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송준기 칼럼] 메신저가 아니라 메시지다

사진: Unsplash의 Bundo Kim

송준기 목사는 ‘교회와 선교는 하나’라는 주장을 이론만이 아닌, 선교적 교회 개척 실행의 순종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그동안 그같은 생각과 순종의 여정을 저서 <끝까지 가라> 등 10권의 책에 담아냈다. 이 칼럼은 그의 저서 발췌와 집필을 통해 선교적 교회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한다. <편집자>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사 58:1)

자뭘텐

예수님의 명령 따라가기를 진행하자 여기저기서 모임이 시작되었다. 저마다 자신의 합당한 자를 찾아 모임을 만들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들 중 하나가 ‘자뭘텐’ 모임이었다.

대학 4학년이 된 성민 형제는 캠퍼스에서 인기가 많았다. 그의 밝고 외향적인 성격과 후배들을 아끼는 행동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 컸다.

그는 내게 합당한 자였다. 웨이처치 개척 첫 2년 동안 나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그를 만났다. 함께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하며 진로에 대해 말했다. 그동안 그는 자기계발 서적을 많이 읽었다. 마침 그가 만났던 예수님의 명령은 황금률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7:12)

그 말씀에 순종하려고 마음먹자 후배들이 떠올랐다. 대학을 졸업하면 세상에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염려하는 학생은 그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자기가 받고 싶은 것을 후배들에게 주기로 결심했다.

그러고는 ‘자뭘텐’(자네, 뭘 먹고 살 텐가?)이라는 제목의 10주짜리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매회 2시간 동안 미리 정해진 책들을 읽어오면 누군가 요약, 발표하고 토의 후에 그가 말씀과 기도로 마무리했다. 그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가며 배웠던 대로 실행했다. 이 모임이 진행되면서 그의 친구와 후배들 여덟 명이 매주 모였고, 10주가 지나면서 그들 중 세 명이 웨이처치 성도가 되었다.

말씀 그 자체

성민 형제는 진로 상담 전문가나 세상에서 성공한 선배가 아니었다. 같은 고민을 가진 친한 형이자 오빠였다. 그럼에도 그가 모임을 만들어서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말씀 때문이었다. 지혜와 능력의 원천이 본인에게 있지 않았다. 성경에 있었기에 그는 담대할 수 있었다.

자뭘텐 모임에서 탄생한 4인조 그룹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토요일마다 복음으로 홍대를 쓸고 다녔다. 그들은 또 ‘밑끝도’(밑도 끝도 없이 전도) 모임을 만들었다. 매주 토요일 저녁에 홍대입구역 8번 출구에서 모여 무작정 전도했다.

시간을 정해놓고, 거리를 다니며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했다. 복음을 에둘러 말하거나 관계를 쌓고 나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이고 즉흥적으로 전했다. 그들은 담대했다. 거절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말씀 때문이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요 6:44)

눈만 마주치면 닥치는 대로 예수님을 믿느냐고 물었고, 그분이 누구신지를 전했다. 밑도 끝도 없이 무작정 전도하는 그들은 웨이처치를 전도부대로 바꾸었다.

성경 전달자들이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본인들에게 있지 않고 말씀에 있다. 성경이 창조주의 말씀인 것을 믿는 한 그 전달자는 담대하다.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단지 옮겨놓을 뿐이라서 어렵지도 않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이미 기록된 말씀에 쓰인 대로 행하고 전한다(사 58:1).

전도에 실패란 없다

전도를 두려워하는 주된 이유는 실패감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전도 후에 거절당하면 실패했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실패는 없다.

사도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라고 말했다(고전 3:6). 전하는 것이 제자의 임무이고, 그 결과는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가끔 그것을 자기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복음은 전달자 자신의 생각이 아니다. 전도자 역시 복음의 수혜자에 지나지 않는다. 받은 것이라 자기 것처럼 자랑할 수도 없다(고전 4:7).

복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우리는 받은 것을 다시 전달할 뿐이다. 우체부를 생각해보라. 그는 자신이 쓰지 않은 편지를 봉투에 적힌 주소지에 전달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만약 수신자가 그 편지를 받지 않겠다고 하더라도 우체부의 책임이 아니다. 그는 잘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전달자의 책임은 전달하는 것에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결정은 수신자의 몫이다.

영적 우체부 중 하나였던 설교자 웨슬리(John Wesley)는 복음전달에 대해 “복음 설교의 결과, 청중들은 화를 내거나 회심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전달자는 열매에 관여치 않는다. 다만 사랑해서 전한다. 성경대로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그분의 명령을 따른다(요 14:21). 그분께 붙어있을 때 열매는 저절로 맺힌다(요 15:5).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에 사로잡히면 된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이미 성공이다.

