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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정치적으로 분열된 사회, 목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진: Jon Tyson on unsplash

교회 지도자가 해야 하는 가장 정치적이고 또 실행해야 할 사명은 우리가 충성을 바쳐야 할 왕이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교인들에게 상기시키는 것이다

최근에 정치적인 견해가 달라서 더 이상 교회를 다닐 수 없다는 교인의 통보를 들은 어느 목사의 하소연을 들었다. 또 문화적인 문제를 놓고 분열된 당회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나아가서 교회 내 정치적 분열이 너무 극심하여 결국 교회를 떠나야만 했던 목사의 이야기도 알고 있다.

우리 대부분은 이런 이야기에 익숙하다. 지난 6년에 걸쳐서, 정치라는 전염병이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교회를 강타했다. 최근 라이프웨이 설문 조사에 따르면, 목회자 중 무려 63퍼센트가 잦은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어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요인 중 하나가 다름 아니라 정치적 분열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여기 네 가지 방안을 권면한다.

1. 가장 먼저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되새겨주어라.

교회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그리스도인이 충성을 바쳐야 할 첫 번째 대상이 예수님과 교회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사실상 그 핵심에서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교인들이 알게 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결코 세상적인 의미에서 사적이거나 당파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예수님이 정치적 메시지를 들고 오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당연한 시대이다. 보통 이런 식이다. “이스라엘은 전사로서의 왕이 백마를 타고 와서 로마를 무너뜨리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음을 변화시키는 영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오셨다. 예수님은 단지 당신과의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원하실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말이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리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정치적인 선언을 하셨고,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막 1:1515:226). 예수님이 왕으로 오셨기에, 우리에게는 충성을 바쳐야 할 오로지 한 명의 통치자가 있을 뿐이다. “예수님이 왕이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분은 내 삶의 주님이시다”라는 정도의 의미로만 축소해서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이상이다. 그는 만왕의 왕이시며, 이 세상의 모든 정치적 분열을 뛰어넘어 그 위에서 다스리는 왕이시다. 

그리스도인에게 다른 충성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주님이 전 세계에 걸쳐서 만든 왕국이자 도시에서 왕되신 주님만을 섬기는 백성이다. 따라서 교회 지도자가 해야 하는 가장 정치적이고 또 실행해야 할 사명은 우리가 충성을 바쳐야 할 왕이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교인들에게 상기시키는 것이다. 

2. 정치적인 영역에서 교인을 제자로 만들라.

정치와 관련해서 교인들을 가르쳐야 한다. 이 말이 충격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아니, 오히려 반대로 교회에서는 최대한 정치에 관해서 자중해야 하는 거 아닌가? 따라서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복음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가 되라고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관해서 더 많이 가르쳐야 합니다.”

하지만 정치로 인해 교회가 분열된 게, 행여나 우리가 정치에 관해서 어떻게 토론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아서가 아닐까? 현재 정치 문제 때문에 고생하는 몇몇 목사에게 물었다. “뭘 제대로 하지 않아서 지금 사태가 벌어졌다고 생각합니까? 과거로 돌아간다면, 뭘 바꾸고 싶나요?” 그중 몇 사람이 같은 이야기를 했다. 개인 간 대화라는 측면에서 왜 그들을 좀 더 빨리 제자로 만들지 않았는지를 후회한다는 것이었다. 교회의 평화라는 명목으로 그냥 두고 봐서는 안 되는 대화나 말이 그냥 퍼지도록 방치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어려운 문제를 정면으로 부딪쳐서 해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좋든 싫든 교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에 의해서 제자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잊는 경향이 있다. 정치를 우리가 다루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그 역할을 할 것이다. 케이블 뉴스와 세속 문화는 지금도 교인들이게 분노의 정치를 훈련시키고 있다. 목회자는 부정적인 대화와 질문의 근원을 방향에서부터 바꿔야 한다. 나아가서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오해에 도전할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목회자는 합당함과 근신함과 바른 말로 자기 백성을 가르쳐야 한다고 성경이 가르친다(빌 4:5딛 2:28). 이 교훈을 우리는 다른 모든 영역과 더불어서 정치적 삶에도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 기억하자. 지금 당장 정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면, 정치가 나중에는 훨씬 더 분열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일으키며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3. 불안해하지 않는 존재가 되라.

