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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치열한 향로봉 전투, 그리고 운명적 만남

사진: Chuanchai Pundej on Unsplash

[정전협정 70주년 특별기획]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2)

1951년 1월 중순경 제1연대 CP는 건봉사에 있었다. 우리 제1대대는 그 유명하고 치열한 향로봉 전투에 참가했다. 그런데 나는 중대장으로부터 늦잠을 잔다는 이유로 일주일간 최전방으로 배치되는 일종의 기합을 받았다. 당시 전쟁 고지에서 야영을 할 때는 매우 특이한 방법으로 임시 숙소를 만들었다.

먼저 평지를 만들어 중대장과 나 두 사람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중대장이 눕는 곳엔 약간의 골을 파고 얇은 돌을 2개 정도 구들처럼 놓는다. 그리고 그 아래에 가랑잎을 태워 돌을 뜨겁게 달궈 모포를 깔아서 밤새 따뜻한 잠을 잘 수 있도록 만든다. 연락병인 나는 차가운 흙바닥에 모포를 깔고 잠을 잤다. 물론 중대장은 항상 나를 동생처럼 따뜻하게 배려했다.

그러나 전투가 벌어지는 전방고지에서 연락병은 누구보다 기민하게 움직여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중대장보다 일찍 일어나 군속에게 철모에 물을 끓이게 해서 따뜻한 세숫물을 준비한 후 중대장을 깨워야 하는데 거꾸로 중대장이 나를 몇 차례 깨우곤 했다. 그 바람에 나는 기합을 받아 일주일 동안 최전방에 있는 회기소대에 배치됐다.

그 무렵 향로봉 전투에서 화기소대장이 적탄에 부상을 당해 후송되고 대신 중대 선임하사관이었던 정두현 상사가 임시 화기소대장에 보임됐다. 정 상사와 내가 각별한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중대장이 나를 일부러 화기소대에 배치해 준 것 같았다. 나는 칼빈 총을 받아 전투에 임했다.

나는 신병 때부터 많은 전투경험이 있어 나름 최전방을 사수하는데 자신감을 가졌다. 낮이면 향로봉 정상을 탈환했다가 밤이면 정상에서 밀리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됐다. 가끔 정 상사가 “조 하사, 너무 앞에서 설치지 마라. 내 뒤로 와라.” 하면서 신변을 보호해 주려고 자신감으로 들뜬 나를 자제시키곤 했다.

궂은 비가 내리는 밤이었다. 향로봉 정상을 탈환하고 고지 아래 ‘개인호’에서 교대병으로 초병에 섰다. 비오는 날 초병에 임할 때는 목을 졸라매는 소매 없는 우의를 입었다. 경우에 따라 앉아서 전방을 응시하는데 어느 순간 깜빡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손들어 꼼짝마!” 얼마나 깊이 졸았는지 총도 이미 빼앗겼다. 처분만 기다리고 엎드려 있는데 권총으로 철모를 두드렸다. “조 하사 임마, 여기가 어딘데 졸고 있나 정신차렷!” 정 상사의 목소리였다. 위기 때마다 나를 감싸주는 정상사의 따뜻한 배려를 그때는 미처 모르고 지나갔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니 참으로 눈물겹다.

‘정 상사님, 사랑합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중대장의 나의 전방 배치는 사랑의 회초리였던 셈이다. 정 상사는 낙동강 전투 때부터 여러 번 지휘관으로 권유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계속된 전투에서 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하는 바람에 계급이 높은 하사관을 장교로 위관하는 선례에 따라 권유를 받았으나 그는 한사코 사양했다. 독특한 인상을 가졌던 정 상사는 일등상사 계급장 바로 위에 별이 붙어 있어 말을 할 때마다 금니가 번쩍거리던 기억이 난다.

‘이인식’ 상사는 정 상사와 함께 국방경비대에 입대할 때부터 병과가 위생병이었다. 그러나 의학 분야의 전문지식이 없어 장교 위관이 불가능했다. 5.16혁명이 있을 때까지 직업군인으로 전향해 30여 년 동안 정 상사와 이 상사는 만능 특무상사와 이등상사로 청춘을 군에서 보냈다.

