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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칼럼] 대체신학 이슈와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 연구 (3)

요르단에 있는 고대 도시 페트라. 사진: Emile Guillemont on splash.

– 차례 –

I. 들어가는 말
II. 사울/바울과 예루살렘 교회
III. 사울/바울과 다메섹 교회
IV. 사울/바울과 아라비아 교회
  1. 아라비아를 택하여 간 이유
  2. 아라비아 그 이후 10년
3. 아라비아에서 선포한 메시지
V.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과 확장 신학
VI. 나가는 말

IV. 사울/바울과 아라비아 교회

아라비아는 사울/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이방인의 사도로 받은 소명에 응답하여 그의 사도직을 수행한 첫 번째 선교지이다. 그는 왜 아라비아를 첫 선교지로 택하였는가? 아라비아 그 이후 약 10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그는 아라비아인들 또는 아라비아 교회의 교우들에게 어떤 말씀을 묵상하고 탐구하며 선포하였겠는가?[1]

  1. 아라비아를 택하여 간 이유

사울/바울이 다메섹에서 아라비아를 택하여 갔던 주된 이유가 소명으로 받은 사도직을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명을 확인하거나 사도직 수행을 준비하기 위함이라 주장하는 학자들이 아주 많다.[2] 따라서 그들에게는 바울의 첫 선교지로서 아라비아나 그 결과로서의 아라비아 교회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 그들은 아라비아 사막의 위치가 일찍이 모세와 엘리야가 하나님과 친교를 나누었던 ‘하나님의 산 호렙’ 근처였던 점만을 주목한다(참조, 출 3:1; 왕상 19:8 참조). 톰 라이트는 바울이 ‘아라비아’라는 단어로써 시내산을 뜻했다고 추정하면서, 이 여행에 대해 이렇게 제시한다.

사울이 그가 받은 새로운 충격적인 계시가 모세 언약의 성취라는 것을 그 언약이 비준을 받은 그곳에서 확인받기 위해 시내산에 간 것이며, 그는 엘리야가 그랬듯이(왕상 19장) 새로운 왕이신 예수 메시아를 선포하는 임무를 가지고 다메섹으로 돌아왔다.[3]

김세윤은 이와 같은 라이트의 주장에 대해 “라이트는 갈라디아서 1:13~17에 ‘엘리야 이야기의 반향들이 적다’라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그 반향들이 ‘아주 밀접하고’ 의미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하면서[4] 다음과 같이 비평한다.

시내산으로 순례? 그러나 열왕기상 19장에는 엘리야가 ‘아라비아’로 갔다는 언급이 없다; 그는 그저 ‘광야’로 갔다(왕상 19:4), 그리고 나중에 ‘호렙산’에 갔다(왕상 19:8)고만 되어 있다. 다른 한편, 바울은 자신이 ‘시내산’이나 ‘호렙산’으로 갔다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아라비아’로 갔다고 말한다. 바울이 동일한 편지에서 시내산을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은 하갈이며 현재의 예루살렘에 해당한다”(갈 4:24~15)라고 부정적인 의미로 언급할 것이면서 갈라디아서 1:17에서 ‘아라비아’라는 말로서 시내산을 의미하려고 하였을까? 모세와 엘리야에게 ‘시내산’이나 ‘호렙산’은 하나님의 계시라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바울에게는 이 단어들은 정반대의 의미였다…[5]

물론 바울은 아라비아에서 소명 사건과 관련된 구약의 여러 말씀을 가장 기본적인 묵상 내용으로 활용하여 기도하며 하나님과 긴밀한 시간을 갖는 가운데 신학적 사색과 탐구의 과정을 가졌을 것이다.[6] 사실 우리는 앞 장에서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던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며 그의 얼굴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하는 빛 자체라고 이해하였을 것이라고 그의 서신 연구를 통하여 정리하였다. 이와 같은 그의 이해와 더불어 여러 신학적 탐구가 다메섹 도상에서부터 시작된 후에 아나니아와 그로 대표되는 다메섹 교회 공동체를 거쳐 아라비아 삼 년 동안에 걸쳐 계속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다음 단원 “아라비아에서 선포한 메시지”에서 보다 더 자세히 논의하고자 한다.

