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위로

AM-230919-1
아시안미션, '이주민 코디 사역자 역량 강화 세미나' 진행
아시안미션(AM)은 “내 양을 먹이라”라는 주제로 이주민 코디 사역자 역량 강화를 위한 세미나를 지난 14~15일 1박 2일 동안 충주 켄싱턴 리조트에서 개최했다. 이번 포럼에는...
288_2_1 photo news(1068)
불탄 파키스탄 기독교 마을, 십자가 은혜의 위로
288호 / 포토뉴스 지난 8월 17일 파키스탄 자란왈라 마을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기독교인이 쿠란을 찢었다는 주장만으로 성난 무슬림들은 하루 만에 20개 이상의 교회와...
0607 tgc
[TGC 칼럼] 나는 내 것이 아니다
한 문장이 삶을 바꾸기도 한다 한 문장이 우리 마음에 너무 강력하게 박혀 다른 모든 것을 잊게 만들 때, 바로 그 한 문장이 끼친 효과는 엄청날 수 있다. ―존 파이퍼 그리스도...
280_8_2_Mission(1192)
“우리나라 아이들을 섬겨줘서 고마워요”
280호 / 선교 통신 얼마 전 파키스탄 카라치시에 있는 자동차 공장과 스마트폰 공장 견학을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시골 소작농 가정 출신들이었기 때문에 쉽사리 경험할 수...
with-light-221112
[믿음의 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그리스도의 일곱 가지 약속 (5)- 위로의 약속 다음은 요한복음 14장 18절의 약속입니다. “내가 너희를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어두운 광야,...
20221108 PRAYFORYOU
[손은식 칼럼] "찐 고구마를 주셔서 맛있게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요즘은 문득문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프레이포유 사역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 즉 상대방의 변화에만 관심을 가지나? 그분들의 반응이나 상태에 따라 기뻐하거나 실망하고...
alexandre-chambon-97R5c0lXUK0-unsplash
[정성구 칼럼] 교회개혁과 병든 문화
종교개혁 505주년 전날 밤, 21세기 선진국 대열에 오른 서울 한복판에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발생했다. 참으로 안쓰럽고 민망하였다. 그리고 1020 세대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156명의...
an autumn concert 20221030
교정인사 노고와 헌신에 감사 '2022 극동방송 가을음악회'
교정의 날을 맞아 교도관 및 교정인사들의 노고와 헌신에 감사함을 표현한 ‘2022 극동방송 가을음악회’가 지난 10월 28일(금) 저녁 7시 30분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이번...
hope 20220921
[TGC 칼럼] 위로를 받으라, 작은 자여
세상 모든 어려움을 다 지고 간다는 생각을 한 적 있는가? 삶이 주는 책임과 의무,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잔혹한 현실이 주는 무게에 짓눌린 적 있는가?  “세상의 무게”는...
20220531 Ukraine1-min
[우크라이나 통신] “고난의 터널을 지나 더욱 정체성이 분명한 나라와 민족이 될 것”
우크라이나 리포트 (4) 엊그제 들어온 난민들 중 약 30여 명이 유럽을 향해 길을 떠난다. 어두워지는 저녁 무렵, 식사도 하지 못한 채, 센터 앞 버스에 오른다. 계속 묻는다....

최신뉴스

[TGC 칼럼] 카타리나 폰 보라: 진정한 자유를 누린 여인
"한미동맹 70주년, 한국교회는 복음주의 신앙과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위해 기도해야"
[김수길 칼럼] 이스트미아에서 네로, 바울의 흔적을 떠올리다
[원정하 칼럼] 서아프리카 기니비사우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우승트로피 들고 기뻐하던 난민 청소년 얼굴을 잊을 수 없어요"
2023년 유럽 35개국서 반기독교 증오 범죄 2400건... 프랑스, 영국이 최다
엠폭스 변종, 콩민공과 부룬디 어린이에 빠르게 확산
Search

실시간최신기사

Katharina-v-Bora-241118
[TGC 칼럼] 카타리나 폰 보라: 진정한 자유를 누린 여인
20241117_ROK-US alliance
"한미동맹 70주년, 한국교회는 복음주의 신앙과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위해 기도해야"
20241118_Greece1
[김수길 칼럼] 이스트미아에서 네로, 바울의 흔적을 떠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