathos, passion)으로 외치고 있다.

사도 요한의 선포처럼 위로부터 오는 영과 진리가 타락한 하부 세상으로 쏟아 부어져 내려와야만, 구원이 가능하다. 내 편에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위로부터가 아니면 구원이 열리지 않는다. 이 구원을 가져다 주는 유일한 참 지식은 위로부터 통째로 내려오는 십자가 복음이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하부 세상에서 ‘다시, 또 다시’ 반복하는 우리의 열심은 허상이고 가짜이며, 결코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없다. 속지 말라. 나 곧 죄요 죄 곧 나, 죄 덩어리 자체인 병든 자아 에고(Ego)는 하부 세상에서 인간 스스로 도를 닦거나, 온갖 열심과 수고로도 결코 해방될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자유케 하는 참 지식이다(요 14:6).

위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영을 통해 아버지께서 보내시는 십자가 사랑과 긍휼이, 우리의 삶을 아래 세상으로부터 확실하게 갈라놓았는가? 여전히 하부 세상에서 갈등하며 환상(illusion)에 불과한 찰나의 세계에 사로잡혀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정말 위로부터 태어난 자인가? [복음기도신문]

김명호 교수(복음기도신학연구소)

필자는 이스라엘에서 구약을 전공하며 히브리어가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언어임을 깨닫고 현재 성경언어학교를 통해 믿음의 세대를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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