김세윤을 비롯한 여러 학자는 바울이 아라비아를 택하여 간 것은 그가 다메섹 체험을 통해 받은 사도직 소명을 확인하거나 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명에 응답하여 이방인의 사도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라 주장한다.[7] 그가 아라비아에서 그렇게 기도하고 묵상하며 신학 탐구를 위해서만 3년의 세월을 보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홀연히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충격적인 만남으로 인하여 그가 비록 눈은 떴으나 보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한 상태로 지내는 사흘 동안은 묵상과 기도의 기간으로 보냈다(행 9:11). 그러나 주님께서 그에게 귀히 보내신 아나니아가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라고 하자 즉시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서 다시 보게 되었다(행 9:17~18). 사실 사울은 특별한 계시를 받지 않는 가운데 유대교를 신봉할 때도 아주 열정적이었다. 그 점에 대해서 그는 갈라디아서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려 연갑자 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히 있었으나”(갈 1:13~14).

바울의 다메섹 소명 사건과 자신의 아라비아 선교사역의 관련성에 대해서 갈라디아서를 통해 계속 진술되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그 후 삼 년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갈 1:15~19).

바울의 이 진술에는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갈 1:20)라는 말이 덧붙여진다. 바울의 이와 같은 자신의 소명 소개(갈 1:15~16)는 일차적으로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가 소개하는 여호와의 종이 소명 받은 것(사 49:1,6)과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구약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소명 받은 것(렘 1:5)에 비추어 해석하는 것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8]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사 49:1)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들을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 49:6)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렘 1:5)

김세윤은 갈라디아서 1:15~17에서 바울이 그의 소명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여호와의 종의 두 번째 노래인 이사야 49장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종의 노래의 첫 번째 노래인 이사야 42장도 똑같이 그의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9] 편의상 1, 6, 11절에 주목하여 보자.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사 42:1).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사 42:6)

“광야와 거기에 있는 성읍들과 게달 사람이 사는 마을들은 소리를 높이라 ‘셀라’(반석을 뜻하는 ‘페트라’, 70인 역)의 주민들은 노래하며 산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사 42:11).

이사야가 말하는 이방인은 느바욧, 게달, 셀라의 주민 등으로 대표된다(사 42:11; 60:7 등; 창25:13 참조). 느바욧은 아브라함의 서자 이스마엘의 장자이고, 게달은 둘째 아들이다(창 25:13). 이사야 42:11의 ‘셀라’가 70인 역(LXX)에서는 반석이라는 뜻을 지닌 ‘페트라’이다.[10] 셀라의 주민들은 곧 페트라의 주민들이다. 바울의 첫 선교지인 아라비아가 곧 페트라를 수도로 하는 나바티안 왕국이라는 뜻이다. 이 왕국은 BC 2세기에 세워진 왕국으로서 다메섹 인근에서부터 히자즈(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 지역) 남방으로 펼쳐있었다.[11] 앞 장에서 우리는 바울이 다메섹에서 살해위협을 벗어나기 위해 광주리를 타고 도망간 사건에 대하여 다음 두 개의 구절을 통해 확인하였다.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행 9:23~25)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고후 11:32~33)

아레다 왕은 아레다 4세로 나바티안 왕국(Nabatean Kingdom) 의 왕이다(주전 9년 – 주후 40년).[12] 요세푸스(Josephus)에 따르면(Ant. 1. 220~221), 나바티안인들은 이스마엘의 첫째 아들 느바욧의 후예들을 비롯한 여러 이스마엘의 후손들이다.[13] 신약성경의 아라비아인들로서 오순절 날 성령 강림으로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설교하였던 현장의 “아라비아인들”(행 2:11)도 곧 나바티안 왕국의 백성들이다.[14] “페트라”는 나바티안인들이 바위를 깎아 만든, 암벽에 세워진 도시로 나바티안 왕국의 수도였다.[15]