향로봉 전투는 낙동강 전투 다음으로 가장 치열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상자 역시 낙동강 전투만큼 많이 발생했다. 향로봉을 탈환한 뒤 나는 10여일 만에 중대장 연락병으로 복귀했다. 그 무렵 주 저항선이 장기화될 조짐이 보였는지 전후방 부대가 교대되어 우리 3중대와 연대 의무중대가 강원도 양양으로 이동하여 남대천 건너편에 있는 ‘월리’라는 동네에 주둔하게 되었다. 당시 정 상사도 중대 선임하사관으로 복귀했다.

모처럼 정 상사와 이 상사가 한 동네에서 동거동락을 하게 됐다. 병력의 숙영방법은 피난민들이 떠나간 민가의 빈집을 주로 이용했다. 중대장은 주인이 살고 있는 민가에 입주해 큼직한 안방 거실에서 지내기로 했다. 주인집 아주머니의 친절한 배려 덕분에 맛있는 음식도 제공받았다. 중대 선임하사관이었던 정두현 상사는 항상 분주했다.

반면 의무중대 이인식 상사는 비교적 자유로워 양양시내를 자주 다니곤 했다. 이 상사는 나를 만날 때마다 고향 동생이라고 부르며 맛있는 먹거리가 생기면 늘 내게 가져다주기도 하는 자상한 고향 형님 같은 존재였다. 나 역시 그 당시엔 전투가 없는 시기여서 다소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운명의 만남

어느 날 밤, 이 상사가 정 상사에게 나를 데리고 양양 시내 구경을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절친한 정 상사가 그의 부탁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이 상사를 따라 양양 시내 구교리에 위치한 언덕 집으로 올라갔다. 그 곳에는 두 명이 여인이 있었다. 얼핏 보기에 한 사람은 나이가 좀 들어보였고, 또 한 사람은 단발머리에 분명 여고생으로 보였다. 이 상사는 내게 여고생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하사, 내 여동생이야. 인사해.” 한 여인을 소개했다. 나는 꾸벅하며 눈인사를 건넸다. 그러더니 이 상사는 이 양에게 나를 고향동생이라고 소개했다. 이 양이 나를 힐끔 쳐다보는데 얼굴이 무척 복스럽게 보였다. 한눈에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옆에 있는 여인을 가리키면서 자기 친구라고 소개했다. 나는 두 사람의 친숙함이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했다.

그날 밤 부대에 돌아와 중대장과 함께 잠을 청하는데 자꾸 이 양의 모습이 떠올라 이리저리 뒤척거리며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러나 싶으면서도 그 모습이 쉽사리 잊혀 지지 않았다. 며칠 지난 어느 날, 또 이 상사가 구교리에 놀러 가자고 했다. 남대천을 건너가면서 이 상사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24세된 여인의 이름은 김옥례, 내게 소개한 이 양의 이름은 이봉실이며 올해 18세라고 했다.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한 상태이며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무남독녀 외딸이라고 했다.

이 상사는 이 양의 부모에게 성씨가 같아서 어머님 아버님 하면서 그동안 친숙하게 지냈고 이 양도 친오빠같이 자기를 따른다고 말해 주었다. 이 양 집은 옥례 양의 집 위에 있는 함석집이었다. 그 옆집에는 양숙이네가 살고 있었다. 그날 옥례양 집에서 양숙이 엄마와 이 양도 함께 자리하며 덕담을 나누고 오랜만에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 밤 숙영지 월리로 돌아오는 길에 이상사가 내게 물었다. “조하사, 너 이 양이 마음에 드냐?” 그의 거침없는 질문에 약간 당황했다. 그런데 싫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머뭇거리며 걸어가는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나는 옥례 양과 장래를 이미 약속한 사이란다.” 순간 그 말이 참 용감하게 들렸다. 그러면서 부모님들의 결혼 승낙도 이미 받았다고 자랑했다. 이 상사는 나보다 7년이나 위였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조 하사, 이 양이 마음에 들면 오늘 밤에 편지를 써서 내게 줘.” 그날 밤 나는 몰래 중대장 곁을 빠져나와 이 상사에게 편지를 전해주고 숙소로 돌아왔다. 마음을 졸이면서 이 양의 답신을 기다리는 잠 못 드는 며칠 밤을 지새워야 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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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학 | 1934~2013. 충남 단양 생(生). 학도병으로 6.25전쟁 참전. 삼미그룹 총무과장 정년퇴직. 서울 노원구 국가유공자수훈회 사무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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