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호 / 일상에서 만난 하나님]
한 주 동안 합숙으로 진행되는 신앙훈련에 섬김이로 참여할 때의 일입니다.
훈련생들의 이동을 돕기 위해 햇빛이 따사로이 비치는 훈련장 외부에 서 있었습니다. 마침 비가 그친 다음이라 상쾌한 공기를 맞으며 이동하는 훈련생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있을 때, 발밑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자세히 보니 다름 아닌 지렁이였습니다.
비는 지나가고 이제 뜨거운 해가 떠오르는 중인데, 때를 놓친 지렁이가 보도블록 위에까지 올라와 기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도 바로 옆은 차가 다니는 도로였고 지렁이가 살 수 있을 것 같은 곳이 주위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꽤 먼 거리를 기어 왔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앞도 볼 수 없고, 지금 있는 곳이 어딘지 몰라 이리저리 헤매는 모습에 흥미가 생겨 계속 지켜보았습니다. 지렁이는 그렇게 한참을 정신없이 돌아다녔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저러다 타 죽을 텐데, 구해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발밑을 다시 내려다본 순간, 꽤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메마른 보도블록 사이를 뚫고 올라온 작은 풀 한 포기를 지렁이가 몸으로 천천히 감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그 자리를 결코 떠나지 않겠다는 듯이 그 풀 한 포기 아래에서 모든 움직임을 멈추었습니다. 거기서 죽기를 작정한 듯 지렁이는 더 이상 몸부림치지도, 방황하지도 않고 그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지렁이가 다른 곳으로 가지도 않고 그곳에서 죽기를 작정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제 모습과 지렁이가 겹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진리를 찾기 위해 먼 거리를 열심히 달려왔지만 결국 어디로 가야 할지 이리저리 방황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훈련을 받아봤지만 단순히 훈련받는 것으로는 방황하는 존재적 죄인인 저의 삶에 진정한 안식이 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황량한 길 위에서 타 죽을 수밖에 없던 삶이었습니다.
그렇게 갈 바를 몰라 타는 듯한 목마름으로 헤매던 제게 예수님이 찾아오셨고 영원한 안식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복음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워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주님은 언제나 삶의 자리 곳곳에서 나를 붙잡아 주셨습니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옛 생명의 죽음에 믿음으로 화합하는 것이 오히려 나를 진정한 안식으로 인도하시는 자비의 초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만이 제게 안식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참여하고 있는 신앙 훈련도, 지금 섬기고 있는 역할도, 주님의 부르심을 향해 나가는 발걸음이 잠시 정체된 것 같은 현재의 삶의 자리도, 느껴지는 고독도, 모두 십자가에서 안식하기를 바라시며 사랑으로 찾아와 주신 주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지렁이가 있던 곳에 가보았습니다. 지렁이는 없고 풀만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다른 곳으로 갔을까? 죽어서 누군가 치운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습니다. 제가 죽어야 할 곳이 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내가 함께 죽은 십자가. 이제 죽어도 거기서 죽고 살아도 거기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을 만나고 주님 뜻대로 산다고 헌신했지만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저의 삶을 볼 때, 답답함과 조바심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제 삶의 모양이 어떻든, 내 영혼의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곳은 십자가 뿐이기에 오늘도 제게 아들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매여 달려갑니다. 오직 그 사랑이 나를 감격하게 하고 언제든지 일어나 달려가게 하십니다. 그 복음이면 충분합니다. [복음기도신문]
고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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