우리는 이상의 논의를 통하여 네 가지 사실을 정리할 수가 있겠다. 첫째, “여러 날”(행 9:23)은 곧 바울이 다메섹 교회 공동체를 중심으로 아라비아에서 지냈던 “삼 년”이다(갈 1:18). 둘째, 바울은 페트라를 수도로 가지고 있는 나바티안 왕국으로서의 아라비아를 이방인의 사도직을 수행하기 위하여 자신의 첫 선교지로 택하여 가서 약 3년을 지냈다.[16] 셋째,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이방인의 사도로서 그의 사명을 잘 감당하던 중에 아레다 왕의 살해위협을 받게 되어 다메섹 교회로 다시 돌아오자, 아레다 왕이 다메섹에 주재하고 있는 그의 고관을 통해서 바울을 살해하도록 하였으며, 그 살해위협에서 그를 광주리에 태워 피신시켰던 자들이 사울의 제자들이었다는 사실은 곧 그의 아라비아 사역이 그의 제자들과 더불어 역동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시사해준다. 넷째, 아레다 왕의 고관은 사울을 살해하는 데 유대인들을 가세하도록 하였다.

이사야 60:7에 따르면,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인 “게달의 양 무리와” 첫째 아들인 “느바욧의 숫양”이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에 드려지고 하나님께 열납되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집이 영화롭게 된다. 로마서 15:16을 통해서 볼 때, 바울에게는 다메섹 체험 후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바쳐질 제물로 소개되는 “게달의 양 무리”와 “느바욧의 숫양”의 실체와 그 제물을 바치는 제사장의 정체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났음이 분명하다.[17] 그 제물들의 실체는 게달과 느바욧, 즉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길렀던 양떼들 정도가 아니라 바로 이스마엘의 후손들 자신들인 곧 사람들이며, 그들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장은 다름 아닌 바울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로마서 11:1-2를 통해서 볼 때, 사람은 동물이 죽음을 통해서 제물이 되는 것과 달리,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거룩한 삶 자체를 통해서 제물이 된다는 것이다.[18] 또한, 사람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쳐지는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새 성전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것이다(고전 3:3~17, 6:19; 고후 6:16 등).[19]

존 스토트에 따르면, 로마서 15:16에서 바울이 자신을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라고 칭하였는데, 그 ‘일꾼이라는 말에서 나온 동사가 ‘오로지 종교적인 의식과 예식에 대해서만’ 사용되며, 신약에서 유대의 제사직과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둘 다에 사용되었다.[20]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제물로 드리는 것”, “받으실만하게 하려 하심”등과 같이 제사의 맥락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21] 바울이 자신의 직무가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라고 자각하게 되었던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셨던 은혜로 말미암아”(롬 15:15)라고 밝혔던 것처럼, 곧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메섹 도상까지 그에게 친히 찾아오신 사건이었다(cf. 롬 12:3; 15:15; 고전 3:10; 갈 2:9; 엡 3:2, 7~8).

이사야 66:20~21에 나타난 이방인들이 종말의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한다는 예언이 로마서 15:16의 중요한 구약성경 배경이 되고 있다는 것은 성경학자들에 의하여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사야 66:20~21에 따르면, 종말이 되면 하나님께서 온 세계의 이방인들로 하여금 성산 예루살렘의 성전에 나와 제물을 바치게 하며 그들 가운데서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신다고 하셨다. 바울은 이스라엘인이라고 하지만 베냐민 지파 출신으로서 제사장이 결코 될 수가 없었다(롬 11:1; 빌 3:5). 그런데 그는 자신이 곧 제사장이라는 자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이사야 66장의 예언의 말씀이 진정한 성전 자체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로 인하여 함께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교회를 통하여 성취되고 있음을 선포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사야 66:1~2의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라는 하나님의 질문에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겠다. 일찍이 바울에게 그 질문과 그에 대한 명쾌한 답을 했던 자가 있다. 그는 다름 아닌 예루살렘 성전 모독죄로 체포된 스데반이었다(행 6:13). 그는 자신이 성전 모독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고 변호하기 위하여 선포하였던 설교를 통하여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행 7:48)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스데반은 하나님의 그 질문,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를 한 번 더 던졌다(행 7:49~50). 그 의도가 무엇이었겠는가? 일찍이 솔로몬이 세웠던 성전도, 현존하는 헤롯 성전도 하나님의 진정한 집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새로운 종류의 성전을 준비하셨는데,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것이다(참조, 마 26:61; 27:40, 58; 막 11:12~23; 막 14:58; 15:29; 요 2:19; 고전 3:16; 고후 6:16).[22]

