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박태양 칼럼] 오프라 윈프리와 존 레논, 영지주의와 뉴에이지의 신봉자

눈먼 기독교(54) 토크쇼의 여왕이며, 방송 재벌이기도 한 오프라 윈프리는 불우한 성장 과정을 극복하고 이 시대의 아이콘으로[1] 자리 잡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기독교 신앙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한 것으로 알려진 덕분에 교회 설교에서도 종종 인용되는 윈프리의 영성은 지금 과연 어떠할까? 오프라 윈프리는 현재 영지주의에 심취해서 반(反)기독교 캠페인에 앞장서고 있다. 그녀는 수많은 TV 방송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대중에게 보여주었는데, […]

[원정하 칼럼] ‘무한탄창’의 소망, 기적의 땅 인도네시아

이번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로 의미가 깊었습니다. 저희 ‘땅에 쓰신 글씨 프로젝트 팀’(이하 ’땅글‘)의 50번째 프로젝트이자, 최초로 본부의 재정이 단 한 푼도 들지 않은 프로젝트였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무명의 후원자들이 1만 부를 인쇄, 배포해 주신 것입니다. 이전에도 인도, 스리랑카, 몽골, 태국 등에서 일부 현지 선교사님, 교민 분들의 지정헌금이 보태진 적은 있지만, 100% 현지 성도들의 재정으로 모든 게 […]

[서정일 칼럼] 선한 목자와 어린 양의 꿈

양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초식 가축으로 사육되고 경제적으로 귀중한 재산가치로 지녀서 거래와 제의적으로 활용되었다. 신학적인 의미의 양은 목자와 함께 언급되어 선한 목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하나님의 자녀, 즉 성도를 상징하기도 한다. 어린 양은 생후 1년 미만의 양을 말한다. 이는 흠이 없고 온전한 것으로 골라 하나님께 그렸던 희생 제물에 주로 사용하였다(출 12:3,15). 특별히 인간을 구속하기 위해 오셨던 […]

[김종일 칼럼] 오스만제국은 제국 안에서 살던 기독교인들을 어떻게 대했나?

밖에서 보는 이슬람(88) 비잔틴제국을 정복한 오스만의 술탄 메메트 2세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관용적이었다. 비잔틴제국을 향한 셀주크와 오스만제국의 활발한 진격으로 이미 아나톨리아 지역 대부분을 점령하고 콘스탄티노플만 남긴 상태에서 오스만의 메메트 2세가 그 땅에서 짐미(딤미) 신분으로 살아가는 아나톨리아 기독교인들(갈라디아인)에게 약조한 아래 내용을 보면, 당시 그가 그 땅의 기독교인들에 관한 생각이 얼마나 관용적이었는지를 충분하게 짐작할 수 있다. “예전과 같이 […]

[GTK 칼럼] 남자와 여자의 역할(6): 리더십의 본보기 (2)

가족들과 함께 새로운 교회로 출석하기 시작했다고 가정해 보자. 교회의 가르침이 훌륭하기 때문에 계속 출석하게 되었다. 장로들 몇 사람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본을 배우고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게 되었다. 또한, 아이들은 청년부 사역에 참여하게 되었고 모든 가족은 교회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러나 몇 주일이 흘러가면서 당신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큰 문제가 숨겨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몇 […]

[TGC칼럼] 반기독교 시대의 거짓말 4: 성전환은 정상이다

제가 불신자였을 때 저는 전적으로 성전환은 정상적이고 성적으로 다른 것일 뿐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성전환주의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을 여럿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페미니스트 세계관을 믿기 때문이기도 했는데요. 그것은 성(sex)과 성별(gender)은 구분되며 성별(gender)이야말로 인격을 확실히 구별하는 개념이라고 보았던 거죠. 그런데 그것은 성경적 관점으로는 사실이 아니지만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거의 ‘교리문답’ 같았습니다. 그들 공동체에 속하려면 […]

[김영한 칼럼] 이근삼의 개혁주의적 문화신학(Ⅱ)

<고신대 신학거장으로 개혁신학의 초석을 놓으신 이근삼 박사 출생 백주년 기념글> 이근삼의 개혁주의적 문화신학(2), -아브라함 카이퍼의 신칼빈주의적 문화신학 수용- I. 현대신학 연구, 비판. 1. 석사학위 논문, 불트만의 케리그마 신학 비판 이근삼이 정통개혁신학을 추구하면서도 미국에서 현대신학을 비판적으로 연구한 것은 주목할만 일이다. 1) 불트만의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적 그리스도의 분리 독일 루터교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1884-1976)은 19세기 독일 복음주의 신학자 […]

[김봄 칼럼] 오병이어 같은 버스킹

가끔 오병이어의 기적을 소망할 때가 있다.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질 죄인이 그것을 믿는 것으로 구원받고 영생을 약속받았다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겠는가. 죄인인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매일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게 기적이다. 나의 하루하루가, […]

[GTK 칼럼] 남자와 여자의 역할(5): 리더십의 본보기 (1)

대인 관계의 기술은 리더십의 중요한 요소이다.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에겐 리드하는 것이 힘들 것이라는 것과 또 교만하고 뻔뻔스러운 리더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를 생각해 보자. 위의 두 경우에도 그의 개인적인 삶은 잘 정돈되고 절제될 수 있다. 그러나 대인관계의 공적인 영역에서 부족함이 있다면 그의 리더십에 방해가 될 것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따를지 […]

[송준기 칼럼] 메신저가 아니라 메시지다

송준기 목사는 ‘교회와 선교는 하나’라는 주장을 이론만이 아닌, 선교적 교회 개척 실행의 순종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그동안 그같은 생각과 순종의 여정을 저서 <끝까지 가라> 등 10권의 책에 담아냈다. 이 칼럼은 그의 저서 발췌와 집필을 통해 선교적 교회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한다. <편집자>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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