전도를 하지 않는 것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전도에서 그것은 거짓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 아니라 반대자 혹은 헤치는 자가 된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마 12:30)

전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크리스천은 누군가에게 복음을 직접 전해 듣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윌리엄 페이(William Fay)가 쓴 《Share Jesus Without Fear(두려움 없이 전하라)》를 보면 흥미로운 통계가 나온다. 기독교인들의 75~90퍼센트가 일대일 전도를 통해 복음을 접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새생명축제 같은 교회 전도행사를 통해 복음을 영접한 경우는 17퍼센트뿐이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불신자들은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 로마서는 이 부분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0:14,15)

복음 전파의 네 가지 내용

복음 메시지가 그 전달자보다 더 크고 높다. 그래서 전달자는 메시지를 바꿀 수 없다. 오히려 메시지가 전달자를 바꿀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우체부가 전달해야 할 편지를 자기 맘대로 뜯어서 내용을 바꿔 전달하면 직장을 잃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복음 메시지를 전하지 않거나 누락하거나 혹은 바꾸어서 전달하면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가 바뀌게 될 것이다. 복음을 전할 때 바꾸거나 누락할 수 없는 메시지의 네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첫 번째는 죄를 알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사 58:1)라고 명령하셨다. 예수님의 첫 복음 메시지는 “회개하라”였고, 제자들도 같은 말씀을 전했다(마 4:17, 막 6:12). 우리도 복음을 전할 때, 죄를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두 번째는 복음 즉,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며, 그 결과는 사망이다(롬 3:23, 약 1:15).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망하도록 버려두지 않으셨다.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죄의 값을 대신 치르게 하셨다(롬 5:8).

세 번째는 초대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믿으라고, 그래서 구원을 받으라고 초대하는 것이다(요 3:16). 함께 신앙생활을 하자며 교회로 인도하는 것도 일종의 초대이다.

네 번째는 결과를 알리는 것이다. 복음 메시지를 전하는 일을 마치면 전달자의 책임은 끝난다. 하지만 들은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만약 상대방이 복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면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믿음의 결과를 알려줘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알려주고(눅 14:27,28),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도 알려줘야 한다.

웨이처치 이태원

성민 형제의 자뭘텐 모임을 통해 탄생된 네 명의 제자들은 ‘밑끝도’가 되었다. 닥치는 대로, 밑도 끝도 없이 전도해대던 그들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쫓아 이태원으로 넘어갔다. 홍대의 버스킹 문화가 주변 상권에 의해 타격을 받던 시기였다.

홍대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월세가 계속 올랐다. 치솟는 월세는 점주들의 생활고로 이어졌고, 거리의 가수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 되었다. 노래가 시작되면 근처 가게의 사장이 나와서 쫓아내곤 했다.

거리의 젊은이들이 하나둘 홍대를 떠나 이태원으로 갔다. 특히 경리단길, 그 좁은 골목 하나를 오가며 자유를 즐겼다. 밑끝도 모임은 전도현장에서 사람들의 이동을 보았다. 물길이 바뀌자 낚시꾼들도 고기떼를 따라 배를 옮겼다. 그리고 이태원 전도가 시작되었다.

밑끝도는 거리마다 복음을 전하고 다니다가 밤 9시 이후부터 시작되는 홍등가를 발견했다. 골목 하나가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어둡고 더러웠다. 그곳에 게이바와 윤락여성들의 손짓이 즐비했다. 밑끝도는 빛이 필요한 곳을 발견했다며 그곳에 복음을 들고 뛰어들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전도의 현장에서 울고 웃는 동안, 밑끝도 모임은 어느새 열 명으로 늘었다. 더 많은 시간을 이태원에서 보내기 위해 또 하나의 형태를 준비했다. 그것이 ‘이태원교회’였다.

웨이처치가 하나 더 개척되었다. 팀원 중 한 사람은 신학대학원에 진학해서 교회의 행정 대표가 되었다. 팀원들은 1년 넘게 함께 기도하고 말씀 보며 전도했던 전우들이었다. 성장을 거듭해왔던 밑끝도는 모두의 응원과 사랑 가운데 파송 받았다. 이태원교회가 시작되던 날, 우리는 한자리에 모여 서로 포옹했다. 밑끝도가 전도하러 다닐 때부터 봐두었던 이태원의 한 건물 옥상이었다. 의자가 많지 않아 모두 앉지 못했다. 마이크 시스템이 없어 사회자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뜨거운 성도의 교제를 나눴다.

이태원 골목들을 내려다보며 서서 찬양하고 무릎 꿇고 기도했다. 또 함께 음식을 나눠 먹으며 교회의 비전 설명을 듣고 서로 격려했다. 해가 지자 기도가 또 시작되었다. 달이 뜨자 성도의 교제가 더 깊어졌다. 여름이 한창이었고, 옥상 열기는 늦은 밤까지 식지 않았다.

복음에 대한 지속적 침묵은 세상에 대한 암묵적 동의다_윌리엄 페이(William Fay)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끝까지 가라(도서출판 규장)>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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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기 | 총신신대원 졸. 웨이처치 담임 목사. ‘교회와 선교는 하나’라는 주장을 이론만이 아닌, 선교적 교회 개척 실행을 통해 순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저서 <끝까지 가라> 등 10권의 책에 그동안의 생각과 순종의 여정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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