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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칼럼] 대체신학 이슈와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 연구 (5)

사진: pixabay

목 차
I. 들어가는 말
II. 사울/바울과 예루살렘 교회
III. 사울/바울과 다메섹 교회
IV. 사울/바울과 아라비아 교회

  1. 아라비아를 택하여 간 이유
  2. 아라비아 그 이후 10년
  3. 아라비아에서 선포한 메시지
    1) 아라비아와 디아스포라 유대인
    2) 아브라함 언약
    3) 하갈과 사라
    V. 하나님의 이스라엘
    VI. 나가는 말

3) 하갈과 사라(갈 4:21-31)

바울은 갈라디아서 3:6부터 시작된 종말론적인 아브라함의 대가족 개념, 즉 누가 아브라함의 진정한 자녀인가에 관한 논증을 “하갈과 사라”(4:21~41) 대조를 통해 마무리한다. 이 논증은 세 단계로 진행된다. 첫째는 하갈과 사라의 역사이고(4:22~23), 둘째는 하갈과 사라의 비유이고(4:24~27), 셋째는 하갈과 사라의 적용이다(4:28~31).[1]

   (1) 하갈과 사라의 역사

바울은 하갈과 사라를 대조하기 직전에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갈 4:21)라고 질문한다. 바울은 이 질문을 통해 그들에게 “들으라(쉐마, 히브리어), 이스라엘”로 시작되는 신명기 6:4을 떠올리게 한다.[2] ‘율법’은 히브리어 ‘토라’의 번역인데, 기본적으로 모세 오경을 가리키는 토라에는 지켜야 할 법령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듣고 깨달아야 할 여러 말씀이 있다.

아브람과 사래가 가나안 땅에 이주한 지 십 년이 지나자 그들의 나이가 팔십육 세와 칠십육 세가 되었다. 사라는 그때까지 임신이 되지 않자 아브람에게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 이스마엘을 얻도록 하였다(창 16:1~16). 그 후 13년이 지나 그들의 나이가 구십구 세와 팔십구 세가 되었다. 그때 여호와께서 그들의 이름을 여러 민족의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뜻의 아브라함과 사라가 되게 하신 가운데 그 부부가 아들 이삭을 잉태하여 출산할 것이라 말씀하셨다(창 17:5~6, 15~16, 18:9~15). 당시 아브라함과 사라는 각각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져 자연적인 출산 원리로는 더 이상 자녀를 잉태할 수가 없게 되었다(창 18:11). 하지만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들 이삭을 잉태하여 출산하였다(창 21:1~7).

이삭이 자라나 젖을 떼던 날에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 그때 사라가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고 있음을 보고 아브라함에게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라고 하였다(창 21:10). 이에 아브라함이 근심을 하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라.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 21:12~13).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쫒았다(창 21:14a). 세월이 흘러 사라가 127세에 죽었다. 아브라함은 후처 그두라를 통해 시므란을 비롯하여 여섯 명의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그는 175세가 되어 죽었다. 그때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다(창 25:7~9). 이스마엘은 열두 아들을 낳았다. 그들의 이름은 장자 느바욧을 비롯하여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아 하닷과 데마와 여둘과 나비스와 게므마이다. 이들은 그 족속대로 열두 지도자들이 되었다. 그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 편에 거주하였다(창 25:12~18).

창세기에 따르면 아브라함에게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고 하였는가?(갈 4:22) 아브라함이 그두라를 통해 얻게 된 여섯 명은 이스마엘처럼 육체를 따라 난 자들로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혜택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스마엘은 이삭을 제외한 다른 여섯 형제를 대표한다.

  (2) 하갈과 사라의 비유

“이것은 비유(‘알레고리’)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갈 4:24). ‘알레고리’는 비유 또는 풍유로서 본문에 나타난 표면적 의미 뒤에 또 다른 (영적, 도덕적) 의미가 숨어 있는 종류의 글이다. 바울은 두 여자(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첩 하갈)와 두 아들(이삭과 이스마엘) 이야기의 역사적 사실 배후에 또 다른 영적 의미가 숨어 있다고 설명한다.[3] 바울은 두 가지 의미를 제시하며 영적 의미를 설명한다. 첫째, 어머니로서 두 여자는 두 언약을 각각 상징한다(갈 4:24). 하갈은 옛 언약이고 사라는 새 언약이다. 둘째, 하갈은 시내 산과 율법 그리고 예루살렘과 그곳이 처해 있는 노예 상태를 상징한다(갈 4:25). 그리고 사라는 드러나기를 고대하는 천국을 대표하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상징한다.[4]

먼저 언약에 대해 논의하자. 언약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맺는 엄숙한 협정으로서 그로 인해 하나님은 그들을 자기의 자녀들 또는 백성들로 삼으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옛 언약을 확립하셨고, 그리스도를 통해 새 언약을 확립하셨으며, 그리스도의 피가 그것을 비준했다. 옛(모세의) 언약은 율법에 근거했다. 하지만 새(그리스도의) 언약은 아브라함을 통해 예시되고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된 것으로 약속들에 근거한다.[5] 존 스토트(John Stott)는 율법으로 특징되는 옛 언약과 약속으로 특징되는 새 언약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대조한다.

