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14] 삶의 현장에서 말씀을 듣고 순종하라

re_lss_p2015 다시복음앞에 집회를 통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집회 기간중 참여한 강사님들의 강의를 요약해서 소개합니다. <편집자>

부흥의 감격  행 2:43~47

임석순 목사(한국중앙교회)

본문은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살아내야 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골동품이 아니다. 이 시대에도 이렇게 살아가는 분들이 계신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엡 2:4) 이 말씀은 내 수준에서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나? 이 큰 사랑이 무엇을 주셨나?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엡 2:5)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나니”(요 1:11~12) 우리는 원래 눈이 감겨진 존재였다. 그런데 어떻게 영접하게 되었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내 눈을 열어 주셨다.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놓으셨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다(요 1:13).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6) 예수와 연합하면 이 연합을 누구도 끊을 수 없다. 흙의 형상을 가진 자가 있고, 하늘에 속한 형상을 가진 자가 있다. 영은 우리 주님과 떼어 놓을 수 없다. 우리는 하늘에서 와서 이 땅에서 살다가 거기로 다시 돌아간다. 골 1:13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빌 3:20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미국시민권을 받으려면 미국에서 받아야 한다. 대사관이라 할지라도. 그 나라에 가야하기 때문에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에서 받는 것이다.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히 11:13) 그래서 소통이 잘 안 된다.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히 11:14) 앞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본향인가? 아니면 거기서부터 왔기 때문에 본향인가?

우리는 하늘에서 와서 이 땅에서 살다가 거기로 다시 돌아간다. 바울은 한 순간도 이 사실을 잊은 적이 없다. 행 2:43~47은 물질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서 돈을 사랑하게 만든다. 세상의 모든 것은 속성과 용도가 있는데, 돈의 속성은 떠나고 배신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내가 먼저 떠나보내야 한다. 돈을 필요한 곳에 흘려보내야 한다. 돈을 감정대로 쓰면 낭비가 된다. 개념 없이 돈을 쓰면 허비하게 된다.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님만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만이 우리 사랑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왜 돈이 필요한가? 사랑의 대상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쓸 수 있도록 돈을 주셨다. 내가 돈을 사랑하는지 안하는지, 무엇으로 어떻게 알 수 있나? 십일조와 봉헌물이다. 십일조의 개념이 무엇인가? 십분의 일은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이다(창 14:20). 그런데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에 손이 떨리면 돈을 사랑하는 것이다. 말라기 3장은 말씀하고 있다. “내게로 돌아오라” “어떻게 돌아갑니까?” “이 도둑놈들아!” 행 2:43로 돌아갈 수 없으면 우리는 끝없이 회개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십일조와 봉헌물을 철저하게 드렸다. 그런데 왜 도둑질한다고 하셨는가? 찬양으로 드리지 않고 거래로 드렸기 때문이다. 말 3:9~10은 말씀한다. “온전하게 드려보라 그리하면 창고가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겠다.” 온전한 십일조란? 찬송으로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면 지금 창고가 차고 넘친다. 우리 사랑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은 하나님 사랑을 것을 위해 써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 2:7) 6절에서는 하늘에 있었던 우리가 7절에서는 땅에서 존재한다. 목적은 한 가지다. 지극히 풍성한 은혜를 여러 세대 가운데 나타내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요 2:4) 마리아가 이것을 깨달았다. “내 때”가 언제인가? 십자가의 때요, 영광을 돌일 때이다(요 16:32,12:23,8:20,…).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요 2:5) 십자가는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정결법은 상식이다. 그래서 물을 채우라는 첫 번째 명령에 순종하는 데는 거리낌이 없다(요 2:6~7). 그러나 두 번째 말씀에 대한 순종은 어떨까? “손발 씻는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갖다 주는 하인이 무슨 생각을 할까? 틀림없이 “이제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인은 십자가를 지고 연회장에게 갖다 준 것이었다. 그런데 갖다 주었는데 안 죽었다. 십자가는 하인이 졌고, 포도주는 연회장이 맛보았다. 연회장과 하인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인은 순종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었다.

우리는 하늘에서 온 자다. 우리의 방향은 행 2:43이하의 말씀이다. 하지만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이 말씀을 골동품으로 두면 안 된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의 현장 속에서 말씀하실 때 듣고 순종하라!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될 것이고, 그 분만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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