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처음과 끝은 주님께서 동일한 내용을 말씀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요한복음 1장 43절에서 “나를 따르라” 그리고 요한복음 21장 19절에서 “나를 따르라” 22절에서 “너는 나를 따르라” 물론 이 두 번째 나를 따르라는 것은 강조하시는 것을 뜻한다. ‘넌 나만 따르라’ 한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이러한 표현을 수미쌍방구조라고 한다. 이것은 처음과 끝을 동일하게 함으로서 메시지의 뜻을 확대시키는 기법이다. 현재 몸담고 있는 문화행동 아트리에서는 연극 공연을 만들 때 이러한 수미쌍방구조 기법을 사용한다.
그러면 인상적으로 메시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방식이다.
요한복음 중에서 나를 따르라, 나만 따르라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과연 누구시길래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을까?
역사상 자기만 따르라 했던 사람이 또 한 명이 떠오른다. 바로 독일의 히틀러이다. 그도 나만 따르라고 했던 사람이었다. 나만 따르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둘 중에 하나이다.
미치광이거나 하나님이거나. 예수님은 무턱대고 나를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왜 따라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누구이신지 요한복음을 통해 밝혀 놓으셨다.
온 우주 만물 가운데 “아이 앰(I am)” 즉 “나다” 라고 독립적인 소개가 가능한 존재가 있을까? 없다. 우리는 나 스스로를 독립적으로 소개할 수 없다. 반드시 ‘어디에서’ 즉 출처가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는 누구다” 라는 독립적 소개가 가능하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 유대인들에게 “나는 나다”라고 소개하시면 어떻게 됐을까?
그랬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실 수 없었다. 유대인들의 손에 현장에서 돌에 맞아 죽으셔야 했을 것이다.
에고 에이미, ‘나는 나다.’
‘에고 에이미’(Ego Ami) 즉 ‘나는 나다.’ 요한복음 중간중간 마다 예수님은 이러한 ‘에고 에이미’ 표현을 7번 반복해서 사용하셨다. 요한복음 6장 25, 48, 51절에서 자기 자신을 가리켜 ‘나는 생명의 떡’ 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8장 12절, 9장 5절에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 10장 9-10절에서는 ‘나는 양의 문이다’ 곧이어 10장 11-14절에서는 ‘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하셨다. 11장 25절에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14장 6절에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셨고, 마지막으로 15장 1절에서는 ‘나는 참 포도나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표현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이 7가지 표현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드러내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드러내시기 위해 뮤지컬 ‘가스펠’에서는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우리가 예수를 따르면 뭐 먹고 살아요?” “나는 생명의 떡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려면 어느 문으로 들어가요?” “나는 양의 문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울이 바로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되어지고 주님은 이 질문에 요한복음으로 답하시는 형태로 이어진다. 사울의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인 것이다.
이번 집회는 오직 십자가이다.
이러한 동일한 의도가 이번 ‘다시복음앞에’ 집회 모든 순서마다 녹아져있다. 이번 3박 4일 집회가 끝나고 나면 오직 예수님만 남게 될 것이다. 그 분의 십자가 복음만 영화롭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을 통하여 ‘나는 생명이다’ ‘나는 생명을 주러왔노라’ 라고 외치시는 주님을 통하여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 드러난다. “너의 생명이 아니라 그의 이름으로 얻는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자아 생명과 이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얻게 될 예수 생명은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결론은 조화를 이룰 수 없다. 나의 죄 된 자아 생명과 예수 생명은 하나 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죄 된 자아생명의 죽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위로부터 즉 십자가로부터 예수 생명을 얻는 것이 거듭나는 비밀이다.
7가지의 예수님의 자기 소개가 하나로 연합되어 하나님이심을 완전하게 드러나는 그 자리가 바로 십자가의 자리이다. 그래서 이번 집회는 오직 십자가이다.
요한복음 상에서 감히 예수님 외에 “나는 나다”라고 말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인생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드러내시는 무대가 될 것이며 새 창조의 역사가 될 것이다.
그는 바로 실로암에서 눈을 씻어 빛을 보게 되는, 그리고 다시 세상에게 버림받는 인물. 그는 바로 요한복음 9장에 주님께서 등장시켜 주신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이다. 평생 눈멀고 구걸하던 그가 바로 나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에고 에이미’라고 말했다. ‘나다.’ 부모도,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도 그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예수 그리스도 예수 이름이면 충분한 존재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부인 사람. 예수 그리스도면 충분한 자.
예수 그리스도 이름이면 충분한 존재
지금 이 시대에 없는 능력까지 있는 것처럼 꾸며 이력서를 써야하는 때에 “정말 예수면 다야?” “정말 예수면 다인 사람 있느냐”고 묻는 세상 앞에서 “나다! 내가 바로 그 십자가 복음의 증인이다!” 라고 외칠 수 있는 존재로 나와 당신을 변화시켜 주셨다.
이번 집회를 통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실 것을 기대한다. 죄 덩어리인 우리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우리에게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연합되어 오직 복음이 영화로워지길 기도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모든 권리를 포기하기로 결정한다. 이번 3박 4일 집회에 주님만 드러나시기를. 오직 주님만이 유일하며 영원한 복음임을 밝히 드러내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