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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당신의 설교에 ‘모서리’가 있는가?

▲ 사진 : Amonwat-Dumkrut on Unsplash

설교는 위대한 소명이다. 우리는 열린 성경을 들고 하나님의 백성 앞에 서서 성령의 능력으로 권면한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서 말씀을 연다. 정기적으로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는 이 거룩한 책임에 대한 경이로움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의 메시지와 성경의 메시지가 일치하는 한, 우리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포한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주방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재료를 사용하여 거룩함의 성장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이다.

우리는 약을 조제하고,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질병을 완화하고 그들의 영적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는 올바른 성분을 혼합하는 약사이다.

우리는 또한 경건한 삶을 위해 사람들을 훈련하고, 그들의 영적 근육이 강해지고 체력이 증가하도록 위로하고 도전하며, 그래서 그들이 믿음의 경주를 더욱 효과적으로 달리도록 격려하는 체육관 코치이다.

모서리 실종

여기에 모든 설교자가 직면하는 도전이 있다. 청중의 주의를 끌고 사로잡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하지 못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현재의 관심사와 제대로 연결하지 못할 때,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의 효율성은 감소한다.

성경적이지만 얼마든지 지루할 수 있다. 청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화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상태에서도 성경 본문은 얼마든지 해석될 수 있다. 식사는 분명히 푸짐했지만, 너무 밋밋해서 손님들이 음식을 반 이상 남긴 채로 자리를 뜬다. 우리가 조제하는 약에 환자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꼭 필요한 핵심 성분이 부족할 수 있다. 항상 쓰는 근육만 단련시키는 영적 훈련에 사람들은 당신의 메시지에 흥미를 잃고 들뜨기는커녕 오히려 지쳐 버린다.

이러한 도전에 맞서기 위해 나는 좋은 설교의 몇 가지 필수적인 측면을 지적할 수 있지만, 오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좀 다르다. 없을 때는 당장 눈에 띄지만, 있을 때는 그 즉시 설교를 짜릿하게 만드는 그것에 관해서 말하고 싶다. 나는 그것을 예리한 “모서리”(edge)라고 부른다. 좋은 설교자라면 이 경쟁력을 놓치는 법이 없다.

설교를 준비할 때 꼭 자문하라. 지금 내가 본문으로 삼은 성경 구절, 즉 거기에 담긴 전제, 태도, 적용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상식”으로 여겨지는 것을 어떻게 거스르는가? 이 본문이 세상의 사고방식 또는 삶의 방식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지점은 어디인가? 성경 본문과 세상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순이 가장 날카롭게 부각되는 곳은 어디인가?

모서리를 확보하라. 세상이 말하는 것과 성경이 말하는 건 전혀 다르다. 그 모서리가 분명해질 때까지 설교 준비를 마치지 말라. 바로 그 모서리가 당신이 준비하는 음식의 맛을 내는 양념이다. 바로 그 모서리가 당신이 조제하는 약을 만병통치약으로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게 훈련받는 사람의 모든 근육을 사용하게 한다.

교인이 휴대폰을 보는 대신 설교에 집중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의 설교는 반드시 반문화적인 설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억하라. 성경은 단지 세상의 문화에만 반대할 뿐 아니라 우리가 교회 속으로 당연하게 갖고 들어가는 세상의 가정들(assumptions)에도 반대한다. 현대의 사고방식이 성경과 일치하는 부분, 그리고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부분을 보여줄 때, 성경 강해라는 드라마가 극적으로 고조된다. 단지 성경의 가르침을 알려주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왜 중요한지를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이 설교를 듣는 성도를 어떻게 세상에서 구분되게 하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사례 하나

몇 년 전, 나는 Cedarville University의 예배당에서 주기도문을 가지고 두 번 설교했다. 첫 설교의 초안은 나쁘지 않았다. 개요는 본문과 잘 연결되어 있었다. 설교 원고는 확고한 성경 주석을 바탕으로 신학적으로 건전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원고를 읽으면 읽을수록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뤄야 할 모든 기초가 담겨 있었지만, 리허설을 하는 내가 지루한데 그 설교를 들을 학생들이 몰입할 거라는 건 상상이 되지 않았다.

더 많이 생각하고 기도한 후에 비로소 무엇이 빠졌는지를 깨달았다. 나는 묻지 않았다. “모서리가 무엇이지?” 설교 메시지에 틀린 건 없었지만, 이 세상을 지배하는 거짓과 충돌하는 부분이 빠져 있었다.

일단 모서리를 찾기 시작하자 설교가 바뀌어 갔다. 나는 주기도문의 모든 구절을 다시 살펴보며 원래의 의미를 설명할 뿐만 아니라, 더욱 예리한 적용을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지금 이 구절은 어떻게 세상의 상식 또는 교회의 현재 관행에 어긋나는가?

• 아버지께 기도한다는 사실이 기독교 신앙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개인주의를 어떻게 드러내는가?

• 하늘에 계신 분에게 기도한다는 사실이 하늘과 땅에 대한 대중적인 오해와 땅과 하늘의 관계를 어떻게 드러내는가?

