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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통 버려진 레바논 이주노동자들… ‘현대판 노예제’에 발 묶여

▲ 임시 거처에서 머물고 있는 시에라리온 출신 레바논 이주노동자 (하즈미에 로이터=연합뉴스)

노동자 전권 쥔 고용주들, 폭격당한 집·피고용인 내팽개친 채 도주
레바논 정부·자국 영사관도 외면…오갈 데 없이 포화 속 방치

지난 달 이스라엘의 첫 번째 공습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시내를 강타했을 때, 시에라리온 출신 이주노동자 마리아투 스와레이는 겁에 질려 고용주에게 미친 듯이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그녀의 여권을 비롯해 모든 권리를 쥐고 있는 고용주는 이미 해외로 도주한 상태였고, 스와레이는 3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스와레이는 중동에서 ‘현대판 노예제’로 불리는 악습인 ‘카팔라'(후견인) 제도에 따라 레바논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이주노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레바논에서 고용주에게 사실상 버림받으면서 오갈 데 없이 발이 묶이게 됐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충돌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레바논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고용주들로부터 버려진 채 폭격 속에 방치된 경우가 늘고 있다고 미국 CNN 방송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랍국가에서 운영되는 근로계약 제도인 카팔라는 국내 고용주가 외국인 노동자의 거주 비자 발급을 위한 인적 보증을 서게 하는 제도다.

이를 통해 고용된 외국인 이주노동자에게는 현지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고용주에 의해 이직, 이사, 출국 등 기본권조차도 제한받기 일쑤이며, 고용주의 폭행이나 성적 학대, 가혹한 근로조건 속에서도 구제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신의 운명을 고용주의 손에 내맡긴 이들은 최근 레바논이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충돌로 인한 포화에 휩싸이면서 전쟁통에 그대로 방치됐다.

고용주들은 폭격에 무너진 집과 함께 이들을 버리고 도주했으며, 남겨진 이주노동자들은 레바논 정부와 자국 영사관 모두로부터 외면당한 채 정부 대피 시설에서도 출입을 거부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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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란민 거처에서 쉬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하즈미에 로이터=연합뉴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의 지역 인도주의 정책 고문 누르 샤와프는 CNN에 “이주노동자들의 여권을 가져간 고용주들이 어떤 서류도 남겨주지 않은 채 이들을 떠나버렸다”면서 “노동자들은 이 나라에 갇혔다. 만약 떠나고 싶더라도 그럴 수 있는 법적 서류가 없다”고 말했다.

시에라리온 출신의 또 다른 이주노동자 여성은 가정부로 일하고 있던 집의 고용주들이 폭격이 시작되자 어느 날 슈퍼마켓에 간다고 하고 나가서는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CNN에 말했다.

집 근처로 폭격이 이어지자 이 여성은 결국 거리로 내몰려 공원, 도로, 벤치 등에서 노숙하다 현재는 피란민 임시 거처에서 지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이 레바논 정부에서 제공하는 피란민 임시 거처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CNN은 인터뷰한 이주노동자 6명이 모두 정부가 운영하는 피란민 거처에서 쫓겨났거나 출입을 거부당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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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시 거처에 지내고 있는 레바논 이주노동자들 (하즈미에 로이터=연합뉴스)

서방 정부들이 레바논 내 자국 교민 대피를 위해 전세기를 보내는 것과 달리 이들은 레바논 내 자국 영사관으로부터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여권을 빼앗긴 이주노동자들이 집에 돌아가기 위한 여행 서류를 받기 위해서는 영사관의 도움이 필요한데, 영사관에서는 이들이 고용주와 함께 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에라리온 영사관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관리자는 CNN과 통화에서 “이주노동자의 고용주나 이들을 돕는 협회 측에서 필요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보통 고용주들과 소통한다. 고용주가 시민과 함께 영사관에 와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주로 젊은 여성이 대부분인 이주노동자들은 도움을 주는 레바논 시민과 비영리 단체의 선의에 기대 겨우 살아남고 있다.

레바논 시민 레아 고라예브는 지난 달 말 서아프리카 출신 여성들이 집 없이 해변에서 자고 있는 것을 보고는 이들이 정부의 피란민 보호소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그러나 이틀 뒤 이들은 정부 보호소에서 쫓겨났고, 고라예브와 친구들은 창고를 두 달간 빌려 이들이 잠시나마 머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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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에게 옷 입혀주는 레바논 이주노동자 (하즈미에 로이터=연합뉴스)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 시리아 등에서 온 다른 이주노동자들도 베이루트 시내의 작은 공원에서 텐트를 친 채 지내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은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가사도우미 등으로 일하는 젊은 여성들로, 오갈 곳이 없어진 이들을 노리는 인신매매 등 범죄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이주노동자행동’ 소속 자원봉사자는 레바논 내 이주노동자들은 현재 끔찍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지역은 폭격을 당했다. 우리는 현재 정부 피란민 보호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거부당한 이주민들을 돕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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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을 등에 업고 있는 이주노동자 여성 (하즈미에 로이터=연합뉴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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