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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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성전에 계신 소년 예수
그들은 사흘 후에 성전에서 선생들 중에 앉아 있는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20230311 CROSS
[서정일 칼럼] 가시 면류관을 엮어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역전과 반전으로 역사를 이루어 가시고 때로는 일괄타결(一括妥結)하여 새롭게 인도해 주신다. 위대한 역설의 내용은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처투성인 우리를...
202300303 CROSS
[GTK 칼럼] 그리스도의 마지막 일곱 마디: 목마름을 호소하시다
고난 주간,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예수님의 칠언을 살펴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cross_210403
[GTK 칼럼] 그리스도의 마지막 일곱 마디: 어머니를 부탁하심
그리스도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그의 관심은 자기 자신이나 그에게 필요한 것들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는 십자가에 매달려서, 얻어 맞고, 피흘리며 죽어 갔지만, 그의 초점은 그의 하나님께서...
20230218 Korea house
[동행] 안방에 예수님이 계신다면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잠 13:20)본지가 [동행]이란 코너를 통해 믿음의 삶을 소개합니다. 노년의 독자들에게는 추억과 재헌신의 결단을, 다음세대의 독자들은 도전과 권면의...
20220823 Gospel Preach-min (1)
[GTK 칼럼] 그리스도인의 상투적인 말(2): 예수님을 영접하세요
누구도 백악관에 자신을 초대해서 링컨실(백악관의 방 이름_역자주)에서 하룻밤을 잘 수 없고, 여왕과 차를 마시기 위해 자신을 버킹햄궁에 초대할 수는 없다. 아무리 동기가 진실하고 강력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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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칼럼] 가난과 부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
<역사적 예수 논구 시리즈> 역사적 예수는 가난을 축복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가난했으나 부의 소유를 인정했고, 가난하고 소외자, 당시 사회적 약자인 여성 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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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일 칼럼] 세상의 참 빛
또 다시 새로운 한 해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다. 1년은 52주에 365일이다. 시간으로는 8760시간이고, 분으로 나누면 52만 5600분이 되고, 초로 쪼개면 3153만 6000초가...
20221220 Cross
[GTK 칼럼] 하늘의 관점에서 본 십자가(1): 제사
예수님의 삶 중에서 가장 왜곡되고 잘못 이해되는 것은 그의 죽음이다. 세상은 그를 한 순교자라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그의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훼손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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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칼럼] 추우니까 더 따뜻하다
계절이 바뀌어서 오사카 아마미 집에 왔다. 다다미 방, 세월의 흔적을 먹은 짙은 나무기둥, 줄을 당겨 켤 수 있는 전등, 쌓여 있는 우편물이 맞이한다. 오후 늦은 비행기를 탔기에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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