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칼럼] 다시 그물을 던져야 하는 시간이 있다
배낭을 멘 멋진 청년 둘이 메구미나 교회를 찾아왔다. 서울○○교회에 다니는 청년인데 오사카에 여행을 왔다가 주일 예배를 오게 되었다고 한다. 지인에게 소개를 받고 메구미나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SNS로 알아보다가 국민일보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았단다. ‘무국적자로 살아가는 재일 조선인‘의 제목이지만 우리 부부의 삶을 다룬 기사였다. 일본교회라고 들었기에 좀 의아하게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오사카 시내에서 몇 번을 환승을 […]
[TGC 칼럼] 대구, 경북의 어머니 교회로 서다
이 땅 첫 교회들을 찾아 대한 강토에 선 첫 세대 교회들을 찾아 떠납니다. 그 이야기들에서 우리 신앙의 근원과 원형을 찾아보려 합니다. 대구는 영남에서 서울과 부산을 잇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창원, 울산, 부산, 울산, 경주 등지에서 서울에 가기 위해서 집결하거나 기점 역할을 했던 곳이 대구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구가 집중되고 장이 커지면서 조선의 3대 시장이 형성되었고 […]
[GTK 칼럼] 천국(2):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사랑치 말라
사도 요한은 그의 첫 번째 서신(요한일서)의 수신자에게 매우 명확하고 단호한 명령을 내린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
[서정일 칼럼] 마가의 복음이야기
마가복음 1장 1절에 시작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호칭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유앙겔리온/하나님 나라, 천국)이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주시는 아름다운 기쁜 소식이다. 구약에는 ‘아름다운 소식’(사 40:9; 61:1), ‘승리의 소식’ 등으로 표현되었다. 신약에서 복음은 구약에 배경을 두고 있는데, 예수께서 메시아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구원을 완성하신 일련의 사건을 일컫는다. 복음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고 예수 그리스도에 […]
[TGC 칼럼] 낸시 거쓰리의 큰 슬픔 속 소망 이야기
저는 참 순진무구했습니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깊은 상처를 받는 방식에 대해서요. 하지만 제가 제 딸 호프를 낳았을 때 그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호프가 태어났을 때 그녀의 발이 내반족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고 그녀를 출산했을 때 산부인과 의사가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발에 깁스를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날 밤 소아과 의사가 와서 호프에게 정상이 […]
[원정하 칼럼] “당신들 때문에 여신께서 강림하지 않아요”
최근 우리 마히마교회는 한 주간 일정으로 두 곳에 단기선교를 다녀왔습니다. 공숙자 목사님과 약 스무 명의 성도들은 ‘쏠라뿌르’라는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고, 저희 가정 네 명은 북동부 ‘마니푸르’에서 내전 및 수해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사역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주일에 함께 만나서 서로의 무용담(?)을 나누는데, 한도 끝도 없었습니다. 저희는 마니푸르에서 전기도 수도도 없이 사이클론 속에서 사역한 이야기들, 정부군과 내전 반군 […]
[김종일 칼럼] 많은 무슬림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돌아왔다
밖에서 보는 이슬람(108)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이 우리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고, 읽지 않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아래와 같이 꾸란 여러 구절에서 성경에 대한 변질, 왜곡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그들이 너희와 더불어 믿음을 같이 하기를 바라느뇨 그들의 무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면서도 그 말씀을 왜곡하도다(꾸란 2:75). 그들 손으로 그 성서를 써서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
[GTK 칼럼] 천국(1): 천국의 소중함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에 대해 천국에만 관심이 있고 사회정의, 빈민, 피압제자의 구제, 그리고 소외계층의 보건 의료 등 중요한 세상의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기독교인들이 공공복지, 병원건설, 긴급 구호 활동, 그리고 그 밖에 인류 복지 활동을 항상 주도해 왔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말이다. 복음이 담대하게 선포되는 곳에는 항상 구제 사업이 왕성하게 펼쳐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
[TGC 칼럼] 이방인 포용이 동성 결혼을 정당화하지 않는 이유
지난 화요일, 나는 여느 때처럼 교회에서 성경 공부와 교제, 기도 시간을 가졌다. 이 모임은 다섯 대륙에서 온, 반세기에 걸쳐서 태어난 사람들이 참여하는 즐겁고 소란스럽고 또 다양한 일종의 컨소시엄이다. 기혼자도 있고 독신도 있다. 만약에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나를 포함해서) 몇몇은 스스로를 LGBT+라는 정체성으로 규정했을 것이다. 또 동성애 경험을 가진 사람들도 좀 있다. 회원 중 한 명은 […]
[특별기고] 지금 한국교회에 필요한 그 한 사람
동성애는 죄의 본질이 아니라, 죄의 결과이다. 음란의 열매 중 하나가 동성애이다.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동성애’ 자체에 주목하지만, 동성애란 열매는 음란의 나무에서 열린다. 동성애의 열매가 열릴 때마다 제거한다고 본질이 제거되진 않는다. 마치 배춧잎을 떼어내도 계속 자라나듯, 본질적인 음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동성애’ 역시 막을 수 없다. 이는 법과 제도로 막아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여호와의 말씀으로 개인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