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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칼럼] 대체신학 이슈와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 연구 (1)

ⓒ 안호성

– 차례 –

I. 들어가는 말
II. 사울/바울과 예루살렘 교회
III. 사울/바울과 다메섹 교회
IV. 사울/바울과 아라비아 교회
V.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과 확장 신학
VI. 나가는 말

I. 들어가는 말

바울 서신에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에게 붙여졌던 ① 거룩한 백성(롬 1:7; 고전 1:2; 엡 1:1), ② 이면적인 유대인/ 참 할례당(롬 2:28ff ; 빌 3:3), ③ 아브라함의 자손(롬 4:11ff; 9:7ff ; 갈 3:7~8, 29), ④ 선택자(롬 9:33; 11:4f; 엡 1:4; 살전 1:3f; 살후 2:12~13), ⑤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 고후 6:16), 그리고 ⑥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이 언급되고 있다. 사도 바울이 이 용어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를 지칭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바로 개혁신학자들이다.[1]

한편, 세대주의 신학자들은 ①부터 ⑤까지는 그렇다고 동의하지만 ⑥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은 교회 공동체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의 혈통적 후손들만을 지칭한다고 주장하며, 개혁신학을 대체신학이라고 비판한다. 사실 대체신학은 세대주의자들이 개혁/언약 신학을 비판하기 위해 만든 용어다. 성경 예언 성취의 주인공은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의 혈통적 후손들로서 이스라엘인데 개혁/언약 신학자들이 이방인 주제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운운하면서 그 주인공의 자리를 교회로 대체한다는 것이다.[2] 개혁/언약 신학이 교회 공동체로하여금 하나님께 큰 죄를 범하도록 하고, 이스라엘에게는 큰 실례를 범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대주의자들 가운데는 개혁/언약 신학을 마귀 신학이라고까지 폄하하기까지도 하는 자들이 있다. 이스라엘과 교회가 서로 다른 그룹으로 서로 다른 운명을 지닌 별개의 존재라는 것이 세대주의 신학의 핵심이다.[3]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 여러 교회(갈 1:2)를 대상으로 보낸 편지다. 본 고에서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에 대한 개혁/언약 신학자들의 해석이 옳다는 것과 그들의 신학이 대체 신학이 아니라 확장 신학임을 입증할 목적으로 그들의 본문 주해를 소개하기에 앞서 크게 보아 질문 세 개를 제기한다. ① 사울/바울이 “하나님의 교회”(갈 1:13)가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이라고 신학적으로 통찰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으며, ② 그와 같은 신학적 통찰의 과정과 결과를 최초로 공유한 대상은 누구였는지, ③ 같은 계기로 신학적으로 통찰하여 같은 대상과 공유한 다른 주제들도 있었을 터인데, 그것들을 열거해보라. 우리는 이와 같은 세 개의 질문을 염두에 두고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들을 기초로 예루살렘 교회, 다메섹 교회, 아라비아 교회에 대해 살펴보는 가운데 개혁/언약 신학은 대체 신학이 아니라 확장 신학임을 입증하고자 한다.

II.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의 스데반

사도 바울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자로서 소아시아 길리기아 다소 출신으로 그의 본래 이름은 사울이었다. 사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스데반이 펼치고 있던 여러 사역 현장에서 그를 면밀하게 관찰하였다. 첫째, 이른바 자유민들의 회당 출신의 동료들과 더불어 스데반과 논쟁 현장이다. 둘째, 공회에서 스데반의 재판과 설교 현장이다. 셋째, 스데반의 순교 현장이다. 돌이켜 보면 천상의 예수께서 장차 사도가 될 사울을 예루살렘 교회의 일꾼인 스데반을 통해서 친히 양육하고 훈련하셨다.

  1. 스데반의 자유민 회당 출신자들과 논쟁 현장

예루살렘 교회가 크게 성장하던 가운데 헬라어를 사용하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아람어를 사용하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에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는 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전자의 과부들이 후자의 과부들보다 구제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사도들이 교우들에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도록 하여 그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고, 자신들은 말씀 사역과 기도하는 일에 집중하겠다고 하였다. 스데반과 빌립 등이 세워졌는데 그들은 모두 다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특별히 제사장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다(행 6:1~7).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다(행 6:8). 그가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로 구성된 이른바 자유민들 회당 출신의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하였다(행 6:9). 그러나 그들은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으로 그를 능히 당하지 못하였다(행 6:10). 이 본문은 스데반과 논쟁에서 그를 능히 당하지 못하였던 ‘어떤 자들’의 중심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한다. 그리고 다소에서 온 사울이 곧 그 주인공으로 암시되어 있음을 추정하게 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스데반의 순교 현장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우선 그들을 사울과 동료들이라고 일컫고자 한다.