예루살렘 성전 모독죄로 인하여 체포되어 돌로 쳐 죽임을 당하던 스데반이 그렇게 당당할 수가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그와 똑같은 죄목으로 일찍이 사형 선고를 받으신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 자체가 되시는 분이시며, 그의 교회 역시 하나님의 성전이요, 그의 교회의 일꾼 된 자신도 그가 살든지 죽든지 그 성전의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열납되고 있음을 확신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마 26:61; 27:40; 막 14:58; 요 2:19; 행 6:13~14). 그로부터 약 25년이 지난 후에 바울 그 자신에게도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힌 죄로 체포되는 사건(주후 57년경)이 발생했다(행 21:28). 그때 바울은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약 25년 전의 스데반의 죽임 당한 사건을 언급하였다(행 22:20). 그것은 그가 스데반이 성전 모독죄로 죽임당하기 직전 선포하였던 그의 설교를 통하여 던졌던 하나님의 질문(사 66:1~2), 즉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와 그에 대한 스데반의 답을 생생하게 기억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바울은 다메섹에서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 그의 사도직 속에는 곧 제사장직도 포함되며, 그가 몸을 담고 있는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며, 그의 제물은 죽은 동물들이 아니라 곧 사람들로서 특별히 이방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제물이 되는 것은 죽음을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 자체를 통해서 된다는 것이다. 바울은 그의 제사장적 사도직을 아브라함의 서자 이스마엘의 후손들인 아라비아인들, 즉 나바티안 왕국의 백성들을 상대로 약 3년 동안에 걸쳐 수행하여 많은 열매를 맺었다. 그 결과로 그 왕국의 왕에게 미움을 사게 되어, 다메섹으로 피신하여 돌아가게 되었고, 그 왕은 다메섹의 방백을 시켜 바울을 죽이도록 하였다.

  2. 아라비아 그 이후 10년

사도행전 9장과 갈라디아서 1장과 고린도후서 11장을 종합하여 볼 때, 바울/사울은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살해위협을 벗어나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는 다메섹과 아라비아에서 삼 년을 보낸 후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 오일을 머무는 동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를 보지 못하였다고 증언한다(갈 1:17~19). 그렇다면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과 소명 사건을 경험한 후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라비아로 가서 3년을 지내게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갈라디아 교회 안에 침투하여 들어 온 유대주의자들이 바울의 복음과 그의 사도직까지 문제 삼았기 때문이었다.[23] 그의 복음은 그가 다메섹 동상에서 일어났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계시로 말미암았으며, 그렇기에 그는 그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서 뭔가 보충 교육을 받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가 선포한 복음과 다른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갈 1:6~11). 그 후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보름 정도 머물렀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사도 베드로와 야고보 등을 만나 잠시 교제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증언이 참됨을 강조하기 위하여,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갈 1:20)라고 한다.

사울/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보름밖에 머물 수가 없었던 이유는 거기에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말하고 헬레파 유대인들과 함께 변론하여 그들로부터 또 살해위협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바나바를 비롯한 예루살렘 교회 형제들이 그를 항구 도시 가이사랴로 데리고 가 그의 고향 길리기아 다소로 배를 타고 돌아가도록 하였다(행 9:26-30). 훗날,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가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교회가 부흥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 목회자로 지목하여 보냈다. 바나바는 길리기아 다소의 바울을 데려와 그와 함께 안디옥 교회를 섬겼다.

