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장애인이기에 복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에 무지한 장애인이기에 복음이 필요합니다.”

▶ 구금룡 목사(왼쪽), 주님이 붙여주신 든든한 동역자 최승현 간사와 함께(오른쪽)
세계장애인사역중보기도센터 구금룡 목사

구목사님 오셨어요’  누군가의 외치는 소리에 1층 현관 앞으로 뛰어 내려갔다. 구금룡 목사(43.세계장애인사역중보기도센터 센터장)는 동행한 최승현 간사의 도움을 받아 차량에서 휠체어로 옮겨 타는 중이었다. 순간, 한때 보세창고로 사용되던 요셉의창고 2층 사무실로 이동하는 방법이 계단밖에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건물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하며 안타까움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건물이 어디 한두 곳이랴! ‘미안하다’ 는 말에 구 목사는 ‘괜찮다’ 며 힘겹게 손사래를 쳤다. 최 간사와 함께 휠체어를 통째로 들고 2층으로 올랐다. 장애인이 되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난관이었다. 타인의 삶을 ‘야다'(히브리어, 알다) 하는 일이 어려운 이유가 새삼 깨달아졌다. 왜 주님이 질그릇 같은 인간의 몸으로 성육신하셔야만 했는지를 다시 한번 묵상케하는 만남이었다.

-소속된 단체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이름은 세계장애인사역중보기도센터입니다. 단체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오해가 없게 하려다 보니 이렇게 길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중보기도라고 하면 장애인을 위한 중보기도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물론 장애인을 위한 중보기도도 필요하지만, 저희는 장애인을 위한 사역이나 사역자에 대해 중보기도를 하는 단체라는 의미를 강조한 것입니다. 그 범위도 국내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열방이 저희가 품어야할 대상이라는 의미입니다.”
– 주님이 어떻게 이같은 형태의 사역으로 이끄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저는 7개월 만에 미숙아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인큐베이터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그때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산소공급이 안됐다는 거죠. 의료사고로 추정되는데, 시간이 지난 후에 알게됐다고 합니다. 요즘은 뇌병변 장애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뇌성마비라고 합니다. 그런 몸이었기에 어린 시절부터 그냥 한번 걸어보는 것에 대한 열망이 참으로 컸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일곱살 무렵, 병을 고치기 위해 부처 사진을 붙여놓고 3천배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불교를 믿는 집안에서 본 것이 그게 전부였기 때문이죠. 그러다 주님 만난 이후 몇 년 전까지 하나님이 저의 연약한 육신을 고쳐주시지 않을까 기대하고 살았습니다. 신학생 시절에 하루 10시간씩 운동을 하면서 재활운동을 하다 오히려 퇴행성 관절염으로 무릎이 퉁퉁 부어 어려움을 겪은 이후, 이제는 제 몸을 치유해주실 것이란 욕심을 버리게 됐습니다. 오히려 제 마음을 고쳐주신 것이지요.
사실 신앙을 갖게 된 계기도 병고침에 대한 열망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특이하게도 예수님을 먼저 믿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입학할 나이에 성경을 읽기 시작한 것이죠.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과연 계실까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불교집안의 분위기에서 성경을 읽기는 쉽지 않았죠. 창세기부터 마태복음까지 읽는데 무려 5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다 고2 무렵, 마태복음 24장에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더라도 믿지 말라’는 말씀을 읽는데 엄청난 충격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저의 구주로 영접하는 회심의 은혜가 허락됐습니다. 그러나 불신 집안인 가족들이 제게 교회출석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가고 싶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장애인시설에 들어갔습니다. 그 이후 새벽기도를 다니게 되고, 제자양육을 받으며 저의 신앙도 부쩍부쩍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족들도 한두 명씩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총신신대원 과정까지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게 됐습니다.”

