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다시복음앞에 집회를 통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집회 기간중 참여한 강사님들의 강의를 요약해서 소개합니다. <편집자>
복음과 성경 요5:39~40
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다. 신앙생활의 기준과 근거는 성경이다. 요한복음 5장 39절은 내 목회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 말씀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여기서 성경은 구약성경을 가리키는데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는 책이다. 그런데 흠정역 성경에서는 이 본문이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 “성경을 탐구하라 이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이니 성경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거하느니라” 나는 성경을 탐구해본 적이 없었다. 성경을 연구하면서 우리의 영혼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여기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경은 위인전기가 아니다. 성경의 목적과 초점은 분명하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의 핵심 사역은 십자가와 부활이다. 곧 복음의 핵심이다. 이것이 본질이다. 이것을 놓치면 성경을 묵상해도 내 중심으로, 내 위로를 얻기 위해 보게 된다. 성경은 복음의 핵심 렌즈를 끼고 탐구해야 한다. 그러면 보인다.
500년 전 종교개혁의 캐치 프레이즈는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성경으로 돌아가니 예수님이 보였다. 예수님을 빼고 신앙생활이 가능한가?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 진정한 예배가 가능한가? 기도는 어떤가?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 주시겠다고 하셨다. 천국은 복음이 열린 사람이 들어간다. 기도의 목적도 천국이다. 기도의 목적은 번영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기도를 바꿨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
한동안 한국교회에 은사운동, 신비운동이 많았다. 성령을 주시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 은사, 신비, 권능인가?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라 “권능을 받고” 그 다음에 쉼표가 있다. 쉼표 다음에 목적이 나온다. 증인 되는 것이다. 누구의 증인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증인이다. 성령이 역사하면 복음이 깨달아 진다. 성경을 떠난, 성경을 버린 은사주의 운동은 지양되어야 한다. 성령을 주시는 이유와 목적이 복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다. 영적인 세계가 믿어지지 않아서 너무 힘든 삶을 살았다. 골반에 금이 가서 장애를 입게 되었다. 통증이 견딜 수 없으면 병원에서 마약 성분이 있는 모르핀 주사를 맞아야 한다. 마약에 중독되면 폐인이 된다. 고통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길은 예수님 밖에 없었다. 난 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 예수님 앞에 나오는 길밖엔 없었다. 성령의 권능으로 나의 자아가 깨졌다. 골반에 금이 가서 인생이 폐인 되었는데, 백부장이 자기 하인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 갔던 사건을 읽게 되었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므로 말씀만 하옵소서” 옆에서 누가 나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나에게 본문의 의미를 아느냐고 물었다. 모르겠다고 하니 가르쳐 주었다. 왜 백부장이 “나도 남의 수하에 있다”고 했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억지로 성경을 보긴 했지만 예수님의 수하에 질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질병만 예수님의 수하에 있는 게 아니다. 귀신도, 식물도, 성난 풍랑도, 모든 게 다 주님의 수하에 있었다. 현대의학으로는 못 고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하시면 나을 수 있다는 것을 믿기에 이르렀다. 그 때 알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어지게 된다는 것을. 그 때 성령의 뜨거운 불이 치료하시는 것을 경험했다. 그 후 성경의 모든 초자연적인 역사가 믿어졌다. 성령을 통해 나의 이성주의가 깨졌다. 나의 자아가 무너졌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니 믿어지고, 복음이 열렸다. 기도하면 성령이 역사하고, 성령이 역사해야 이성주의와, 과학주의 합리주의가 깨진다. 그래야 말씀이 열리고 믿어지게 된다.
복음 때문에 성령을 주셨다. 기도 때문에 성령을 주셨다. 한국교회가 너무 분열되어 있다. 용서 받아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는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성경을 떠났다. 우리나라가 살 길은 복음 밖에 없다. 복음이 정말 복음이 되면 복음에 합당한 삶이 따르게 되어 있다. 삶이 없는 복음은 가짜다. 아직 변화된 증거가 없는 사람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의 적은 신비주의, 기복주의, 휴머니즘, 혼합주의, 쾌락주의, 이성주의다. 이것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야만 깨진다. 우리 교회는 땅의 축복을 구하지 못하게 한다. 땅의 축복은 주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본질이 아니다. 세례 요한의 첫 설교는 회개하라는 것이었다. 회개하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부분적으로 지은 죄를 회개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메타노이아’는 돌이키라는 뜻이다. 천국으로 돌이키라는 말이다. 땅의 가치에서 돌이키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최대 가치를 두라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다. 살 길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