  2. 스데반의 공회에서 재판과 설교 현장

사울과 동료들이 스데반과의 논쟁에서 이기지 못하게 되자 사람들을 매수하여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소리를 우리가 들었다”라고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다(행 6:11, 쉬운성경). 그리하여 그들은 그렇게 매수된 자들의 거짓말을 듣게 된 백성과 장로들과 율법사들을 몹시 화나게 만들었다. 마침내 그들은 스데반을 붙잡아 공회로 끌고 갔다. 그리고 그들은 매수된 사람들에게 거짓 증언을 다음과 같이 하게 하였다(6:12~13).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행 6:13~14).

이와 유사한 고소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재판에 등장한다(마 25:61; 막 14:57~58). 그러나 유대 법정은 성전의 파괴와 새 건축과 관련된 이 고소를 증거 부족 이유로 채택하지 않았다(막 14:59).

한편, 공회에 붙잡혀 와서 거짓 증언으로 고소를 당한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이 빛났다(행 6:14). 이는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다 그를 주목하여 보는 가운데 다같이 경험한 바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대제사장의 심문에 대하여 아주 당당하게 답하였다. 그의 응답이 사도행전에 소개된 설교들 가운데 그 길이가 가장 길며 내용 면에서도 가장 풍성한 연설 또는 설교이다(행 7:1~53).

스데반은 자신에 대하여 변호하지 않고 유대인들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지금 그를 고소하고 있는 현재 사람들에게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핵심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아비들과 형제들”(부형)이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 자신도 여전히 그들 중 하나임을 상기시키며, 영광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 나타나심으로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고 그의 설교를 시작한다. 그 설교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열두 조상을 낳았는데 그들이 곧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요셉이 형제들로부터 배척을 당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배척당한 요셉을 크게 사용하셨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척한 모세를 바로 그들의 지도자와 구원자로 세우셨다.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셨던 지도자를 배척함이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의 역사이다. 그들의 배척의 절정은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한 사건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 일으켜 그의 보좌 우편에 주와 구원자로 세우셨다. 스데반은 이러한 역사적인 불순종을 지적하고 그들을 회개시키려고 했다. 회개는 곧 성령의 역사이다. 회개한 자들은 곧 성령께 순종하는 자들이 되고 하나님의 새 언약의 참된 백성이 된다.

구약의 가르침에 충실한 하나님의 참된 백성은 예수를 배척한 유대교도들이 아니라 예수를 영접한 신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회원들을 비롯하여 그 설교를 들었던 자들이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았다(행 7:54). 이는 곧 그들이 스데반의 선지자적인 책망을 듣고 심히 분개했다는 뜻이다. 이는 곧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공회 앞에서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그들이 보였던 반응(행 5:33)과 비슷하다. 그때도 공회원들이 사도들에게 분개하여 그들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바리새인 율법 교사인 가말리엘의 즉각적인 간섭과 조심스러운 권고로 인해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이번에 스데반의 경우는 달랐다.

한편, 스데반은 여전히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행 7:55). 그는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라고 외쳤다(행 7:56). 이는 곧 그가 이 연설의 서두에서 영광의 하나님께서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것처럼 자신에게도 나타나셨다고 증언한 셈이었다.[4] 사실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오르신 후 통치자가 되었다는 사도들의 증거는 여러 차례 있었다(행 2:32, 36, 5:31). 그렇지만 이러한 사실이 경험의 대상으로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이번이 바로 처음이었다. 스데반의 증언은 예수께서 유대 법정의 재판을 받으셨을 때 대제사장에게 “이제 후로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눅 22:69)라고 친히 확언하셨던 말씀이 온전히 실현되었음을 결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서 계신 것이 스데반의 시각에 목격이 됨으로써 지금까지 예수의 부활과 승천과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심에 대한 증거가 모두 다 사실이었음이 입증된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 친히 즐겨 사용하셨던 “인자”라는 단어가 스데반의 증언에 등장한 것도 “인자”이신 예수께서 자신의 천상 승귀 주장이 그대로 실현되었음을 입증한 것이다. 특별히, 스데반은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지 않고 서 계신 모습을 보았다. 이는 곧 예수께서 순교를 당하게 될 자신에게 힘을 주고 계시며 자신의 천국 입성을 환영하시는 가운데 성부 하나님께 그를 위해 중보 기도하고 계신다는 뜻이다.[5]

