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호 / 일상에서 만난 하나님]
남편이 어질러 놓은 과자봉지와 옷가지를 치우며 마음으로 남편을 공격하는 내 모습을 본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진리의 모습인데 집에서는 어쩜 이리 다를까 생각했다. 남편과 22년을 살았다. 그런데도 남편을 향한 내 마음은 늘 이렇다. 마음으로 순종할 수 없다.
주말이면 남편은 어김없이 공을 차거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 집을 나선다. 그럴 때마다 남편을 향한 미움이 올라온다. 그날도 남편은 공을 차기 위해 집을 나섰다. 특히 그날은 한 주 동안 학교에서 진행된 기도모임 때문에 아들을 잘 돌보지 못한 때였다. 내심 주말에는 아들과 교제를 해주기 바랐지만 남편은 또 나간다고 했다. 미움이 올라왔다. 그때 갑자기 아들이 아빠랑 공을 차러 가겠다고 말했다.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아들의 말을 듣는 순간 마음에서 미움이 싹 사라졌다. 마음이라는 게 참 신기했다.
돌아온 남편과 내 마음에 있었던 일들을 나누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가정을 돌보거나 마음을 같이 해주지 않았던 어려움들도 얘기하게 됐다. 그러다 다툼으로 이어졌다. 아들이 중재를 했음에도 싸움은 그치지 못했다.
시간이 좀 지나고 한 주 동안 이어진 기도회를 통해 주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주님께서 남편이 나의 권위자인지, 남편이 나의 머리가 맞는지 묻기 시작하셨다. 기도회를 통해 주신 메시지가 기억났다. 나의 태도였다. 어느 때는 남편이 너무 좋지만 어느 때는 너무 미워하는 이런 나의 마음이 주님을 대하는 나의 태도라는 것을 알게 해주셨다. 주님은 그것을 비추임 받고서도 여전히 남편이 내 원함대로 바뀌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비춰주셨다. 실상 말로는 남편을 머리로 인정한다면서 마음으로는 단 한 번도 남편을 머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려진 결론은 ‘네가 하나님께 그러고 있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해서, 주님을 위해 다 버리고 이렇게 사는데요.’
주님은 22년 동안 남편이 내 기준에 맞지 않을 때마다 쏟아부었던 나의 분노와 정죄를 주마등같이 기억나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것을 다 보고 계셨다. 나는 진리를 이용해 상대를 판단하고 있었다. 맞으면 높이고 아니면 분노의 칼을 갈았다. 머리 된 남편에게 행했던 모습이 동일하게 머리 되신 주님을 향한 태도였던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겉으로 나타나는 온순함이 남편을 높이고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참고 인내하며 사랑한다고 여겼지만, 그것이 끝내는 나를 위한 나의 사랑임을 알게 하셨다. 주님께도 동일했다. 나의 원함에 맞으면 주님을 사랑하고 아니면 주님을 원수 보듯하고 미워했다. 단 한 번도 남편에게 맘을 열지 않았던 것같이 하나님께도 모든 것을 맡겨드리지 않고 불안해하며 내가 주인되어 살고자 했다는 것을 보았다. 그런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니 부끄럽고 죄송했다.
남편이 없는 내가 존재할 수 없듯이, 주님 아니면 살 수가 없다. 이런 자를 사랑하시는 주님처럼, 이런 나를 그럼에도 사랑하는 남편이 있다. 22년이 지난 이제야 남편을 통한 주님의 사랑이 믿어진다. 십자가에서 주신 사랑을 알아가게 하신다. 나에게 남편을 허락하시고 십자가로 연합하는 기쁨도 알아가게 하신다. 이런 나를 남편은 기다려주고 인내해 주었다. 주님은 남편을 통해 믿음 없는 나에게 포기치 않는 주님의 사랑을 믿게 하셨다. 주님이 하셨다. [복음기도신문]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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