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로 돌이켜 주시도록 은혜를 구하자
김용의 선교사(순회선교단)
우리 생애에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일깨워 십자가의 완전한 사랑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주님이 찾아오셨다는 것, 그 이상의 기적은 없다. 주님은 우리를 하늘에 속한, 하나님 수준의 삶으로 부르셨다.
주님을 따르면서 온갖 기적은 다 보았고, 죽는 데까지 따라 가고 싶었지만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 비참하게 무너져 버린 그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물으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자기 최선으로는 도저히 주님을 따를 수 없었다는 것이 너무도 분명했던 베드로에게 또 한 가지 더 분명했던 것은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무익한 종, 주님이 영광 받으셔야…
유병국 선교사(WEC국제선교회)
요나가 니느웨 성읍에서 하룻길만 다니며 회개하라고 외쳤지만 왕으로부터 짐승까지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 모슬렘 하이스쿨에서 역사와 영어를 가르치는 마호메드 다페가 논쟁을 통해 나를 굴복시키기 위해 찾아왔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가 회심하고 감비아와 이웃 나라에 교회를 세웠다, 호주인 미스터 게노는 소망이 없는 그 때, 동료 군인으로부터 복음을 듣고 자신을 용서해 주신 은혜가 너무 고마워 매일 10명에게 복음을 증거 하기로 하나님께 약속한 후 40년 동안 그 약속을 지키며 살아왔고 그를 통해 많은 사람이 복음을 알고 회심했다.
위의 모든 사례가 그들이 잘 나서 대단해서 일어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모두 주님이 하신 것이다. 우리가 비록 나무를 심고 열매는 다른 사람이 먹을지라도 우리는 ‘무익한 종’일 뿐이다.
십자가 복음으로 땅 끝까지
권영조 목사(사이판 복음교회)
모든 인생들은 십자가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을 산다. 십자가 이전의 바울은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 하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는 존재적으로 완전히 변화되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는 십자가와 완전한 복음을 ‘예지, 예정, 소명, 칭의, 영화’라는 5가지 골드 체인(gold chain)을 통해 선포하고 완전한 십자가의 복음을 경험한 바울은 환호성을 지른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고발하리요? 누가 정죄하리요? 누가 끊으리요?” 바울의 이 외침을 우리도 동일하게 외쳐야 한다. 예수님이면 충분하고, 말씀이 생명이고, 기도가 능력이라면 말씀과 기도 이외의 모든 것은 중단해야 한다. 말씀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다.
그렇게 복음이 실제가 되면 땅 끝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가 된다. 비록 죄인의 신분으로 쇠사슬에 매여 있지만, 바울의 시선은 땅 끝을 향하고 있었다. 어떤 복음을 받았는데 편하게 살 수 있는가? 부르신 그곳을 향해 나아가자!
의의 병기로 주께 드리라!
유영기 교수(복음기도신학연구소 소장)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죽음을 통과한 자들이다. 쓰나미에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나 허망하게 사는 그들에게…, 자기를 대신해 군대를 갔다가 죽음을 당한 친구의 무덤 앞에서 자기 자신의 무덤이라며 무작정 그 앞에만 머물고 있는 그에게, 범죄한 동생을 대신해서 동생의 옷을 입고 죽은 형, 형은 동생에게 “사랑하는 동생아, 나는 너의 옷을 입고 너 대신 죽는다. 너는 나의 옷을 입고 나처럼 살아다오”라고 부탁의 글을 남겼다. 그러나 다시 찾아와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그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받은 생명이고 어떻게 알게 된 복음인데,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내가 주와 함께 죽었음을 여기고, 의의 병기로 자신의 삶을 드리고, 계속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총체적 복음이 실제가 되는 삶을 살기 원하는가? 자신을 의의 병기로 드리라.
복음은 살아내는 것이다!
박보영 목사(인천방주교회)
심장병으로 인해 늘 죽음의 문턱을 오가며 죽을 것 같을 때는 기도원으로 달려가면서도 끝끝내 하나님 믿기를 거부하던 자를 주님이 알지도 못하는 자매를 통해 살아나게 하시고 은혜로 당신의 종을 삼아주신 주님, 이후 신대원에 들어가면서 가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기 시작했다.
주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때문에 주님께 죄스런 마음이었으나 오히려 주님은 연약한 자들을 위해 나를 내어 드리는 것을 기뻐하셨다. 그때 복음은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는 것임을 알았다. 주님 나라를 위해서라면 다 버리고 십자가의 길을 걸을 것이다.
또 다시 초보의 자리가 아닌, 완전한 데로 나아가자!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여전히 나는 ‘안죽었나보다’ 하고 있지는 않은가? 복음의 기초는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나 ‘다시복음앞에’라는 제목은 다시 복음의 기초가 아닌, 이제는 복음의 완전한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아는 것도 많고 기도도 많이 하는데 왜 살아지지 않는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매순간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4:19)
바울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이미 알고 있는 복음이 그들의 삶의 실제가 되기 위해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했다.
그렇다면 복음의 실제는 무엇인가? 바로 내 안에 주님이 사시는 것, 그것을 실제로 믿으며 누리는 삶이다. 내 안에 주님 사시는 것이 두려운가? 불편한가?
기억하자! 주님은 우리와 내주하신다. 나는 주로 더불어 먹고 주님은 나도 더불어 먹는 완전한 연합! 그래서 매순간 주님이 내 안에서 왕 노릇 하시도록 항상 주님을 의식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