  3. 스데반의 순교 현장

스데반이 공회원들과 그를 고소한 자들에게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개괄적으로 소개하면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였을 때 그들은 감당하기 쉽지 않았을 터이다. 또한,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 계신다는 그의 증언은 더욱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스데반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그를 돌로 쳐서 죽이기 위하여 자신들의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다(행 7:57~58). 그렇다면, 왜 그들은 그러한 행동을 하였겠는가?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그들의 여유 재산을 처분하여 얻은 금액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놓았다고 언급된 적이 있다(행 4:35, 37, 5:2). 이는 그들이 사도들의 지도자적 권위를 인정했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려는 자들이 그들의 옷을 사울의 발 앞에 갖다 놓음으로 그의 지도력을 인정한 것이다.[6] 마침내 사도행전에서 사울이라는 이름을 여기에서 처음 언급한 가운데 스데반과 논쟁에서 그를 능히 당하지 못하였던 ‘어떤 자들’의 중심인물이 곧 다소에서 온 사울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셈이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갑작스럽게 스데반의 순교 사건에 핵심적인 인물의 정체가 사울이라고 밝힌 직후에 스데반이 돌 세례를 받는 중에도 큰 소리로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외쳤다는 사실을 언급한다(행 7:59). 그리고 그는 무릎을 꿇고,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라고 말한 후에 잠이 들었다(행 7:60). 한편, 사울은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다(행 8:1). “훗날” 사도 사울/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대인들에 의해 살해될 위기에서 급히 출동한 로마 군병들에 의해 구출을 당한 상황에서 유대인들에게 설교할 기회가 주어졌다. 바로 그때 그는 스데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행 21:27~4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인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행 22:20).

사울은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승천을 목격하지는 못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스데반의 토론 현장과 재판 및 설교 현장, 그리고 그의 마지막 장면이 된 순교 현장을 목격하였는데 그 모든 현장은 사도 바울에게 평생토록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되었음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당시의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을 당한 것을 마땅히 여기며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였다(행 9:1). 그는 교회를 박해하고 교인들의 집으로 쳐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겼다. 앞에서 언급된 바로 “훗날” 자신의 당시 상황에 대한 그의 진술을 직접 들어 보자.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해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행 22:2~5a).

당시 사울/바울은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 이방인의 사도로서 3차 사역을 마무리한 후 예루살렘 교회에 자신의 사역을 보고하였는데 그 교회의 당시 지도자였던 야고보와 장도들이 그에게 성전에서 결례 예식을 행하도록 하여 이에 응하고 있었다(행 21:19~36). 그런데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행 21:7)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 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라고 외쳤다(행 21:8). 그리하여 큰 소동이 일어났고 로마 군병들이 급히 출동하여 그 상황을 급히 제압하고 사울/바울을 결박한 덕분에 그는 스데반과 달리 살해를 당하지 않았다. 당시 성전의 북서쪽 모서리에 위치한 안토니아 요새에 로마군이 상주하고 있었으며, 그 군대 총 책임자는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였다.[7]

천부장은 백성의 무리가 그들을 뒤따르며 바울을 제거하라고 외쳐댔기 때문에 사울/바울을 일단 군영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는 천부장의 허락을 받고 그 군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유대인 무리에게 연설하기 시작하였다. 그에게 평생 처음으로 많은 군중에게 자신을 변호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다. 바로 그때 그가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인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라고 밝혔다(행 22:20). 사울/바울의 제자인 누가에 의해서 스데반의 최후 설교 내용과 그의 마지막 기도문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행 7:60)가 사도행전의 본문에 기록될 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데반의 최후 기도가 된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는 시편 31:5(30:6, 70인역)의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에 전례가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말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에 상당히 유사하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스데반은 원래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기도를 주 예수에게로 향한다. 시편이 “부탁하나이다”라고 한 것에서 스데반은 명령형인 “받으시옵소서”라고 하지만 그 의미는 같다.[8] 특별히,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행 7:60)라는 스데반의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 기도(눅 234:34)를 본받은 것이며, 그의 기도 응답이 구체적으로 사울/바울에게 이루어졌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1] 이한수, 『바울신학 연구』, (서울: 총신대학출판부, 1993), 92.

[2] Craig A. Blaising, “The Future of Israel as a Theological Question,”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44:3 (2001): 435.

[3] Benjamin L. Cladd, 하나님 백성 신학, 전광규 역 (부흥과 개혁사, 2021), 11.

[4] Howard Marshal, 『신약의 구약사용 주석, 사도행전』, 김현광 역, (서울: CLC, 2012), 207-208.

[5] 유상섭, 『설교를 돕는 분석 사도행전(1-14장』,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2), 262.

[6] J. A. Alexander, A Commentary on the ACTS of the Apostles, 2 vols. (London: Banner of Truth Trust, 1857), 1:309, 유상섭 재인용 268.

[7] 유상섭, 『설교를 돕는 분석 사도행전(1-14장』, 280.     

[8] Howard Marshal, Howard Marshal, 『신약의 구약사용 주석, 사도행전』,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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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 아신대학교(ACTS) 선교대학원 교수 및 GMS 아랍권 선교사(천안장로교회 파송. since 1989). 그의 책으로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CLC, 2009)과 아랍권 및 이슬람권 선교와 관련된 여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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