율법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우고 ‘너는… 할지니라… 너는 …하지 말고’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약속에서 하나님은 그 책임을 자신이 지시며 ‘내가 …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6]

이제 갈라디아서 4:25~26(“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에 대해 논의하자. 여기서 두 여인은 두 지역을 상징한다. 하갈은 시내 산과 율법, 그리고 예루살렘과 그곳이 처해 있는 노예 상태를 상징한다(갈 4:25). 그리고 사라는 드러나기를 고대하는 천국을 대표하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상징한다.[7]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았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긴 자들이다. 시내 산과 예루살렘 모두 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곳이다. 그런데, 바울은 “하갈이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노릇 하고”(갈 4:25) 있다고 선언한다. 또한, 바울은 율법을 부여받았던 시내 산과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일치시킨다. 그리고 바울은 시내 산과 예루살렘의 주인공을 사라의 후손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라 시내 산 주변에 사는 하갈의 자손들인 아라비아인들이라고 충격적인 선언을 한다. 전통적으로 예루살렘은 하갈의 자손들이 아니라 사라의 자손들에 속하였다. 그런데, 왜 사도 바울은 하갈의 후손들이 사는 아라비아의 시내 산만이 아니라 그들과 전혀 상관이 없는 예루살렘도 하갈의 자손들에게 결부시켰는가? 아라비아의 시내 산은 율법을 상징하고 그가 선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적하는 유대주의자들이 바로 예루살렘의 성전 중심적이며 율법주의자들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사라가 드러나기를 고대하는 천국을 대표하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상징한다는 점에 대해 논의하여 보자. ‘모스크바’라는 말이 러시아 국민을, ‘워싱톤’이 미국인을, ‘런던’이 영국인을 각각 나타내는 것처럼 ‘예루살렘’이라는 말이 이스라엘인들을 나타낸다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그 ‘예루살렘’은 지상에 있는 도시로서 옛 언약 아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유대인을 대표하며 상징하였다. 하지만 새 언약 아래서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을 대표하는 도성은 곧 ‘예루살렘’이 아니라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다(갈 4:26).[8] “위에 있는 예루살렘”에 속한 자들은 곧 자유자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상속받게 된다. 히브리서에 따르면,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다(히 11:16; 12:22). 사도 요한에 따르면,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곧 “새 예루살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이다(계 21:2, 9~10).

바울은 “땅 위의 예루살렘”과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대조하는 가운데, 특별히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우리 어머니”라고 일컫는다(갈 4:26). 시편 87편은 예루살렘(시온)을 하나님의 백성의 어머니로 찬미하는 노래이다. 이사야 66:7-11에서는 예루살렘(시온)이 아들을 낳은 산고 가운데 있는 어머니로 묘사된다(참조. 또한 사 50:1).[9] 바울은 갈 4:19에서 자신이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가운데, 여성명사를 그 주어로 요구하는 “해산하다”라는 동사를 사용하였다.[10] 또한, 고린도전서 3:2에서 바울은 자신이 성도들을 “젖으로 먹이는” 젖먹이 엄마라고 일컫고, 데살로니가전서 2:7에서는 바울은 자신을 “유순한 자”라면서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성도들을 돌보았다. 바울의 이러한 자기 이해, 즉 하나님의 백성들을 낳는 산모요, 그들을 양육하는 유모라는 이해의 기원은 이사야 66:7~13이다.[11]

이사야 66:7~13은 종말의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이 이 땅에 태어날 것을 예언하는 말씀이다. 이사야 66:7의 “시온은 ‘진통’을 하기 전에 해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아를 낳았으니”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진통’은 갈라디아서 4:19의 동사 “해산하다”의 명사형이다.[12] 이사야 66:8에 따르면, 종말에 하나님은 매우 기적적인 방식으로 매우 짧은 기간에 그의 백성을 창조하신다. 이사야 66:11~13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창조하신 자기 백성을 친히 양육하신다. 바울은 이사야서의 예언에 따라 자신의 소명을 “아기를 낳고” “기름”으로 즉, 개종(cf. 고전 9:20-22)과 양육(cf. 롬 12:2; 고전 2:6; 14:20: 빌 3:15; 골 1:28; 4:12; 엡 4:13)으로 이해했다.[13]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곧 종말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출산하고 양육하는 “시온”(사 66:7~11)이라고 밝히며, 더 나아가서 그 자신을 “시온”과 일치시키고 있다.

갈라디아서 4:27(“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른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은 바울이 자신의 해석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한 이사야 54:1이다. 이 말씀은 이사야 54:5(“이는 너를 지으신이가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으로 이어진다. 이사야 이야기와 사라 이야기에 공통된 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이다. 아이를 낳지 못하였고 또 낳을 수 없게 된 사라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간섭을 통해 더 많은 자녀를 얻게 되었는데,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생명의 성령을 통해 새로이 자기 백성을 모으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연결된다.[14]

  (3) 하갈과 사라의 적용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서 태어난 이삭만이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사라만이 자유 있는 자이며 약속이 있는 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누가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들로서 아브라함의 진정한 후손들인가? 사도 바울은 훗날에 기록한 로마서에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삭 잉태와 탄생 사건에 대하여 해석하며 그 답을 제시한다. 그 해석과 답을 각각 들어보자.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17~22).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은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3~35). 

