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부잣집에서 2남 5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내가 3살 때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 살림이 기울어 어머니는 온갖 궂은일을 하셔야 했다. 언니, 오빠도 동생들 학비와 생활비를 대주는 상황에 공부도 잘 못했다. 그런 와중에 잘하는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 나라는 존재는 가족들에게 그저 민폐라는 생각을 했다. 죽고 싶었고 자살할 방법들을 생각했다. 하나님이 있는지 몰랐으나 가끔 날 왜 만드셨냐고 따졌다. 엄마한테도 날 왜 낳았느냐고 패악질을 하곤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느 집사님의 인도를 받아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고 하루도 거르는 일이 없이 새벽기도를 하셨다. 사춘기를 고약하게 치르는 막내딸을 위해 어느 집사님의 교회에 잘 다니는 딸을 친구로 붙여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를 따라다니던 교회에서 친구가 기도를 하고 있어 나도 멀찍이 앉아 눈을 감았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안다.”는 음성이 마음 안에서 들려왔다.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고 두어 시간 통곡을 하며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을 했다. 내가 왜 그렇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마음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나님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가장 비참한 순간, 가장 어둡던 순간에 나를 만나주셨고 그 어두운 마음에 환한 빛을 비추셨다. 상황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는데, 나는 여전히 잘하는 것 하나 없는데, 날도 저물어 어둑어둑한데 갑자기 세상이 환하게 보이는 듯 했다. 그 기쁨과 평안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때부터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간호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간호사로 강남세브란스에서 20년을 근무했다. 첫 출근을 하기 전, 목사님이 갑자기 나를 선교사로 파송한다며 안수기도를 해주셨다. 근무 기간 내내 파송된 선교사라는 마음이 있었다. 힘든 환자들을 보면 기도하곤 했는데 그 당시 한 환자가 마음에 쓰여 기도하고 있었다. 그 환자는 난치성 질환으로 10년 동안 심한 고통으로 수 없이 입원하고 10차례 정도의 수술을 받았다. 내가 출근한 그 날도 수술 후 5일이 지났지만 통증이 심하여 매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환자가 진통제를 달라고 하여 마약성 진통제를 주사기에 재어갔다. 환자가 너무 불쌍해 보였고 무슨 용기가 났는지 불쑥 “제가 예수 믿는 사람인데 기도를 하고 주사를 놓아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환자의 동의를 얻고 6인실 병실에서 환자를 붙들고 기도했다. “하나님 죽을 것 같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울면서 기도를 마치고 주사를 놓아주고 병실을 나왔다.
환자는 그날 밤 수술 후 처음으로 조금 잤다고 새벽에 진통제를 맞으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비번이라 3일 쉬고 출근했을 때 환자가 너무 좋아진 상태였다. 환자는 자기가 기도실에서 기도를 했다며, 예수 믿고 싶다고 성경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할렐루야!
우리 집에 성경 많으니 한 권 가져다 드리겠다고 하고 남편에게 퇴근길에 성경 한권을 사다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분을 우리교회에 연결해 주었고 환자는 점점 회복되어 무사히 퇴원하게 됐다.
여전히 나는 모자라고 실수투성이다. 잘 하는 것이 뭘까? 앞으로 잘 할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이 자꾸 생긴다. 그런데 가만히 뒤를 돌아보니 나의 삶의 모든 순간에 능력도 지혜도 없고 부족한 나를 살아오게 하셨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동료와도 불편한 상황이어서 못된 생각을 하다가 기도의 자리로 가면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에 하나님의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이 되고 힘들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나를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오늘도 부끄럽지만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
안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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