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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카트만두 순환도로에서 산산조각난 코리안 드림

▲ 한국의 고용허가제 한국어능력시험(EPS-KOPIC)을 주관하는 네팔당국에 항의시위를 벌이는 시위대를 막고 있는 경찰. 네모속 사진은시위현장에서 사망한 네팔 청년. 사진: 네팔 타임즈 캡처.

‘카트만두 순환도로에서 산산조각난 코리안 드림’ 지난해 말 네팔의 영자신문 네팔 타임즈에 이 같은 내용의 한국 관련 기사가 게재됐다.

산산조각난 코리안 드림의 주인공은 수잔 라왓(Sujan Rawat)이란 청년이다. 그는 아버지의 간병을 위해 생긴 엄청난 빚을 갚기 위해 한국행을 꿈꿔왔다. 그러다 지난해 말 마침내 자신의 고향 카르날리주에서 500km나 떨어진 카트만두에 도착해 한국어학원에 등록하고 한국어능력시험(KOPIC)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에 취업하려면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한국어를 어느 정도 읽고 쓸 줄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열정과 꿈이 채 익기도 전인, 지난해 12월 29일 금요일 그는 어처구니 없는 복병을 만났다. 그동안 KOPIC 시험을 주관하는 네팔 당국에 불만을 가진 젊은이들의 시위가 카트만두 시내에서 진행됐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라왓은 그를 시위대로 오인한 경찰에 의해 제지를 받으며, 가슴에 타격을 받고 쓰러졌다. 병원에 실려간 이후 라왓은 더 이상 깨어나지 못했다. 가난을 이겨내고자 했던 청년의 꿈은 그렇게 멈춰서야 했다.

이 기사를 찾아보게된 것은 현재 네팔에서 한국어학원을 운영하는 지인 L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L에 따르면, 지금 네팔의 한국어학원은 한국의 외국인 고용허가제(EPS)에서 요구하는 KOPIC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큰 학원의 경우, 수강생이 1000여명에 이를 정도로 많이 몰리고 있다고 한다. 국내 한 언론매체에서 네팔의 한국어 학습 열풍을 취재한 영상에 따르면, 크고 작은 한국어학원이 네팔에서 수백개에 이른다고 한다.

한국의 산업인력공단에 밝히고 있는 EPS-KOPIC 시험 응시자의 국가별 현황에 따르면, 2023년 한 해동안 네팔 국적자는 7만 5823명에 달했다. 이는 한국과 인력 송출.도입 계약을 체결한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16개국 가운데 캄보디아(7만 9530명)에 이어 2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이들이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이처럼 한국어 학습에 열을 올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 현실이다.

이렇게 응시자가 많아지자 자연히 EPS-KOPIC 시험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한국이 요구하는 점수보다 한참이나 높다. 총 40문제 가운데 1, 2문제 이상 틀리면 합격을 보장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네팔에서 이 시험은 1년에 한 차례밖에 없다. 합격했다고 해도, 그 자격은 2년간만 유지된다. 2년 내에 한국기업에서 택함을 받지 못하면 원점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이번 시위는 아깝게 불합격한 사람들이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요청한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코리안 드림을 위해 한국어시험을 한 번 더 볼 수 있게 해줄 것을 요구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는 현장에서 라왓과 또 한 명의 청년이 사망한 것이다.

문득 영화 국제시장에서 독일로 파송될 광부 지원자들이 쌀가마니를 들기 위해 안간힘을 벌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불과 수십 년 전 기회만 주어지면 어디든 가겠다고 자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나라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당시 젊은이들은 오늘 네팔 청년들처럼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열사의 땅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한몫을 챙기기 위해 자원 입대할 정도로 한국에는 일자리가 부족했다.

세월이 흘렀다. 한국은 그런 산업화 시대를 눈물과 땀으로 보낸 아버지 어머니의 수고에 힘입어 선진국 대열에 포함됐다. 절대 빈곤을 벗어난 것이 불과 몇 십 년 지났을 뿐인 우리 사회의 신세대는 이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느냐보다 어떻게 돈을 버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소위 워라밸 즉, 일과 삶의 균형을 논의하는 이 땅에서 코리안 드림을 일구려는 이주민 노동자들의 삶의 현실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한때 이주노동을 통해 오늘의 경제기반을 쌓은 한국에서 동일한 꿈을 품고 찾아오는 이주민 노동자를 받아야 하는 이때, 한 청년의 죽음은 나그네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돌이켜보게 한다. 또한 오늘 우리는 우리의 삶의 여건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어떤 미래를 꿈꾸며 살아야하는가라는 묵직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복음기도신문]

김강호 |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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