바나바가 예루살렘 교회의 동료 형제들과 더불어 바울을 가이사랴를 통해 그의 고향 길리기아 다소로 피신시킨 때부터(행 9:26~30), 안디옥 교회로 데려와서 함께 사역하게 될 때까지(행 11:19~26)의 기간을 대 침묵, 또는 칩거, 또는 잃어버린 세월 등이라고 일컫는 학자들이 의외로 많다. F.F 브루스에 따르면, 그 기간은 약 10년이다. 그는 바울이 예루살렘을 떠나 다메섹과 아라비아에서 약 3년을 보낸 다음(갈 1:17), 예루살렘을 거쳐 그의 고향 길리기아 다소로 가서 10년 정도 지낸 것으로 추정한다.[24] 이에 대해 톰 라이트는 바울은 ‘침묵의 10년’을 보내었다고 말한다.[25] 한편, 그 기간이 5년 안팎이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고,[26] 7년 안팎이라고 하는 자들도 있다.[27] 분명한 것은 바울이 안디옥 교회의 바나바로부터 부름을 받기 전까지의 기간이 짧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 자신은 그 기간 내내 이방인을 위한 사도직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었으며, 그에 대한 소문을 유대의 교회들이 전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렸다고 증언하고 있다(갈 1:21~24).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갈 1:21~24).

“수리아와 길리기아”는 다소와 안디옥이 공동 수도였던 속주가 결합된 명칭이다. 유대의 교회들은 바울을 전에 만나 본 적이 없어서 얼굴로는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따르면, 그의 사역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는 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나바라는 별명을 부여받은 구브로 출신 레위족속 요셉이다(행 4:36). 마틴 헹엘(Martin Hengel)은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개척했던 선교지의 교회들을 재방문하였던 것처럼, 그가 수리아와 길리기아의 교회들에서 사역하는 동안에도 다메섹과 아라비아의 교회들을 적어도 몇 차례 더 방문하였을 것이며, 특별히 그의 방문길에 바나바가 동행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28] 사실 바울이 바나바를 찾아갔던 것은 당시 그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역에서 자신의 사도직을 잘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사도행전의 다음 구절들(행 15:23, 40~41)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가 있다.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라”(행 15:23).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행 15:40~41)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이 작성한 편지의 송신자는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이다. 그 편지는 안디옥 교회의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 교회에 제기하였던 안건에 대한 공회의 답변이 포함되어 있다. 그 안건은 바리새파에 속한 신자들의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하며,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라는 주장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해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가 참석한 가운데 공회를 개최하여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거나 모세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결의하였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는 공식적인 편지를 작성하여 바사바라고 불리는 유다와 실라를 통해 수신자들에게 전달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안디옥 교회의 교우들은 그들을 통해 편지를 전달받아 읽고 기뻐했다(행 15:30~31). 그런데, 그 편지의 수신자들은 ‘안디옥 교회의 이방인 형제들뿐만이 아니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이었다.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은 바울이 바나바의 초청으로 안디옥 교회에 부임하기 직전까지 개척하여 목회하였던 교회들의 이방인 형제들이다.[29] 사도행전 15장 32~33절에 따르면, 유다와 실라는 둘 다 선지자로서 안디옥 교회와 얼마 동안 지내며 여러 말로 형제들을 권면하고 굳게 한 후에 예루살렘 교회로 돌아갔다. 그런데, 일부 사본 34절에는 “‘실라가 저희와 함께 유하기로 작정했다”라고 나오고, 다른 사본에는 “유다만 홀로 돌아갔다”라고도 나온다.[30] 한편, 바울은 바나바와 크게 다투고 헤어지고(행 15:36~39), 실라를 택하여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하여 그들을 견고하게 하였다(행 15:40~41). 그때 실라는 유다와 함께 그 편지를 안디옥 교회에 전달하였던 것처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자신이 직접 전달하였을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기록하기(AD. 55년경) 14년 전에 경험한 환상과 계시에 대하여 언급한 적이 있다(고후 12:1~6). 로버트 피키릴리는 그 때가 바로 그의 “수리아와 길리기아”에서의 이방인의 사도로 아주 역동적인 사역을 펼친 기간이라고 강조한다.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에 소개되는 재판들 가운데 몇 가지 일은 그 기간에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특별히, 고린도후서 11장 24절에 소개된 바울의 태형 사건, 즉 그가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다는 사건은 사도행전에 전혀 소개되지 않았는데, 바로 그 기간 가운데 일어났다고 피키릴리(Picirilli)는 주장한다.[31]

