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박태양 칼럼] 해체주의의 발흥

사진: unsplash의 Katerina May

눈먼 기독교(59)

흔히 20세기의 마지막 사상이라고 불리는 해체주의는[1]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자크 데리다에 의해서 1960년대에 창시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일종이다. 처음 철학과 문학에서 시작된 이 사상은 곧 건축과 예술 분야로 확장됐고, 이후 모든 사상과 문화로까지 퍼져나갔다. 기존 사회에 자리 잡고 있던 정형화된 질서와 절대적 개념을 타파하고, 불확실성과 상대성을 존중하는 해체주의는 결국 신학에까지 결정적 영향을 끼치게 됐다.

전통 신학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주로 다루었다면, 해체주의 신학은 오늘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가치인지를 주로 다룬다. 해체주의 신학은 ‘오늘’을 강조하기에 성경이 말하는 ‘과거’의 진리는 별 의미가 없다. 해체주의 신학은 ‘나’를 강조하기에 하나님을 ‘내가’ 경험하지 못하면 그는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자기 생각대로 성경을 재구성하는 자유주의(현대주의) 신학이고, 하나님이 죽었다는 사신(死神) 신학이며, 진리는 변화한다는 과정(過程) 신학이다.

기독교를 하나님의 계시(성경)에서 시작하지 않고, 개인의 경험에서 시작한 것이 이 시대의 신학이다. 혹자는 이것을 신학 실종(상실)이라고 표현하지만, 이것은 신학이 실종된 정도가 아니다. 아예 신학이 조각조각 파편화돼 사라진(즉, 해체된) 수준이다. 실종된 것은 되찾을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해체된 것은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복구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인 것이다. 이 시대는 절대적인 것을 갈기갈기 찢어 개인으로 하여금 각자 나름대로 그것을 요리하게 만들었다.

절대적 가치 기준이 사라진 이 시대는 당연히 그 절대 가치의 자리에 다양한 대체물을 놓고자 하는 새로운 종교성이 나타났다. 그래서 성공, 자기만족, 치유, 회복을 주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정당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즉 진리처럼 여기게 됐다. 개인의 마음을 채워 주고, 행복감도 높여 주는 것이 진짜라고 여기는 실용주의적 사고(思考)는 고대 성경 시대나 현대 이성 시대나 변함이 없는 듯하다. 이 시대는 기독교 안에, 온전한 신학이 사라지고,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도 보이지 않는 희한한 시대다.

이렇게 실종된(해체된) 신학은 결국 ‘개념’을 상실한 기독인을 양산했다. 자신이 믿어야 하는 대상이 무엇이고, 어떤 존재인지를 묻지도 배우지도 않고, 자기 주관대로 옷을 입혀서 추종하고 추구하는 기독교인이 나날이 더 많아지고 있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교리적으로 개념을 상실했으면서도 결코 돌이키지 않는다. 이들은 실제 삶의 모습이 교리나 신학보다 더 중요하므로 그것은 별 문제가 아니라고 믿고 있다.[2]

신학적 교리보다 개인의 삶?

최근 교회가 욕을 먹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온전한 삶으로 표현되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의 미흡한 신앙 때문이다. 이것은 21세기의 바리새 신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교리적으로는 제법 하나님을 잘 알고 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하나님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실천적 무신론자가 바로 바리새인 아니던가? 보수적인 신앙을 자랑하면서도 정작 삶 가운데 희생, 정결, 정직, 겸손, 온유, 섬김, 자비 같은 예수 십자가의 영성이 없다면, 이것은 비판받을 만한 일이다. 틀림없이 진정한 신앙의 열매와 증거는 삶 속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신앙에서 삶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곧 신앙에서 교리를 소홀히 여겨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흔히 교리라고 하면 딱딱하고, 진부하며 별 내용은 없이 형식에만 집착하는 밥통 같은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은 완전한 오해다. 교리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체계며, 성경의 중심 가르침이다. 교리는 마치 몸의 뼈대와 같은 것으로 교회를 지탱해 주는 골격이다. 기독교 교리는 옛날 예수 시대에 살던 유대교 율법 교사들이 주장한 종교적 굴레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자인 아돌프 폰 하르낙은 교리적 기독교를 거부하고, 개인의 신앙 고백과 역사의식을 기독교의 핵심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 아닌가? 함석헌과 류영모 그리고 한완상과 문동환이 주장한 바가 바로 이것이다. 이들은 인간학과 윤리학, 그리고 심리학으로 신학의 자리를 대신하고자 노력했다.

물론 신학은 인간을 품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학이 돼서는 안 된다. 신학은 윤리를 확립해야 한다. 그러나 윤리학이 돼서는 안 된다. 신학은 마음(감정)을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심리학이 돼서는 안 된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가 경험한 하나님이 중심이 되면-혹시 인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더 윤리적이 될 수 있고, 자기 마음을 더 잘 다스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그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진리는 주관적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 사실의 문제다. 이 점에 대해서 데이비드 웰스가[3] 잘 지적하였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경험한 그리스도를 전파한 것이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다른 많은 종교와 똑같은 종교를 전파했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그리스도가 경험하신 것을 전파했다. 그들은 내적으로 흥미로웠던 바를 전파하지 않고, 외적으로 사실인 것을 설교했다. 하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셨다. 이것은 역사에 속하는 일이지, 그저 내면의 인식에 속하는 일이 아니었다. 죄와 사망과 마귀를 정복하신 하나님의 승리에 대한 축하의 종소리와 함께 경쟁적인 모든 종교 사상은 심판대 앞에 서게 되었다. 이 사건은 고대 세계에서 절대성을 가장한 모든 허세를 무효화시켰다. 이 점은 현대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4]

기독교가 각자의 종교 경험을 토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종교라면, 이는 다른 종교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기독교는 개인적인 신앙 고백 이전에 예수의 행적을 따라가는 종교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삶은 예수의 삶의 궤적에 맞춰져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예수의 행적과 다른 것을 말하거나 따르는 것은, 개인의 경험이 아무리 특이하고 영적이라 하더라도, 진정한 기독교인의 자세가 아니다. 기독교인으로서 개인의 삶을 신앙인답게 영위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어떻게’ 믿느냐를 강조하기 위해 ‘무엇을’ 믿느냐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개인의 내면과 경험을 소중히 여길 수 있으나, 그것으로 성경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


[1] 解體主義, Deconstructivism

[2] 개념 없는 기독교인의 모습은 물론 교리의 상실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교리를 따른다고 하면서 삶이 엉망인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은데, 이런 자들 역시 개념 없는 기독교인이다. 기독교의 진짜 ‘개념’은 이론과 실천 모두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3] 고든콘웰 신학교의 조직신학 및 역사신학 교수

[4] 데이비드 웰스, 『신학실종』, 부흥과개혁사, 430쪽-강조는 원저자의 것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눈먼 기독교>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박태양 목사 | 중앙대 졸. LG애드에서 5년 근무. 총신신대원(목회학), 풀러신대원(선교학 석사) 졸업. 충현교회 전도사, 사랑의교회 부목사, 개명교회 담임목사로 총 18년간 목회를 했다. 현재는 (사)복음과도시 사무총장으로서 소속 단체인 TGC코리아 대표와 공동체성경읽기 교회연합회 대표로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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