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K 칼럼] 새해, 교회를 위한 축복 기도문 (2)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
[지소영 칼럼] 끝자리
“엄마, 얼마가 필요해요? 저도 할 수 있어요. 끝자리 수를 알려주세요. 끝자리 만이라도 제가 낼게요.” 누군가를 도울 일이 있을 때나 집안에 급한 일이 생길 때면 이슬이는 늘 그렇게 말했습니다. 남편이 처음 병원에 입원했을 때 제 가방엔 이름 모를 흰 봉투가 들어있었어요. “빠른 쾌유를 빕니다.”라는 간단한 메모와 함께 돈이 들어있었죠. 누구일까 궁금했는데 한참 지난 후에 봉투의 주인공이 […]
[TGC 칼럼] 전인적 돌봄에 참여하는 교회
로잔에서 서울까지_로잔 글로벌 분석2024 서울 제4차 로잔대회를 준비하며 교회 없이 추구하는 전인적 선교? 종종 우리를 무릎 꿇게 하는 일이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인도할 때가 있다. 고집이 센 의사가 많은데, 그것이 바로 나의 모습이다. 이 고집을 꺾기 위해서는 혼란스러운 경험이 필요하다. 나는 약 30년 전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이 겪고 있는 상황에 변화를 주고자 하는 열정으로 선교지에 […]
[정성구 칼럼] 언약도들의 신앙
영국과 스코틀랜드는 같은 나라인 듯하지만 다른 나라이다. 두 나라는 하나의 왕국이었지만, 서로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많다. 오래전에 내 룸메이트는 스코틀랜드에서 온 머리(Murry)란 친구였다. 나는 그에게 “영국에서 왔느냐?”고 묻자 그는 정색하면서 “나는 스코틀랜드 사람이다”라고 화난 듯이 힘주어 말했다. 한때 스코틀랜드 출신이 국왕이 되기도 했지만, 제임스 1세는 스코틀랜드에는 6세가 된다. 그 둘은 통합하려고 가톨릭과 영국 […]
[이아침 칼럼] 하나님의 지배력을 믿는 사람들
마태복음 7장 말씀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혁명과 같은 말씀으로 제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 천국을 티 내고 산다는 것은 맞는 말씀이지만 오류도 있습니다. 예수를 소유한 사람은 반드시 예수를 소유한 티를 낸다는 말로 바꿔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주목하느라, 실상 말씀하시는 ‘주님’을 놓칩니다. 말씀하신 것을 지키는 나는 의로워지고 말씀하신 주님은 […]
[GTK 칼럼] 사랑이란 …(2)
Love Is…(2) 성범죄를 일으키고 나서 회개도 하지 않고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여 말씀을 전하는 한 목사의 교회 성도에게 “당신은 그의 죄가 아무렇지도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목사의 설교에서 나오는 능력을 보면 하나님이 여전히 그를 사용하신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바울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수사학에 뛰어나고 청중을 울고 웃게 하며 어쩌면 영적 교훈을 가슴에 콕콕 박아주는 […]
[편집인 칼럼] 선량(選良)으로 가는 길
“아저씨 ㅇㅇ동 ㅇㅇ번지 가려고 하는데 저를 데려가 주세요” 1960년대 중반 어느 날이다. 지금 초등학교로 불리는 국민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의 일이다. 우리 가족은 그날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첫 나들이를 떠나 부산역으로 갔다. 요즘으로 치면 산업박람회 같은 행사를 보기 위해 나섰던 것 같다. 호기심 많은 어린이의 눈에 모든 물건들이 신기했다. 처음에는 가족의 손을 꼭 잡고 있었는데, […]
[특별기획] LST 함정을 타고 대포항으로
[정전협정 70주년 특별기획]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27) 1952년 1월 초순, 중대장님의 몸이 회복되었지만 1연대로 원대 복귀가 되지 않고 1개월간 미국 고등군사반으로 발령이 나서 도미하게 되었다. 전쟁 이후 오랜 시간 생사를 함께했던 중대장님과 서운하지만 작별을 해야 했다. 그 날의 아쉬움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 중대장님과 작별하는 날, 그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조 중사 때문에 […]
[TGC 칼럼] 소셜 미디어를 통한 자기 위로의 위험
얼마 전 나는 Wired 인쇄판에서 “크라우드소싱 치료”를 통해 소셜 미디어에서 “자기 위로”(self-soothing)를 선호하는 우리 세대에 관한 통찰력 있는 칼럼 하나를 접했다. 검증을 위해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온라인 “커뮤니티”로 전환하고 있고, 그에 따라서 자신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수단으로 점점 더 “치료 말하기”를 의존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이런 흐름이 실제로 치료를 담당하는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인해서일 수도 있지만, 문제는 […]
[원정하 칼럼] 빈민식당 그리고 두 소녀 이야기
오늘은 임성경, 이수현 선교사님의 아들 하원이와 차오, 김유나 선교사님의 아들 데이브를 데리고 봄베이 빈민 자선 식당으로 출동했습니다. 이곳에서 평소처럼 많은 분들에게 식사와 절제회 전도팩(금주금연 팸플릿+만화전도책자+껌 세 통)을 나누던 중, 기쁨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늘 굴다리 밑에서 맨살로 흙바닥에서 거칠게 먹고살던, 그리고 아무 날 아무 시간에 와도 근처에 있다가 빈민식당에 들어 오던 한 아이가 예쁜 교복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