아브라함 내외가 신체적으로 볼 때 출산하는 면에서는 죽은 자들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살리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하시고 아들 이삭을 잉태하도록 하셨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들이 믿음으로 이삭을 잉태한 사건을 “그러므로 그것이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4)라는 의미로, 즉 이른바 이신칭의 사건으로 해석한다. 이 시대에 아브라함의 진정한 후손은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들”(롬 4:24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이삭으로 대표된 자들로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혜택을 받게 된다. 히브리서 기자도 아브라함과 사라가 아들 이삭을 잉태하는 과정에서 입증한 믿음과 그와 같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세워졌다는 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히 11:11~12).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이 비록 이방인들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고 교회 공동체에 속하게 되어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이며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로서 성령을 따라 난 자들이 되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혜택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유업을 받게 된다고 논증한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 공동체에 침투하여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행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유대주의자들은 육체를 따라 난 자들로서 여종 하갈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 유업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후자가 전자를 핍박하는데, 전자는 후자를 내쫓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바울의 하갈과 사라 비유는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갈 4:28)로 시작되어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갈 4:31)로 끝난다. 여기에서 ‘너희’와 ‘우리’에 주목하여 보자. ‘너희’는 곧 갈라디아서의 수신자인 “갈라디아 여러 교회”(갈 4:2)이고 ‘우리’는 이삭의 아들이며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의 열둘째 아들인 베냐민의 후손인 바울이 그들 속에 포함된다. 한편, 갈라디아 교회 공동체에 침투하여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행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유대주의자들은 그 ‘우리’에서 제외된다. 이는 곧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히 있었”(갈 1:13~14)던 시절의 바울 자신도 ‘우리’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다메섹 도상의)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다메섹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갈 1:15~17a)라고 고백한 자신이 그 ‘우리’ 속에는 포함된다. 또한 아라비아인들 가운데 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어 아라비아 교회 공동체에 속하게 된 자들이 바로 그 ‘우리’ 속에 포함된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최초로 찾아갔던 아라비아는 바로 페트라가 수도였던 나바티안 왕국이며 그 왕국의 왕 아레다와 왕국의 백성들은 이스마엘의 장자 느바욧의 후예들로 구성된 아라비아인들이다. 그런데, 바울은 바로 그들 가운데 그를 통해서 소개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자들에게 “형제들아, 너희는 혈통적으로는 이스마엘의 후손들이지만 이제 영적으로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들이 되었다”라고 선포하였을 것이다. 그들의 혈통적인 조상 이스마엘은 이삭을 박해하여 여종 하갈의 아들로서 아브라함과 사라에 의해 하갈과 함께 내쫓김을 당했다. 그리하여, 이스마엘은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 이삭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아라비아인들이 바울을 통하여 선포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유업을 이삭과 함께 이어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바로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게 된 바울이 사도직 수행을 최초로 수행하여 세워진 아라비아 교회 공동체에 속한 자들이다.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들이 아닌 대한민국의 국민이라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에 속하면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여호와 하나님의 유업을 약속 있는 아들 이삭과 같이 이어받는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1] John Stott, 『갈라디아서 강해』, 정옥배 역, (서울: IVP, 2007), 152.

[2] Richard B. Hays, “Galatians” in New Interpreter’s Bible, (Nashville: Abingdon, 2000), 300.

[3] 권연경, 『갈라디아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2013), 190.

[4] Gary Burge, 『예수와 땅의 신학』, 174.

[5] John Stott, 『갈라디아서 강해』, 155

[6] John Stott, 『갈라디아서 강해』, 155.

[7] Gary Burge, 『예수와 땅의 신학』, 174.

[8] John Stott, 『갈라디아서 강해』, 156.

[9] Richard N. Longenecker, 『WBC 성경주석 갈라디아서』, 이덕신 역, (서울: 솔로몬, 2003). 506.

[10] 김철홍, “바울이 아라비아로 간 까닭은?” 4.

[11] 김철홍, “바울이 아라비아로 간 까닭은?”, 5.

[12] 이한수, 갈라디아서, (서울: 선교횃불, 2003), 593.

[13] 김철홍. “바울이 아라비아로 간 까닭은?”, 6.

[14] 권연경. 『갈라디아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192-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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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 아신대학교(ACTS) 선교대학원 교수 및 GMS 아랍권 선교사(천안장로교회 파송. since 1989). 그의 책으로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CLC, 2009)과 아랍권 및 이슬람권 선교와 관련된 여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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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정형남 칼럼] 대체신학 이슈와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 연구 (1)
[정형남 칼럼] 대체신학 이슈와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 연구 (2)
[정형남 칼럼] 대체신학 이슈와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 연구 (3)
[정형남 칼럼] 대체신학 이슈와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 연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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