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회복 | 메시지 정리
김용의 선교사(복음의빛연합선교협회)
마지막 때에 복음을 위하여 함께 싸우는 복음기도 동지인 우리에게 그 영광으로 회복하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2011년 ‘다시복음앞에’대회를 시작한지 10년이 되는 올 해, ‘그 영광을 회복하라’는 부르심으로 대회를 열어주셨다. 온 세계가 팬데믹으로 함께 겪는 특유의 상황 속에서 위기감이 있는 이 때에 오직 복음을 선포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축복이고 특권이다. 특별히 이번 ‘2021다시복음앞에’의 주제는 회복에 관한 말씀을 주셨다. 회복은 원래의 것들을 다시 찾는 것, 본질을 다시 세운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가 어디서부터 어디로 떨어졌는지, 길을 잃어버렸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깨우쳐 주셔야 진정한 회복을 이룰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되었다’는 것은 주님이 꿈꾸시고 마음에 기뻐하시는 뜻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히 성취됐다는 말이다. 영광 그 자체였던 창조 때의 모습을 원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하나님의 창조의 본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소가 에덴이었다. 에덴동산은 행복이 완성된, 기쁨의 동산이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게 한 언약을 주셨는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타락한 사탄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범함으로 완전한 행복의 에덴은 뺏기고 하나님의 원형은 가장 비참한 지경이 되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면서 에덴도, 하나님의 형상도 잃어버린 인간이 되었다. 우린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서 영원한 천국영생은 꿈도 못꾸고 내던져진, 회복이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 이후에도 인간 편에서 결코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역사 가운데 두 차례나 검증되었다. 노아 홍수의 심판, 그리고 바벨탑 사건을 통해 인간으로서는 결코 회복을 꿈꿀 수 없음이 증명됐다. 죄악으로 인해 원형이 깨어져버렸다. 그런데 성경은 이 원형이 ‘완성’된 결말을 말씀하신다. 처음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 원형을 되찾게 해주시는 일이 성경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다. 준비된 ‘새 예루살렘’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존재로 회복될 그 나라를 보여주셨다. 이 기가 막힌 인류의 절망 앞에 회복이 가능하다는 이 선포야말로 복음 중의 복음, 희망 중의 희망 아니겠는가!
우리 심령에 아멘하고 붙들어야할 회복의 말씀이 있다! 이사야 61장 1절-3절 말씀이다. 회복을 위해 메시야를 보내서 회복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받은 에덴이 어떤 곳이었는지 결코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가난한 자, 근심하는 자,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비참한 운명에 내던져진 채 그 저주에 허덕이는 이 땅의 영혼들에게, 뜬구름 같은 수많은 종교와 사상으로 희망의 줄을 붙잡아보려는 허망한 인생들에게 회복을 말씀하신다. 그 회복은 상황의 모면이나 형편의 개선 정도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시는 회복은 ‘기쁨을 넘어 영광으로!’이다.
우린 지금 회복이 필요한 문제들 앞에 서 있다. 위기와 문제들로 가득 쌓여 있다. 이때 우리는 우리가 직면한 진짜 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한국은 몇 십 년 전만해도 상상도 못 할 일들이 지금 우리의 삶에 많은 기회들로 주어져 있다. 그 때만해도 나라의 정체성, 인권, 사회질서, 동성애 이런 것으로 도전을 받은 적이 없고, 별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전 세계적인 팬데믹에 처했다. 위기의 시대를 맞이하니까 수 많은 쓰레기 같은 실체가 드러났다. 이 때, 정말 우리가 직면해야 할 문제들 앞에 서지 않으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이 역사의 키를 가진 교회야말로 이 시대를 바르게 진단해서 우리가 어디서 건짐을 받고 어디로 회복해야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 영광을 회복하라!’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진정한 회복을 보여주시는 이야기가 있다. 야곱의 이야기이다. 야곱의 일생 가운데 얍복강에서 치뤘던 일이 있었다. 얍복강 사건은 야곱이 평생에 부딪히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문제였다. 야곱은 태중에서부터 쌍둥이 형제인 에서가 인생 숙제였다. 야곱은 어떻게 해서든 장자의 축복을 갖고 싶었는데 그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이삭을 속여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았고, 에서의 화를 피해 도망을 치게 되고 다시 귀향하는 이야기가 야곱의 이야기이다.
