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이아침 칼럼] 근본을 배우고 가르치라!

사진: Joel Muniz on Unsplash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고린도전서 8:5~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로마서 11:36)

우리는 지키지 못할까봐 두려워하고, 빼앗길까봐 두려워합니다. 근본적으로 무엇을 두려워하고 왜 그것을 두려워하는지 깨닫는다면 마음에 주님이 계시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강해질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목숨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목숨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목숨이 아니라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주님의 관심은 우리 목숨이 아니라 생명에 있었습니다. 물론 목숨도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과하게 말하면 주님께서는 우리들 목숨 때문에 이 땅에 오신 것은 아닙니다. 목숨에 모든 것을 다 걸고, 목숨에 모든 것을 다 맡겨서 목숨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사람들에게 생명이 전부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생명을 다시 찾도록 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생명보다 목숨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코로나19로 재난 상황이 되니까 사람들의 믿음의 빛깔이 드러납니다. 마음의 심연 가운데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지, 무엇을 잃어버릴까봐 염려하는지 보게 됩니다. 관심이 어디에 가 있는지 선명하게 보게 됩니다.

저에게도 두려움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 토브원형학교를 시작한지 8년이 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고, 하나님의 뜻이 흘러가는 존재를 이 땅에서 키워가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토브원형학교 아이들은 실제 진리를 발견하며 세계관이 바뀌어 갑니다. 그럼에도 제 마음에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믿음의 사람으로 커가는 것은 확실한데, 졸업하고 밥벌이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밥벌이도 잘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사회에 나가 길과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이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한 성경적인 해답을 5년 전부터 서서히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해를 거듭하면서 확증해 주셨고, 결국 제가 회개했습니다. 학생들이 졸업하고 선교사 마인드로 이 땅에서 살아갈 때 밥벌이 전문가로도 손색없을 것입니다. 전문가로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알든 모르든 ‘진리 전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세계관의 전쟁입니다. 세계관의 싸움은 에덴동산에서 시작됐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 사회를 보는 눈, 문화를 해석하는 눈을 세계관이라고 합니다. 성경적 세계관은 하나님의 말씀이 옳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에덴에는 모든 것이 충분했고 완벽하게 준비된 다음 인간이 창조됐습니다. 인간이 창의력을 발휘해 서로 도우며 무엇을 만들고 갖추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에덴은 하나님께서 이미 갖추어 놓으신 곳이었습니다. 인간은 본래 다 갖추어 놓은 곳에서 살았습니다. 그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고 에덴에서 쫓겨납니다. 창세기를 보면, 인간과 사탄이 저주를 받습니다.(창 1~3장) 인간은 열심히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저주를 받습니다. 그래서 밥벌이를 못하면 큰일 난다는 의식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밥벌이에 얽힌 지독한 아픔과 깊은 상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 아이들이 믿음생활은 잘하는 것 같은데 밥벌이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두려움의 근원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상처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성경의 세계관과 사탄의 세계관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준비하신 뒤 에덴에서 마음껏 누리라고 하십니다. 충만하고 번성하고 생육하고 다스리라 하십니다. 단,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따먹지 말라고 하시고, 그것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십니다. 말씀을 그대로 따라가면 충만하고 번성하고,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다는 것! 그것이 성경의 세계관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않고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속입니다. 내가 중심입니다. 인간 중심, 곧 인본주의 세계관입니다. 눈이 밝아지면 내가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으니, 내가 판단하고, 내가 결정하고, 내가 집행하고, 집행한 결과 또한 내가 갖게 된다는 것이 인본주의 세계관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조차 기독교 대안학교에 자녀를 보내려고 합니다. 그곳에서는 대부분 엘리트 교육을 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아야 좋은 기업에도 들어가고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위험한 이야기입니다. 반발할 수도 있고, 충격 받을 수도 있고,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이야기인지 알아야 합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대학 들어가니까 이제는 또 좋은 기업에 들어가야 합니다. 기업에는 가치가 있습니다. 기업의 핵심가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간파해서, 사람들을 충족시키는 좋은 상품을 만들고, 그 상품을 많이 팔아서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끼도록 만들고, 그 과정을 통해 이윤과 자본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에베소서 2:1~3)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것은 사탄을 따라간다는 뜻입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최고 가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서 상품을 만들어서 그것을 사도록 해서 이익을 내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이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라고 말합니다. 자녀 교육을 잘 시켜서, 좋은 대학과 기업에 들어가게 하고, 마음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하도록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사탄의 입맛에 안성맞춤인 사람으로 길러내는 교육 안에 우리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업에 들어가면 전문성을 배우게 됩니다. 지성이 강조되기에 능력도 함양됩니다. 지성과 앎을 끌어올리면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탄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너희가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들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되고, 힘도 생기고 집행할 능력도 생기니까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속인 것입니다. 에덴에서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속임수였고, 하나님 없이 행복할 수 있다는 거짓입니다. 그 거짓에 속아 우리는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면 내가 행복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인본주의는 주인이 ‘나’입니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주체가 됩니다. 인간이 소망이고 희망이라고 말하는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로마서 1:24)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로마서 1:26)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로마서 1:28)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그것에 맞는 좋은 상품을 만들고, 그런 것으로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교육이 현재 공교육 입니다. 기독교 학교만이 종교가 아니라, 인본주의 교육도 사실 종교입니다. 1961년에 미국 연방대법원은 인본주의는 종교라고 명명합니다. 1933년에 있었던 미국의 휴머니즘 1차 선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본주의 연합이 형성되는 당시 존 듀이가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존 듀이는 미국 인본주의 아버지이고, 미국에서 인본주의 교육을 완성시킨 실용주의 철학자입니다. 1961년에 인본주의가 종교로 확정된 뒤, 교리와 신조를 갖춥니다. 1973년에 2차 휴머니즘 선언을 하게 되고 1976년에는 인본주의 종교의 15개 신조가 발표됩니다.

