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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첫 세례자들이 나오다

▶ 전주 서문교회의 시초가 된 전주 은송리 예배당과 테이트 선교사(출처: 한국기독교회사 캡처)
조선선교열전 (5) – 전라북도 편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올해 한국의 기독교 역사는 132주년을 맞고 있다. 구한말부터 본격화된 개신교 선교 역사는 문화, 교육, 의료 분야에서 우리나라 역사와 맥을 같이 하며 한반도의 근대화와 함께 진행됐다. 우리나라 곳곳의 선교역사를 통해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사랑을 되새겨본다. <편집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기 직전 1894년 3월 선교회의 첫 번째 의료선교사로 도착한 드루(A.D Drew) 선교사는 레이놀즈와 전라도 탐험 여행을 가장 광범위하게 시작했다. 이 6주 동안의 여행에서 두 선교사는 군산, 목포, 순천 등 선교회가 후에 선교부를 설립하려 했던 다섯 도시 중 네 도시를 방문했다. 그들은 심한 폭풍우와 빈대가 우글거리는 여관, 지독히 험한 길을 따라 알지도 못하는 길을 걸었다. 후에 드루 선교사는 전주 다음으로 군산에 선교부를 열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정세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동학농민운동과 한국의 정세

1894년 동학농민 운동을 전후로 한반도에는 일본과 중국, 러시아가 서로 한반도에 진출하고자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미국공사관은 모든 선교사를 서울로 소집했다. 전주 선교부는 전주에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철수해야 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반도 진출 야욕을 드러냈고, 민비 시해사건이 일어났다. 고종은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자주국가를 선포했지만, 안팎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미국의 선교사들은 왕실 가까이에서 고종황제와 한국인들을 도왔다. 고종황제는 인도적인 면에서 선교사들이 한국인들을 돌보고 있음을 신임하여 그들의 활동을 보장했다. 1896년, 9월 2일 고종황제의 생일에는 서대문 밖 모화관에서 1천여 명의 기독교인들의 기도 및 찬양집회가 열려 ‘독립신문’에 기사가 실렸다. 당시의 기독교는 대한제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일반시민들까지도 선교사들의 활동을 인정하고 있었다.

전주 선교의 재개

얼마 후 동학농민운동은 정부군에 의해 진압되고, 1895년 3월 18일 테이트와 레이놀즈는 조심스럽게 전주를 다시 방문했다. 그러나 전주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세례를 받겠다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교회로 쓰인 초가집이 있던 은송리 언덕에 모여서 서양 귀신은 나가라고 외쳤다. 그러나 선교의 열정은 오히려 선교부지를 더 넓히면서 확대 되어갔다. 12월에는 메티 선교사가 합류했다. 한편 레이놀즈는 아내 펫시 볼링 선교사의 건강 문제로 서울로 올라가 새로 출발한 성서번역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미국 남장로교회 해외선교본부에서는 계속 인원을 증파하였다. 한국에 도착한 호남 7인의 선교사들은 이전에 의료선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본부에 의료선교사 파송을 적극 요청하였고, 1894년에 남장로교 최초의 의료선교사인 드루 선교사와 해리슨(William B. Harrison)이 내한해 있었다. 1895년에는 유진 벨(Eugene Bell), 1897년 여성 의사인 매티 잉골드(Mattie B. Ingold), 1898년 의료선교사 오웬(C.C. Owen), 1899년 불(W. F. Bull)이 내한했다. 드루, 벨, 전킨 선교사는 서대문 밖에 진료소를 개설하고 콜레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도 했다. 많을 때는 하루에 60명의 시체가 매장되었다. 조정은 감사의 뜻으로 은으로 된 잉크 스탠드를 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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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지역의 첫 세례교인(김창국, 김성희)(출처: 한국기독교회사 캡처)

서문교회의 첫 세례자들

1896년 해리슨이 전주에 내려와 약방을 차려 환자들에게 약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다음해 가을 여의사였던 잉골드가 내려와 시약소를 차려 사람들을 치료하며 선교는 조금씩 활기를 띄었다. 선교사들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세례를 받겠다고 찾아오는 이들까지 생겼다. 테이트 선교사 남매는 새로운 신자들에게 기초 신앙을 가르치고, 어학선생을 통해 한글을 가르쳤다. 한글을 모르면 성경과 찬송을 볼 수 없어 세례를 받을 수 없다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1897년 7월 17일, 전주 서문교회 첫 세례자가 나왔는데, 그들이 바로 14세 소년 김창국, 그의 어머니 강씨, 김성희, 함씨 부인, 김내윤 등이었다. 전주기지가 세워진 지 4년 만이었다. 그러나 이런 선교의 진전에는 대가지불이 있었다. 레이놀즈 부부는 한국에 온 이듬해 1893년 8월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절에서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그 아이는 거기서 열흘 만에 죽었다. 같은 해 봄에 태어난 전킨의 아들도 18개월 만에 죽었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을 사랑했고, 풍토병과 어려운 환경에서도 복음을 전했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참고문헌: <전북선교 120주년과 예수병원설립 115주년 기념 포럼>(2013) <한국선교이야기, 조지 톰슨 브라운 지음, 도서출판 동연>(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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