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다시복음앞에 대회가 어느덧 코앞으로 다가왔다. 2011년에 시작돼 2년마다 열린 다시복음앞에 대회는 올해로 3번째를 맞는다. 2015 다시복음앞에 대회의 의의와 지난 대회들을 돌아본다. <편집자주>
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인가?
백약(百藥)이 무효(無效). 백 가지 약이 있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타락한 세상, 죄악의 광포한 회리바람에 중심을 잃고 휘둘리는 이 세대를 진리 안에서 세우고자 하는 현대 교회의 고민을 이렇게 요약할 수도 있겠다. 옳은 것 하나 제대로 가르치기는 그리 어려워도 죄와 못된 행동은 한 시간 만에도 정확히 습득한다. 아니 되살아난다 함이 옳다.
10년 훈련을 받아도 세상으로 돌아서는 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거대한 골리앗처럼 버티고 서서 그 중심이 변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케케묵은 교인들. 하나님 경외함도, 거룩한 감격도 찾아 볼 수 없는 외식만 남아 인간냄새로 가득한 교회. 맥 빠지고 무기력한 이론뿐인 변질된 복음, 그리스도와 그의 진리를 대적하는 세속과 죄악의 세력들….
그 앞에서 초라한 내 모습, 교회의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만으로는 안된다, 현실은 어쩔 수 없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해.’ 목까지 차오는 탄식을 억누르기 어렵다. 현실에 지치고 겁에 질린 사람들은 세상눈치 보고, 두리번거리며 이론과 방법을 찾기에 급급하다.
그리고 이내 육적자아의 욕구를 자극하는 자아사랑, 자아만족의 달콤한 향기로 다듬고 꾸민 예수님의 행복 시리즈 상품을 선택한다. 결코 넘어서는 안 될 세상과 교회의 경계를 허무는 복음의 대용품들을 취한다.
거칠고 부담스런 십자가는 최책감을 덜어버리기 위한 쓰레기 하지장 정도로 취급하는가 하면 기초교리로 표시해서 잘 보이지 않는 한쪽 구석에 보관하고 찝찝할 때 한 번씩 찾아가 구원의 확신을 확인하는 종교제례용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취급한다.
바리새파, 실존적 무신론자와 사두개파, 교리적 무신론자
예수 그리스도! 빛이 임하면 어둠이 드러나듯 2000여 년 전 유대 땅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역사 속에 오신 예수님. 그가 자기백성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메시아로 나타나자 이스라엘에 큰 소동이 일어났다.
그들의 존재적 반응이 영적 실상을 드러냈다. 그들은 그럴듯한 여러 이유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영접하지 않았다.
근본주의적, 정통주의를 표방한 바리새파는 교리적으로는 보수주의였으나 실제로는 외식하는 실존적 무신론자들이다. 또 자유주의, 세속주의의 종교가들인 사두개파 사람들은 드러내놓은 교리적 무신론자들이었다. 그 당시 백성들은 목자 잃은 양처럼 갈 바를 모른 채 모양은 하나님의 백성이나 구원받지 못한 명목상의 교인들이었다.
성전은 강도의 굴혈로 변해갔고 하나님의 이름은, 성경을 끼고 성전의 의식에만 집착하여 주여! 주여! 하는 유대인들에 의해 세상에서 모독과 경멸을 당하였다. 그들의 배후에서 역사하던 종교적 망령은 어느 시대에나 진정한 복음을 떠난 교회들에게서 여지없이 발견되곤 하였다.
교회는 오직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로만 생명을 얻고 순결하게 그분을 따라야 한다.
2000년 전 교회의 고민
그럴싸한 이유로 메시아 외면
온갖 무신론으로 도배된 신학
강도의 굴혈로 변한 교회
현재 교회들의 고민
세상 친화적인 교인
무기력하고 변질된 복음
복음 대용품에 만족하는 교인
오직 예수 그리스도
중세의 타락한 교회에 횃불
영원하고 참된 하나의 복음
예수생명으로 그분 따라야
개혁의 횃불은오직 예수 그리스도
특히 중세의 카톨릭으로 대표되는 교회의 타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을 벗어난 변질된 복음의 결국이 어떤지를 보여준 역사적 실증이다. 그 암흑의 시대에 개혁의 횃불을 들고 외친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오직 믿음이었다.
새로운 무엇이 아닌 영원하고 참된, 오직 하나의 복음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다. 2015 다시복음앞에는 그 복음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의미를 가슴에 새기는 시간이 될 것이다. [GN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