인간이 중심이 되면, 인간이 전부요 희망이기에, 인간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곧 자아실현입니다. 심리상담은 물론 신학의 영역에도 인본주의 사상은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성경은 자아실현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자아의 죽음을 말합니다. 그냥 다른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릅니다. 인본주의 세계관과 성경적 세계관은 상극입니다. 인본주의는 인간의 지성을 계속 자극하고 끌어올려서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인본주의 15개 신조를 거의 그냥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1976년에 발표된 휴머니즘 신조 서문에는 ‘우주는 스스로 존재하고 창조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휴머니즘 1조는, 인간의 권리와 진보에 대해 진화론적 해석을 지닌다고 말합니다. 진화론과 창조론을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없음에도 세상은 진화론을 과학적인 것으로 여깁니다. 과학이란, 같은 조건에서 반복적으로 실험하여 통계학적으로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진화는 과학으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휴머니즘 신조가 창조론을 배격하고 진화론을 채택한 이유는 우리는 스스로 존재하고 창조되지 않았다는 이론 때문입니다. 진화는, 어떤 물질이 시간과 결합하고, 또 우연과 결합해 무생물이 생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물질이 시간과 우연이라는 것과 결합해 무생물에서 생물이 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성경은 시간과 우연이라는 것이 합쳐져서 어떻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지금 주님을 영접하라고, 지금 회개하라고, 지금 마음을 살피라고,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보라고,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보고 가려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진화론적 세계관으로는 지금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합니다.

휴머니즘의 두 번째 신조는, 인본주의는 과학적 방법이 진리를 결정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과학은 동일한 조건에서 반복적으로 실험했을 때 나오는 수치를 갖고 이야기하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모순이 생깁니다. 종교적 양심은 수치화되지 않습니다. 즉 양심은 수치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본주의는 도덕과 종교적 영역을, 감정의 영역으로 바꾸어버립니다.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절대 선과 절대 악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과학적 방법이 진리를 결정하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면, 절대 선인 하나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극단적으로 이 인본주의에 따르면, 동성애도 절대 선이나 절대 악이 아닙니다. 규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본주의 공교육의 결과입니다.

휴머니즘의 세 번째 신조는, 인본주의는 문화적 상대주의를 고수하는 것입니다. ‘이 문화는 고결하고 저 문화는 퇴폐적이야’ 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차원이 높고 낮은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기독교 세계관이 유일하다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합니다. ‘너무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것은 독선적인 것이다. 함께 더불어 살아야지’ 하면서 중용을 가르칩니다. 당연히 절대 신도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기독교는 독선적이고 과학적 사고도 아니며 진리는 더욱 아니라는 것입니다.

휴머니즘의 네 번째 신조는, 인간 중심적이고 자연주의적 견해를 확고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중심인 것이 공교육입니다. 그럼 많은 돈을 들여서 누구에게 안성맞춤인 인간을 길러내고 있습니까? 사탄에게 안성맞춤인 인간을 양육하고 있습니다.

