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오영철 칼럼] 뿌린대로 거둔다

사진: 오영철 선교사 제공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만나면서부터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이전에 만났던 카렌 지도자와 대조적이었다. 그에게 선교사란 그들의 작은 필요까지 채워줄 수 있는 사람처럼 대하였다. 당혹스런 그의 태도를 대하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복음을 전하기 위한 사역 가운데 상수도와 정수기 설치 사역은 유용하다. 그 사역은 재정과 기술과 시간이 필요하다. 쉽지 않은 상황 중에서도 그 일을 위해서 한 헌신자가 미국에서 왔다. ‘래빠도’라는 마을을 위해서이다. 그 마을은 전통종교인들이 대부분이고 기독교인은 두 가정 뿐이다. 고마운 마음에 그 분을 모시고 그 마을로 이동한다. 교회 담임목회자가 앞장서고 나는 그의 차를 따라간다. 그런데 한 마을의 가게에서 내리면서 말한다.

“이곳이 그 마을에 가기 전 마지막 가게입니다.”
그 다음부터 하는 말이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 곳에 두 가정 교인들이 있는데, 빵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아. 네”라고 대답하니 적지 않은 빵을 계산대에 갖다 놓는다.
“그 두 가정은 식용유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아. 네”라고 하니 몇 병의 콩기름을 계산대에 갖다 놓는다.
“그 분들은 통조림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 네”라고 하니 통조림 줄을 계산대에 갖다 놓는다.

그리고 그는 내가 당연히 그 비용을 지불할 것처럼 서 있다. 사실 비용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도움을 주는데 부담이 없는 액수이다. 계산은 하였지만 그의 태도가 나를 당황스럽게 하였다. 그 목회자는 얼굴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교제를 나눈 적은 없었다. 혹시 교제를 했었다고 해도 이렇게 대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카렌 교회를 방문한다고 하면 목회자들은 대개 선교사를 어떻게 대접할까라는 마음을 가진다. 이것은 내가 훌륭해서가 아니다. 카렌족은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다. 식사는 정성을 다해 준비한다. 멀리서 온 손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도처를 방문하게 되면 모 교회가 그래도 뭔가를 준비하여 가져간다. 보통 교회 예산에 전도처를 돌보는 내용이 있어서 이럴 때 사용한다. 그 목회자는 본인 차량도 있으면 나름 여유도 있는 것 같다. 멀리서 온 손님에게 음료수라도 권하여야 할 것 같은데, 그 곳 교인 선물 비용까지 요청한 것이다.

교인집에 도착한 후 한 이야기는 나를 더욱 당혹스럽게 한다.
“이 곳에 두 가정이 있는데, 오 선교사님이 교회당을 건축해 주셔도 됩니다”
교회당 건축 후보지라는 곳을 손으로 가르치면서 주저함 없이 이야기한다. 그 말을 듣자 마자 바로 나도 내 의견을 제시했다.
“미얀마 카렌 교인들은 우리들보다 더 가난해도 스스로 건축을 하고 있습니다.”
“카렌 교회는 이전부터 스스로 교회를 건축하는 전통이고 이것이 신앙의 유산입니다.”

그러면서 집 주인에게 질문을 하였다.
“이 집을 보니 제법 큰데 지을 때 외부사람에게 요청을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하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가장이고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여러분들의 집을 짓는 자세로 지으시면 됩니다.”
“지금은 교인이 어른 세 사람밖에 안되니 집에서 예배를 드리면 됩니다.”
“앞으로 교회 건축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다가 힘들면 이야기하세요”

사실 약간 감정이 들어간 대답에 그 목회자는 갑자기 겸연 쩍이 웃는다. 이런 대답이 나오리라고 생각을 못했나 보다. 말이 나온김에 조금 더 덧붙였다.

“아이들은 부모들에게 필요를 달라고 하지만, 성인이 되면 아이들을 돌보고 부모님을 챙깁니다. 그렇지 못하면 부끄러운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인교회가 되면 할 수 있는 부분은 스스로 책임져야 합니다”

분위기가 혹시 너무 어색할까 싶어 이곳 전도처를 위하여 수고하고 있다며 격려했다.

사진: 오영철 선교사 제공

왜 그 목회자는 처음 만나는 내게 그런 요청을 하였을까? 우연한 일이 아니다. 어쩌면 만난 이전 선교사들이 그런 방식으로 사역을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선교사에게는 도움을 청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런 선교사를 만난 경험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모습은 그동안 선교사들이 뿌린 결과일지도 모른다. 복합적인 요소가 겹쳤든지 그가 보기에 선교사는 자신들의 헌신을 대신해주는 대상으로 보게 된 것이다.

선교의 중요한 목표는 자립, 자치, 자전을 넘어 스스로 선교하는 성숙한 교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의존적인 교회는 성숙한 교회가 되는 것을 방해한다. 왜냐하면 스스로 자신을 볼 때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선교란 여유 있는 나라의 교회가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선교사의 태도와 방법은 현지교인과 지도자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교회당 건축을 위해 스스로 헌신을 강조하는 선교사를 만나면 스스로 헌신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반대로 교회당이 필요하지 않은지 먼저 질문하고 접근하는 선교사를 만나면 도움을 요청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선교사의 태도와 표현이 현지인들에게 선교사가 누구인가를 이해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그들이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인재 양성이나, 지역 개발 그리고 천재 지변이나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 지금도 그들의 급한 필요를 위해 방문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도 의존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 하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자원을 보게 한다. 그리고 성인으로의 역할을 책임지는 자신 대한 존중감이 높아진다.

오늘 만난 이 목회자의 태도 속에서 이미 그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요청하고 있다. 그가 요청한 교회 건축을 도와주면 또 다른 교회건축 지원처를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들의 선조처럼 스스로 하도록 격려하면 스스로 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을 의존하고 건강한 성인으로서 자존감은 높아질 것이다.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행동과 태도가 현지인들에게 강한 영향력이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그 영향력은 모두 긍정적이지 않다. 때로 성숙하게 할 수도 있지만 때로 의존적이게 할 수도 있다. 사역에 필요한 재정과 리더십을 현지 교회로 이양해야 하는데, 어려움을 토로하는 한국 선교사들이 매우 많다. 멋진 센터와 교회당이 있는데, 선교사가 떠나면 과연 그들이 관리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하는 것이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현지 교회의 헌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의 원인 중 하나는 선교사나 한국 교회가 현지 교회에 평소에 비추어진 태도와 행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현지 교회가 스스로 헌신하기 보다는 선교사에게 의존적인 결과를 하도록 행동하였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 선교 자원이 급격히 약화 되는 시점에서 선교사의 행동과 태도가 더욱 신중해야 함을 느낀다. [복음기도신문]

오영철 선교사 | 1995년 GMS 선교사로 태국에 파송된 뒤, 현지 신학교에서 학생과 목회자를위한 교수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곳에서 소수부족인 카렌족교회가 주민족인 타이족을 위한 선교적 교회를 세우는데 관심을 갖고 이들을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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