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호 / 믿음의 삶]
열방을 위해 꽤 오랫동안 기도해왔다. 그러면서 전 세계에서 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음을 보게 됐다.
그러나 똑같은 사건을 가지고도 서로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도를 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여론의 반응도 제각각인 것을 보게 됐다.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사는 세상이기에 그럴 수 있다는 것도 이해는 됐다.
나도 한때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실상과 허상을 구분하게 되면서 진정한 안식을 경험하게 됐다.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모태신앙이었지만, 세속적 가치가 나를 이끌었다. ‘한 대 맞으면, 두 대로 되갚아주는 것’이 승리였고,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게 해달라’는 어머니의 기도를 믿었다.
학교에서도, 운동 경기에서도, 공부에서도, 심지어는 주일 학교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이런 막강한 세상의 가르침 앞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내게 비현실적 그 자체였다. 자기 부인, 섬김, 희생은 한가한 소리요, 세상에서 도태되기 딱 맞는 삶의 태도로 여겼다. 말씀 따라 사는 삶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으며 두려웠다.
그러다 복음을 만났다. 내가 실재인 줄 알고 붙들고 살아왔던 모든 것이 ‘허상’임을 알게 됐다. 실상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통치하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진리를 알게 됐다. 그러나 죄악된 옛 자아가 내겐 너무 자연스러웠다. 복음을 만나고도 나 자신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내 왕국을 포기할 수 없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죽는 것이 생명을 얻는 길이다” 나는 이렇게 자신 있게 정답을 제시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기를 쓰고 이기려 하고, 남을 희생시켜서라도 살아남고자 하는 나 자신이 보였다.
그런 나를 부인하고 싶었다. 기도했다. “주님! 저의 전부가 되어주세요. 그러면 주님 아닌 모든 것이 사라지겠죠. 비록 후회하게 된다 할지라도 이 기도를 들어주세요” 그런 기도제목으로 기도를 시작한 이후,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사이, 그동안 내가 엄청난 착각을 했음을 알게 됐다.
나 자신이 특별하다고 여겼다는 사실이다.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완전히 망하고 그렇게 끝이 난 줄 알았다. 애초 내가 생각하고 짐작했던 것과 뭔가 좀 달랐다. 전혀 다른 끝에 도달해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제외될까 봐 두려워 멈출 수 없었던 나의 모든 경쟁이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초라한 왕국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비로소 진정한 안식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이제야 인간들의 모든 계산을 뛰어넘어 주님의 뜻을 이뤄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됐다. 나의 당연한 권리에 대한 주장도 끝이 났다. 기꺼이 지는 편을 선택하여 상대방에게 양보할 수 있고, 십자가의 자리를 택할 수 있다. 항상 진리 편을 택하였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많다. 그건 아내에게 내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과 같은 소소한 일상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나의 마음을 주장하신다. ‘네가 가야 할 자리가 어딘지 알지? 모르는 척하지 말아라’ 놀랍게도 주님께 순종해 십자가의 자리로 나아가면 전혀 다른 승리, 죽음을 이기는 생명을 경험하게 된다.
열방의 상황도 마찬가지임을 깨닫는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 나라의 흥망성쇠에 달려 있지 않다. 정치, 경제, 사회, 종교, 국제 정세… 그 어느 것 하나 조용한 것 없고, 교회를 핍박하려는 움직임, 비록 교회의 배도 소식이 들려도 내가 흔들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계심이 믿는다. 그래서 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할 수 있다. 그 말씀이 실상이기 때문이다. [복음기도신문]
정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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