• 자기 이름이 영광 받는 것을 삶의 목적이라고 믿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독립과 자립을 중시하는 세상에서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등등

모서리 탐색이 설교를 향상시켰고, 설교 이후에 몇몇 학생들은 내 설교가 그들의 기도, 특히 주기도문 암송에 미친 영향을 놓고 내게 연락하기도 했다.

문화적 서사 드러내기

모서리를 찾는 한 가지 방법은 오늘날 서구의 지배적인 문화적 서사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여기에는 팀 켈러의 작업이 필수적이다. 설교에 관한 책에서 그는 오늘날 널리 퍼져 있는 다섯 가지 믿음 또는 스토리를 설명한다. (1) 인간 합리성, (2) 역사, (3) 사회, (4) 도덕성, 그리고 (5) 정체성.

• 합리성: 자연계가 유일한 실재이라는 관점은 오늘날의 기술 문화의 기초를 형성하며, 객관적이고 분리된 인간 이성(사회학, 심리학, 기술, 과학)만이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 역사: 세계 사건을 과학, 기술, 심지어 삶의 도덕적 영역까지 진보를 향한 전개로 보는 관점으로 조상들의 미련하고 퇴행적인 견해와는 달리 새로운 것은 무엇이든 더 낫다고 가정한다.

• 사회: 우리 사회 질서의 목적이 어느 한 집단의 이익을 증진하거나 가치와 미덕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개인을 자유롭게 하는 데 있다는 견해이다. 다만 이 자유는 더 높은 목적을 위한 해방이 아니라,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부정적 측면을 강조한다.

• 도덕성 또는 정의: 인권과 정의를 위한 노력은 하나님의 도덕적 규범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창조한 도덕적 세계와 일치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 정체성: 정체성은 외부(의무 또는 공동의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순응을 요구하는 외부 제약에 반대하여 나 자신을 찾고 표현하는 내부에서 기인한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서사를 식별하는 것은 성경과 사회 사이의 날카로운 구분선인 모서리를 더 잘 찾는 데 도움을 준다.

주의 사항

모서리를 찾는 이유가 세상과 전쟁을 벌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켈러는 복음에 흠뻑 젖은 설교가 교인들에게 “전투라기보다는 탈옥”처럼 느껴져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문화적 서술의 허위를 드러내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은 지금 아예 실행 불가능한 약속을 남발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확하게 진단된 모서리 이후에 제시되는 약은 안도감을 가져다줄 것이다.

모서리를 찾는 것이 “우리 대 그들”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마치 성경이 교회 밖의 모든 사람을 대적하고, 그 결과 교인들은 독선이 주는 안도감을 느껴도 된다는 오해를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사회에서 상식으로 통하는 문화적 내러티브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친구 또는 이웃과 똑같은 공기를 마시고 산다.

예를 들어, 켈러가 언급한 정체성 서술에는 표현적 개인주의, 즉 삶의 목적이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고 표현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들어있다. 이것은 단지 저기 딴 세상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교회에 다니는 그리스도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모두에게 복음이 필요한 것처럼 (불신자는 구원을 위해, 신자는 성화를 위해) 신자와 비신자 모두에게 “모서리”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인도 얼마든지 세상 철학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또한 모서리를 찾는다는 것은 모든 설교가 다 동일한 세상적 관점에 반대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설교를 주도하는 것은 문화가 아닌 언제나 본문이다. 모든 설교가 언제나 한두 가지 동일한 문화적 서사에 반대하는 틀에 박힌다면, 교인들은 더 이상 설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상식이나 현재의 교회 관행을 역행하는, 성경의 다양한 방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매주 설교 준비에서 반박해야 할 현대 사상과 실천 분야를 단 한두 가지 식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성경 공부와 더불어서 상당한 수준의 문화적 주석 연구까지 수행해야 할 것이다.

특효약은 없다

그렇다고 모서리 탐구가 효과적이고 매력적인 설교를 위한 유일한 기술은 아니다. 성경적 충실성, 탄탄한 구조, 꾸준한 속도, 좋은 일러스트레이션, 목소리의 다양성과 같은 다른 많은 요소가 다 중요하다. 그러나 모서리 탐구는 오늘날 우리 세계와 성경의 필요한 만남을 촉진함으로써 설교를 향상시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할 때 회중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영은 말씀을 마음에 적용하는 분이시다. 우리는 단지 도구일 뿐이다. 성령은 하늘의 음식으로 우리를 살리신다. 성령은 하늘의 약을 내려주신다. 우리가 구원을 이루는 동안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여 모서리를 탐구한다. 그리고 그분이 살아서 움직이는 말씀의 검을 휘두르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복음기도신문]

원제 : Find the Edge in Your Preaching

트레빈 왁스 Trevin Wax | LifeWay Christian Resources의 신학과 커뮤니케이션학과의 부학장이며 Wheaton College의 외래 교수이고, The Gospel Project의 편집자이다. ‘디스 이즈 아워 타임’, ‘일그러진 복음’, ‘우리시대의 6가지 우상’, ‘Gospel Centered Teaching’을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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