– 목회 활동을 어떻게 하셨나요.
“한때 출석교회에서 청년부를 맡아 섬기기도 했는데, 최근 몇년 동안 섬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09년 초부터 시작된 현재의 중보기도사역을 시작하기 전, 4년여 정도 서울 한 지역에 있는 여러 교회를 찾아다녔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교회만 섬길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런데 찾아간 어느 교회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사실 장애인들은 성도로서 어느 교회를 출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경험이 없는 교회가 장애인을 섬기기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런 상황에 장애를 가진 몸으로 교회를 섬긴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겠지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지인의 초대로 장애인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그곳에서 당시 밀알선교단 국내 사역 책임자로 섬기던 김종철 목사님은 아무런 연고 없이 찾아간 제게 관심을 보이며, 제게 사역의 길을 열어주셨지요. 그러다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십자가 복음 앞에 설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너무 감격했습니다. 마음속의 음란함이나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하던 저의 죄 된 존재를 십자가에서 죽은 자로,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로 여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하루에 정한 분량의 성경을 읽으면 순종한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죄지은 것 같은 생각을 할 정도로 율법적인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죠. 이제는 앉아 있거나 길을 걷거나 지하철을 탈 때나 언제 어디서나 기도합니다.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누리게 된 것이죠.”

– 현재 섬기고 있는 중보기도 사역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십자가복음이 제 삶에 실제가 되고난 이후, 한동안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십자가만 자랑하려면 저의 죄 된 실존이 드러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알고 주님의 뜻을 묻고 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사역현장에서 사역은 이뤄지는데 기도하지 못하는 현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사역한다고 바빠서 기도를 하지 못하는 현실을 기억나게 하신 것이지요.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마태복음 3:15)는 말씀과 함께 그 일이 바로 ‘기도하는 것’이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나팔 부는 것이 아니며, 드러내지 않고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받게 됐습니다. 그 때 한 가지 구체적으로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동역자를 주십시오. 저 혼자는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데, 주님이 2주 이내에 함께하실 사람을 붙여주실 것이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때 최승현 간사님과 만나게 되셨나요.
“예. 그렇습니다. 저희 두 사람의 만남에는 앞서 말씀드린 김종철 목사님이라는 한 분의 통로가 있습니다. 그때 김목사님이 승현 형제님에게 저와 동역할 것을 권면하셨지요. 김 목사님과 만나기로 한 날, 전혀 만날 계획이 없던 분을 한 공간에서 만나게 된 것이죠. 2주 안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때 승현 형제님께 제가 거주하고 있는 서울 노원역 근처까지 오실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흔쾌히 오겠다고 했습니다. 왕복에 하루 5시간 정도 걸리는 출퇴근 시간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3번 정도 몇 달 동안 성실하게 출석하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 현재 어떤 사역이 진행되고 있나요.
“2009년 3월부터 최근까지 정말 기도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이 약속의 말씀을 주실 것을 기대했는데, 특별한 말씀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2010년 송구영신 예배시간에 주님이 시편 67:2 말씀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라는 말씀을 허락하셔서 2011년 1월초에 몇 분 지인들을 모시고 서울 서대문교회에서 센터 창립예배를 드렸습니다. 열방에서 장애인 사역으로 섬기고 있는 몇 분의 선교사님을 위해 그 이전부터 집중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주님이 허락하시는 곳에서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원고에 의존했는데, 지금은 원고 없이 묵상하고 되새김질한 내용을 자유롭게 설교할 수 있게 주님이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 정기적인 기도모임이 있습니까.
“현재 월 1회 정기적으로 세계장애인사역을 위한 중보기도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매월 첫째 목요일 오후 7시에 서울 서대문교회에서 모입니다. 저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복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에게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장애인에게 복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복음화율은 평균 20%선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장애인은 최대 4%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교회 출석률은 그 절반인 2%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이 일하실 것을 믿습니다.”
문의:010-4392-6009, 010-9892-2122, 웹사이트:www.wdmic.kr
<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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