어떤 인생이든 눈에 보이는 상황을 해결한다고 해서 진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인생은 반드시 그 맞닥뜨려야 하는 문제 앞에 서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렇게 야곱도 에서와 만나야 하는 순간이 왔다. 에서가 사백 명을 데리고 야곱을 맞으러 왔다. 피할 수 없는 인생숙제 앞에 서게 됐다. 야곱은 너무나 두려웠다. 그러나 그 초라한 인생 야곱에게는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이 있었다. 야곱의 인생에서 정점 같은 순간이 바로 이 얍복강 사건이었다. 얍복강에 홀로 남았을 때 하나님이 씨름으로 걸어오신다. 날이 새도록 씨름을 하는데 야곱이 지지 않는다. 날이 세려니 하나님의 사람이 야곱의 고관절을 쳐버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야곱이 됐다.
이 때 이상한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된다. 야곱은 그가 문제로 여기는 에서를 해결해 주실 거라고 기대했는데 하나님은 야곱을 에서 앞에 세우지 않고 그 야곱과 친히 씨름하셨다. 하나님의 관점은 에서와 관계 회복이 아니라 야곱 그 자신의 문제였다. 야곱이 회복되어야 하는 존재임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면 아무 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도록 하신다. 그리고 이 때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바꾸신다. 야곱이 어떤 최선을 다해도 그는 그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아무리 쥐어짜도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가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신다.
회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뤄진다. 역사와 내 인생의 회복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비롯돼야 한다. 하나님의 회복이 임하지 않고는 우리에게 진정한 회복이란 없다. 우리는 복음을 만나지 않고 아무리 우리의 최선으로 애를 써도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가 없다. 내가 죽어야 하나님의 생명이 나에게 오는 것이고, 문제는 나의 심령에 있다. 각 영역의 모든 노력이 헛되지 않으려면 모든 문제의 핵심 가운데 교회된 우리의 심령을 회복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다시 복음 앞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위장되었던 거짓된 믿음, 내가 주인 된 이 자아가 꺾이지 않고는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아무것도 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무엇이 회복돼야 진정한 회복인지 말씀하신다.
호세아의 탄식과 에스라의 통곡을 구약성경에서 결론처럼 듣게 된다. 경제적 부흥을 경험했던 북이스라엘은 얼마나 타락했는지 모른다. 주변 나라들을 압도할만한 부국(富國)이 되었는데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다. 우상숭배가 만연하고 난잡한 음란한 문화를 가졌다. 이때에 주님께 돌아오라고 호세아를 통해 경책해도 회개하는 척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가 이 엄청난 복음을 받고도 이렇게 타락해버린 우리가 어떻게 낯이 뜨뜻하여 회복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 잃어버린 복음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에스라의 통곡이었다. 출애굽을 경험하고도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을 보며 이렇게 통곡하는 것이다.
사 61:1-3 말씀과 같이 꿈꿀 수 없이 다 망한 이스라엘. 그리고 아무런 소망이 없는 나를, 죄와 함께 하나님을 등지고 떠나 버렸고 나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죄의 포로 되고 종 된 나에게, 주님이 오셔서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희년을 선포하신다. 희년이 되면 노예로 팔려가고 빼앗겼던 모든 것을 회복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사야에게 이 약속을 주셨다. “이 예언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아무 희망 없는 죄인에게 하나님이 일방적 은혜의 복음을 주셨다. 죄인이었던 우리를 십자가의 죽음으로 초대하셔서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의 형상으로 살아가게 하신 복음을 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맞이한 이 위기를 통해 야곱이 마침내 축복을 받을 때까지 일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야곱을 이기시고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시는 기적을 우리와 이 땅의 교회 안에 일으키실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나기까지 주여, 나를 깨뜨리시옵소서. 내가 당신이 전부가 될 때까지 멈추지 마소서. 주여 일하시옵소서!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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