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교에서 교수로 일하는 후배 목사가 우리 집을 찾아와 저녁을 먹으며 말했다. 그리스에 많은 분도 아니고 목사라고는 몇 사람 밖에 없는데 왜 그리스의 숨겨진 이야기나 성경 이해에 도움을 주는 글을 쓰지 않느냐고… 처음엔 별 의미 없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그 말이, 그 의미가 생각났다. 할 수만 있다면 글로 정리하려고 펜을 들었다.
그리스 이야기 (1)
터키의 소아시아반도의 북서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에게해 연안에서 5km 정도 떨어진 내륙의 히살리크 언덕에 있는 트로이시의 목마는 신화와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바울 사도 당시의 드로아(트로이) 항구는 고대 트로이를 흐르는 스카만더 강에 토사가 쌓여서 내륙으로 밀려난 고대 트로이를 대신하여 5km 더 멀어진 곳에 새로운 드로아 항구가 열렸다. 오늘날은 작은 시골 마을에 지나지 않기에 순례객이 그곳을 찾기도 힘든 장소가 되었다.
당시 이곳에서 떠나가는 배를 타고 사모드라키를 경유, 만 하루 정도 뱃길을 달려가면 ‘새 동네’라는 뜻을 가진 ‘네아 뽈리’에 도착하게 된다. 바울 사도 당시의 이 도시 이름은 “네압볼리” 즉 새(네아) 동네(뽈리), 신촌(新村)이었다. 네아뽈리 부두에서 손에 잡힐 듯 떠 있는 싸소스 섬 주민들이 식민지 개척을 위해 내륙에 세운 도시라는 의미에서 새 동네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기원전 7세기경 일이다.
신촌 네아뽈리에 도착하다
그러다 바울 사도가 마케도니아 사람들의 환상을 본 후 이 땅에 도착한다. 바울 당시의 부두는 현재의 항구에서 조금 아래쪽으로 자그마하게 터만 남아 있고 오늘날 항구는 근래에 와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도시는 9세기경부터 오스만 터키의 지배에 들어가기 전인 14세기까지 도시의 이름을 그리스도의 도시라는 ‘크리스토 뽈리’라고 부른다. 즉 ‘예수 촌’이라고 부르지만 터키인들이 이 도시를 접수한 후 말을 메는 곳, 또는 ‘말 등 위’라는 의미를 가진 ‘까발라’라고 부른 것이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십자군 시대에 지어진 아크로폴리스의 성벽이 말해주듯이 이 도시는 오랫동안 많은 침략과 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그런 아픈 상처보다 자신들의 도시가 유럽에서 처음으로 복음이 전해진 도시라는 것에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있다.
바울 사도는 그의 두 번째 선교여행을 소아시아의 끝인 이곳에서 반환점을 찍고 다시금 그가 왔던 지역을 거슬러 되돌아가고자 했을 때 그 유명한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았다(행 16:9~10). 그러나 당시의 소아시아와 마케도니아 사람들을 다르게 구별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살고 있는 지역만 다를 뿐이지 의복도, 사람도, 언어도 동일한 문화권의 사람들인데 어떻게 사도 바울은 꿈속에 나타난 그 사람이 마케도니아 사람인 것을 알았을까?
2004년 그리스 아덴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에 까발라(네아볼리)에 다녀오게 되었다. 그리스 정교회는 웬만해서는 교회나 성화를 손대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는데, 바울 사도 도착 기념교회는 도로변에 접한 외벽에 그려진 성화를 지우고 대신 벽화를 모자이크로 다시 만들고 있었다. 이곳을 찾는 모든 관광객의 순례 목적이 바로 이 그림일 만큼 이 벽화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모자이크 벽화의 개작의 책임을 맡은 안토니라는 이탈리아 장인은 까발라시(市)의 자치 의회와 교회에서 주문한 대로 모자이크화를 다시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놀라운 것은 그림의 내용이다. 바다 건너 드로아 성에서 환상을 보는 바울 사도와 네아뽈리에 도착한 사도의 그림 사이에 있는 바울을 초청한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공사 전의 벽화에서 보았던 바울 사도의 얼굴과 달랐다. 바울을 불렀던 문제의 인물은 알렉산더 대왕이었다. 아버지 빌립 2세와의 갈등으로, 죽을 때까지 수염을 기르지 않은 미동의 얼굴을 한 알렉산더였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그는 기원전의 인물 아닌가…!
누가 이렇게 성경을 해석할 수 있을까라는 나의 질문에 안토니는 자기 역시도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바울 도착 기념교회 정교회 신부가 답을 주었다고 한다. 바울 당시, 당대의 인물은 아니었지만 회자되던 가장 유명한 마케도니아 사람은 알렉산더 왕이었다. 바울 사도가 환상을 볼 당시, 통용되던 동전에도 웬만한 신전이나 궁전에도 용맹한 모습으로 전투에 임하는 얼굴 또는 전신의 벽화와 모자이크들이 그려져 있던 왕의 모습이었다.
바울을 부른 마케도니아인이 알렉산더라고(?)
그래서 환상 속에 나타나 바울 사도를 부른 인물은 필시 알렉산더의 얼굴을 하고 나타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마케도니아 인이 자기를 부른 것이라고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그리스인 대부분이 인정하고 있기에 교리적이든 역사적이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단다. 그래서 오래전 이곳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다시 찾았을 땐, 옛 모습과는 전혀 다른 그림의 사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개작의 이유가 일리는 있지만, 왜 그리스인들은 성경이 이름을 말하지 않은 마케도니아 사람을 알렉산더라고 규정했을까? 마케도니아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알렉산더 대왕이 라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기에 조금은 공감이 가는 부분이긴 하지만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공해와 매연으로 흐려졌던 벽화를 대신하여 금빛나는 모자이크화가 보기도 좋았고 의미도 있어 좋았지만 그리스는 신앙과 전설 그리고 역사와 신화가 혼합된 혼돈과 혼란의 장소인 것 같았다. 마치 아주 오래된 동전의 양면, 희미한 모습의 과거에서 현재의 가치를 찾으려는… [복음기도신문]
김수길 선교사 | 총신 신학대학원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GMS 선교사로 27년간 그리스에서 사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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