격동하는 분노의 바다에서 교인들이 불안에 휘둘리는 존재가 되지 않도록 이끌어야 한다. 교회의 문화는 일반적으로 목회자의 지도를 따라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목회자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근심하지 않는, 평화로우면서도 고요하고 또 한결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어둡고 위험한 세상에서도 밝고 격려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신중하게 말하고, 행여 실수했다면 사과하는 데에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 

정신을 똑바로 차린 상태에서 우리 시대 당면한 문제를 바르게 처리하는 모범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교인 각자가 공적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우리는 강단에서 그 문제를 다룸으로써 보여줘야 한다. 정치적으로 결코 쉽지 않은 문제였던,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예수님은 피하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흥분해서 감정적으로 반응하신 것도 아니었다. 헤롯당이나 바리새인들을 비판하지도 않으셨다. 예수님은 단지 질문에 대답하셨다. 하나님이 주권자이시며, 가이사의 주권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정당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셨다(마 22:15-22).

4.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는 분야에서만은 똑같이 분명하라.

마지막으로, 교회 지도자는 성경이 분명하게 밝히는 곳에서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침묵해야 한다. 말씀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마치 성경의 입장이 서로 충돌하는 것 같기에, 정치에 관해서 그리스도인이 의견의 일치를 보는 건 어렵다. 

성경은 정치와 정책에 대한 답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이다. 많은 질문에 대한 체계적인 답변은 없다. 그리스도인은 정부 시스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정부 예산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민 문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성경 속 어떤 이야기는 대답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동시에 또 어떤 명령은 전혀 다른 대답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해석을 하다 보면 적지 않은 함정을 만나게 되고, 더불어서 우리 자신의 편견을 텍스트 속에 이입해서 읽기도 한다. 또한 시대착오적인 생각에서 고대 정치 시스템에서나 통하는 이야기를 현대 정치 시스템에 적용해서 이해하려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구약의 정치 상황과 신약의 정치 상황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내 취향에 맞는 성경 속 정치 성향 중 하나를 받아들이고, 나머지 다른 것을 향해서 그냥 눈을 감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한 하원 의원이 워싱턴 DC에서 목회하는 마크 데버(Mark Dever) 목사에게 국가 예산 문제와 관련해서 어떻게 투표해야 하는지 물어봤다는 이야기를 어느 목사가 내게 들려주었다. 데버 목사는 그 목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실 이 문제에 관해서 나는 나름 확고한 생각이 있었지만, 문제는 성경이 확실하게 알려주는 메시지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의원님,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이렇게만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데버 목사는 성경이 분명하게 알려주는 문제에 관해서만은 목회적 권위를 양보하지 않았다. 

정치적 제자도와 관련해서 교회 지도자는 첫 번째 방어선이다. 세상 문화는 쉬지 않고 교인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 그렇기에 교회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대안 사회가 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신실한 삶을 산다면, 그것부터 세상을 향한 우리의 증거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된 모습을 보고 세상이 이렇게 감탄하지 않을까? “와, 저 사람들 서로 사랑하는 것 좀 보세요!”(요 13:35). [복음기도신문]

세상 문화는 쉬지 않고 교인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 그렇기에 교회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대안 사회가 되어야만 한다

패트릭 슈라이너(Patrick Schreiner) | 패트릭 슈라이너는 Mid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Kansas City, Missouri)의 신약학 교수이다. 지은 책으로는 Political Gospel: Public Witness in a Politically Crazy World, Acts: The Christian Standard Commentary, The Mission of the Triune God: A Theology of Acts, The Visual Word: Illustrated Outlines of The New Testament Books가 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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