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GC 칼럼] 헤르만 바빙크를 읽기 위한 다섯 가지 원칙
2023년에 헤르만 바빙크의 Christianity and Science의 영어 번역본이 출판되고 그의 사상에 관한 문헌이 증가함에 따라 점점 더욱 많은 독자가 그의 신학 그리고 그가 대표하는 신칼빈주의 전통에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i] 그러나 Reformes Dogmatics(개혁파 교의학), Christianity and Science, Philosophy of Revelation 등으로 대표되는 바빙크의 책을 읽는다는 건 절대로 만만치 않다. 그의 글은 우아하기 이를 데 없지만, 문제는 […]
[고정희 칼럼] 오카에리나사이
‘오카에리나사이’(잘 다녀왔어요?) 동네 어귀로 들어오는 길목에 들어서니 꽃에 물을 주고 계시던 할머니가 반겨 주셨다. 나는 ‘타다이마‘(다녀왔습니다) 인사했다. 캐리어를 끌고 커다란 배낭을 멘 우리 부부의 모습이다. 한국 여정을 마치고 오사카 집으로 왔다. 집 앞 센토(목욕탕) 커다란 굴뚝에서 연기가 몽글몽글 나고 있었다. 센토 아주머니가 영업 시작을 알리는 일본풍 커튼을 문 앞에 걸고 있다. ‘오카에리나사이’ 반겨 주신다. 나는 […]
[GTK 칼럼] 그리스도로 충분한 기독교(2): 심리학에 물든 교회 1부
1980년에 우리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는 교역자들 가운데 일부 목사님들이 전문 지식도 없이 우리 교회의 교인인 한 청년을 성경의 진리로 도와 주려다가 그의 자살을 방조했다는 명목으로 소송에 휘말렸다. 이 사건은 미국의 사법 제도 역사상 최초의 성직자 배임 혐의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몇 년을 질질 끌게 되자 대중 매체들은 교회를 신나게 놀려댔다. 전국적으로 방송되는 어느 선정적인 프로그램에서는 […]
[TGC 칼럼] 바울의 복음은 예수의 복음과 다르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소셜 미디어에서 자기 교회는 바울의 복음이 초래하는 수많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예수님이 전하는 복음의 편에 서 있다고 말하는 어느 목사의 영상을 보았다. 그의 말에 충격을 받았을 많은 평신도 그리스도인에 비하면 사실 내가 받은 충격은 크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바울에 대한 이런 식의 생각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바울은 예수님이 […]
[원정하 칼럼] 땅글 캄보디아, 경제적 자립 지부 선언하다
만화책으로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우리 ‘땅에 쓰신 글씨’ 프로젝트 팀(이하 ‘땅글’)에는 벌써 열 두 곳의 지부가 있습니다. 그리고 스물두 개의 언어로 지금까지 150만 부 이상의 만화 전도책자를 나누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한국 지부(대표 노재근 집사님)에서 모금된 재정으로 필요를 호소하는 각 지부에 공급하고 있는데, 처음 몇 년은 거의 영업사원처럼 뛰어다녔습니다. 제발 한번 받아서 나누어 줘 […]
[김종일 칼럼] 무슬림 복음 전도에서 ‘문화 변용’ 문제
밖에서 보는 이슬람(107) 문화 변용의 의미 문화 변용(cultural appropriation)은 한 문화 또는 그 구성원들이 다른 문화의 요소들을 인수하고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 현상은 종종 예술, 신앙, 상징, 언어, 행사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볼 수 있다. 문화 변용은 매우 복잡한 현상이며, 다양한 맥락과 상황에서 다르게 나타난다. 문화 변용이 문제가 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권력의 불균형’이다. […]
[GTK 칼럼] 예수의 좋은 병사여, 함께 고난을 받으라(2)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4) 우리는 각자 모두 바쁜 삶을 살아갑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은 사람들은 청년의 때에 그 많은 시간 뭐 하고 지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청년들은 지금 자기 나름대로 바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갈수록 일이 더 많아지지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
[TGC 칼럼] 질문 잘하기: 신학자의 모델, 마리아처럼
질문은 위험한 일이다. 근대에 들어서 많은 그리스도인이 질문 자체를 두려워했던 신앙의 선배와 달리 질문의 가치를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질문을 잘한다는 게 무엇인지, 좋은 질문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세상에 중립적인 질문은 없다. 질문은 들판에서 비누 거품을 날리며 노는 놀이가 아니다. 질문은 지적 생활의 기본 방식이며, 그만큼 세상과 하나님을 향한 전인격의 방향성을 […]
[지소영 칼럼] “선생님들은 강당으로 모두 오세요”
스승의 날을 맞이해 학생들이 준비한 깜짝 시상식… 아이들이 준비한 상장에 우리는 박장대소했다. 국어과 ‘아름다운 문학작품 감상’수학과 ‘수학은 즐거운 일상’사회과 ‘과거, 현재를 알고 미래를 예상’과학과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현상’독서과 ‘내 앞엔 언제나 책상’외국어 ‘말이 통할 그 날을 상상’예체능 ‘우리학교 예체능은 상상 이상’생활관 ‘앞으로는 일찍 기상’성경과 ‘이곳이 하나님 세상’해외과 ‘캐나다로 비상, 중국으로 비상’신입선생님은 ‘신인상’영양사님은 ‘매일 기다려지는 […]
[GTK 칼럼] 예수의 좋은 병사여, 함께 고난을 받으라(1)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은 탈권위와 소통의 시대입니다.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사회에서는 정치지도자, 학교에서는 선생님, 가정에서는 부모가 권위를 가지고 권위 아래 있는 사람들을 쉽게 통제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회에서도,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권위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직분이 주는 권위를 사용해야 할 때도 “권위주의”라는 말을 들을까 두려워 움츠러드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세태를 부추긴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아마도 권위가 남용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