휴머니즘의 다섯 번째 신조는, 개인주의 윤리를 확고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절대 윤리, 공동체 윤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본주의는 사람마다 감정이 다르고, 절대 선도 없고 악도 없기 때문에, 느끼는 정도도 다르고 윤리도 개인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휴머니즘의 여섯 번째 신조는, 주어진 사회의 문화결정론에 따른다는 것입니다. 문화결정론은 인간의 행위는 오랜 시간 발전시켜 온 특정한 문화적 배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강남의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하는 것도 이 문화결정론 때문입니다.

휴머니즘의 일곱 번째 신조는, 인간의 타고난 선과 완전성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고 완전하다고 합니다. 그래야 인간이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지성을 자극하면 좋은 사회를 건설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고 공교육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공교육을 미국에서는 종교라고 말하고 있고 우리는 공교육이라고 말합니다. 공교육은 빨리 그만둘수록 좋습니다.

고등학교 미션스쿨에서는 한 반에 한 명 정도가 주일에 정기적으로 교회에 간다고 합니다. 고등학생 가운데 실제 크리스천 비율은 3%에서 5%라고 합니다. 대학생들 가운데 주일마다 교회에 출석하는 비율은 1%입니다. 선교학에서는 크리스천 비율이 3% 미만이면 미전도종족으로 보고 선교사를 파송합니다. 우리나라 대학만 보면 미전도종족이 됐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인본주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설계되고 프로그래밍 된 공교육을 받았기에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우리가 인지하든 못 하든, 결국 많은 돈을 써서 사탄이 잡아먹기에 안성맞춤인 사탄의 밥을 만들어낸 셈 입니다. 이런 교육을 받고 살았기 때문에 우리는 목숨이 끊기면 다 끊기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모든 소망은 인간에게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럼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 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로새서 1:28)

복음이면 충분하다고 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울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 말씀이 믿겨지십니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3:16~17)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충분한 것이 성경입니다. 공교육의 목표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잘 찾아내서 좋은 상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목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입니다. 토브원형학교에서는 올해부터 창조과학 수업이 있고, 성경을 더 구체적으로 배우게 됩니다. 전도학을 배우고 복음스피치 실습도 하게 됩니다. 이 재난의 시대에 목숨을 유지하는 것에 아등바등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한 생명을 왕성하게 흘려보내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명기 6:5~9)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오염된 줄 모릅니다. 믿음의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믿음의 사람들에게 내일의 비전이 있다면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또 믿음의 사람은 과거에, 이미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내가 아니라 예수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본주의가 아니라 예수님의 시선으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보고 사는 것입니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과 연합한 내 안에 예수님이 왕 되시는 것을 보면서 사는 것, 그것이 교육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크리스천의 정체성입니다. 무엇이 내 안에 왕 되었는지 보고 주님이 아니라 다른 것이 왕 된 것을 돌이켜야 합니다. 재난의 때에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깨닫고, 내 안에 왕 되신 주님이 제1현실이라는 것을 알고, 미래에 오실 주님을 소망하며 사는 삶이 믿음의 삶입니다.

에필로그

1961년 미국 연방대법원에서는 인본주의를 종교라고 했습니다. 1933년 휴머니즘 1차 선언, 1973년 휴머니즘 2차 선언, 1976년에는 인본주의 신조가 완성됩니다. 그렇게 세워진 인본주의 교육을 지금 우리가 돈 들여서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는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삽니다. 진화론적 사고를 갖고 시간과 우연이 결합되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삽니다. 그 결과는 자명했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지고 사탄에게는 안성맞춤인 사탄의 밥이 됐습니다. ‘내 자식이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하고 뒤늦게 괴로워합니다. 그렇게 설계된 교육을 받았는데 그렇게 되지 않기가 더 힘들 것입니다. 교육이 수정되어야 생명을 알아갈 것입니다. 회개하는 목사, 회개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지 답을 내셔야 합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지금 왕 되신 주님을 바라보며 가야 합니다. 지성을 자극 하면 분별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주님의 분별을 받았을 때만 됩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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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 목사 | 하나님이보시기에참좋았더라교회 담임. 다음세대를 위해 토브원형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이 삶에서 믿음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저서로 주께서 피워내시는대로(토브원형출판사, 2020), 예, 주님 제가 순종의 전문가입니다(토브원형출판사,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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