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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주기철 목사

“마지막 유혹, 그러나 주님의 뜻이 그를 승리케 하셨다”

아브라함, 모세, 사무엘, 다윗, 바울…. 그리 고 히브리서 11장의 수많은 증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행하 시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본다.

‘그릇’, 하나님께서 그때에 그 사람을 통해 이루실 것을 위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택한 바로 그 ‘그릇’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 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 (행 9:15,16)”

지난 4월, 예수님의 고난을 기리고 묵상하며 나아가는 절기를 보내는 중 우연히 보게 된 영상이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를 영화로 그린 ‘그의 선택’이었다.

주 목사님이 ‘신사 참배’에 반대하여 순교하신 과정을 사실적으로 나타낸 영화. 이것은 주 목사님의 아들 주광조 장로의 간증 다큐멘터리인 ‘아들의 고백’과 하나로 이해하며 보는 것에 더 큰 은혜가 있다.

주기철 목사. 1897년 출생,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던 그가 주님의 은혜로 변화되어 일제 강점기의 정점인 1925년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1929년 경남노회에서 신사참배 반대 결의를 선포하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셨다.

일제가 조선의 민족성 말살을 위 해 강요하였던 신사참배, 여기에 온 조선 백성이 거리에서나 학교, 공공기관 모두에서 일본 천조 대신에게 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 중에 이를 반대하며 민족성을 지켜갈 수 있는 전장이 오직 교회였다. 교회는 민 족성만이 아닌 신앙을 지켜야하는 믿음의 싸움터였다. 그러나 교회마저도 일제의 엄 청난 탄압과 고문으로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위기의 때였다.

영화는 1936년 그가 평양 산정현 교회에 부임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신사참배의 우상숭배에 반대하여 믿음을 지킬 조선 교회의 ‘그릇’ 주기철, ‘일사각오의 신앙’, 이것이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그의 그릇이었다.

순교자 주 목사를 아들의 간증과 영화 속에서 그려갈 때, 그는 강인한 용사가 아닌 한 연약한 인생이었음을 보게된다. 아들들에게 다정다감한 너무 좋은 아버지. 아내와 어머니를 정성 다해 보살피며 사랑 많은 가장의 모습. 고문을 받고 풀려 나기를 반복하다가 다시 그 고문의 감옥에 가야한다는 두려움에 방안 기둥을 붙들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아기같이 울던 아버지 의 모습. 그는 영웅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이 믿음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보게 되었다. 주 목사와 그의 가족들, 산정현교회 성도들. 그리고 조선 민족 교회를 이끌어 가는 주님의 은혜. 주님의 뜻이 그들을 붙들고 썩어질 밀알이 되게 하셨다. 몇 번의 긴 옥고를 치루고 나와 다시 산정현 강단에 서서 옥중에서 기도하던 것을 설교한 것이 그의 유언과 같은 믿음의 선포인 ‘다섯 가지 나의 기원’이다.

“죽음의 권세에서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옵소서. 노모와 처자와 교우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라 는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가길 기도하는 눈물의 ‘일사각오’를 앞으로 다가올 세대에게 지금까지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더 그리고 싶은 위협과 도전은 ‘회유’라는 고문이었다. 고개 한 번만 숙이고 평양에서 가족과 함께 떠나라. 위험하니 한번만 피하라는 형사들과 교우의 권유. 칠순 노모의 만류 속에 흔들 수 있는 모든 것이 그의 마음을 힘들게 했다. 여기에 우뚝 선 주목사와 함께 서주었던 사람이 사모 ‘오정모’였다. 그녀는 항상 그 의 곁에서 격려하며 항상 “승리하셔야 합니다, 영생을 사는 길은 신앙을 지키는 길밖에 없습니다, 순교하십시오, 살아서는 이 감옥을 나오실 수 없으십니다.”라고 주목사가 순교하는 그날까지 외친다.

마지막 최후의 고난은 노모와 처자 앞에서 당하는 고문의 시간이었다. 가족이 보는 앞에서 간수들의 집단 구타와 망치로 발을 짓이기는 고문. 노모는 기절하고, 막내 아들 광조는 오열하며 울고 있고, 오정모 사모는 ‘주여, 주여!’를 외치며 기도하는 중 일본 형사 대장은 이어서 사모를 때리고 고 문한다.

실제 이때를 회상하는 아들 주광조 장로의 증언이 있다. 당시 일본 형사는 주 목사의 몸이 많이 쇠약해졌으니 석방시켜 준다고 가족을 데리고 왔다고 한다. 그리고 사모에게 택시를 불러 줄테니 주 목사를 태우고 가는 중에 그저 아무도 보는 사람들 없으니 택시 안에서 평양 시내 신사 앞을 지나다가 잠깐 차를 멈춰서 창문을 열고 고개 한번만 숙여달라고 했다고 한다.

아무도 보는 이 없으니 그 택시 안에서…. 이 말에 오 사모와 주 목사는 ‘그런 조건이라면 나갈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 무지막지한 남은 고문을 받았다고 한다. ‘딱 한번, 아무도 보는 이 없는데, 이번만 피하 면….’이라는 자기의 십자가를 부인하라는 마지막 유혹에 주님의 뜻이 그들을 승리케 하였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주 목사를 가장 싫어하고 고문했던 일본 순사, ‘마꼬또’와 나눈 말 “주 목사님은 그 말씀을 진정으로 믿는다는 말씀입니까?” 주 목사, “그렇소, 그렇소, 그렇소….” 눈물 의 고백이 가슴을 저미며 새겨지는 말이 되 어왔다.

1944년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면 회를 할 때 그의 유언 ‘난 살아서 여기를 나 갈 수 없소. 이제 곧 하나님 나라에 갈 것이 오, 가서도 산정현 교회와 이 조선 교회를 위해 기도하겠소. 여보, 따뜻한 숭늉 한 그 릇 먹고 싶소.’라는 말을 남기고, 4월 21일 하나님 나라로 가셨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이 순교자의 피와 믿 음 위에 세워졌다. 예수님 안에서 어떤 사 랑과 섬김을 받았는지를 마음 깊이 새기며, 앞서 가신 주님과 주기철 목사님과 같은 증 인들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오직 주님의 은 혜로, 오직 주의 뜻으로 가렵니다. 마라나타!

(드라마, 다큐멘터리 | 한국 | 권순도 | 100 분 | 12세 이용가 | 2007)

박미애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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