지금까지 바울의 아라비아 그 이후 10년에 대해 논의하여 보았다. 이는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소명으로 받은 이방인의 사도직을 수행하기 시작한 시점이 언제인가에 대한 논의를 위함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의 사도직 수행 결과로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가 바로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26)이라고 최초로 인식하고 선포한 시점과 대상에 대하여 논의하기 위함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주 “아라비아에서 선포한 메시지”에서 계속 논의하기로 하자. <계속> [복음기도신문]


[1] 이 부분은 횃불트리니티 신학교 이슬람연구소(http://ttcis.ttgst.ac.kr)의 “우리 형제 이스마엘” 제 107호(2011년 4월 15일)에 실린 필자의 글 “아라비아 최초의 선교사 바울과 그의 메시지”에 최초로 소개되었다. 그 후에 『ACTS 중동 연구』 제2권 2019에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트럼프의 지지자들의 주장과 아라비아 최초 선교사 바울의 메시지”에서 수정 보완되어 실린 적이 있으며 이번에 대폭 보완이 되었다. 

[2] 바울의 아라비아 행은 그의 사도직에 대한 소명을 확인하고 그 사역을 준비하기 함이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다음과 같다: J. B. Lightfoot, E. J. Goodspeed, Burton, H. Ridderbos, H. C. Kee, A. Deissmann, N. Taylor, Charles C. Ryrie, James Montgomery Boice, John R. W. Stott, Charles R. Swindoll, Tom Wright 등.

[3] N.T. Wright, Paul: A Biography, (Sanfransico: HaprerOne, 2018), 63-64.

[4] Seyoon Kim, 『칭의와 하나님의 나라』, (서울: 두란노, 2020). 202.

[5] Seyoon Kim, 『칭의와 하나님의 나라』, (서울: 두란노, 2020). 202. 김세윤은 그의 책 부록에 <N. T. Wright, Paul: A Biography (Sanfransico: HaprerOne, 2018)에 대한 논평>을 소개한다(198-212). 이 논평은 2018년 11월 6일 미국 휴스턴(Houston) 소재 레니어 도서관 (Lanier Theological Library)에서 개최된 Wright의 『바울 평전』 Paul: A Biography에 대한 패널 토론회에서 발표된 것이며, youtube에 토론회 실황이 올려져 있다.

[6] 바울의 이방인을 위한 소명 사건의 시점이 다메섹이 아니라는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 김세윤은 그와 같은 주장의 그릇됨에 대해서 그의 두 책을 통하여 잘 밝히고 있다. Seyoon Kim, 『바울 복음의 기원』, 홍성희 역 (서울: 엠마오, 1994). 『바울신학과 새 관점』. 정옥배 역. (서울: 두란노, 2002).

[7] O. Betz, G. Bornkamm, M. Hengel, Maria Schwemer, John B. Polhill, F. F. Bruce, John Pollock, Jacob van Bruggen, John McRay, Udo Schnelle, Howard Marshall, Ian Paul, Rorbert Raymond, 김세윤, 김철홍 등.

[8] 김세윤은 『바울신학과 새 관점』의 <제3장 이사야 42장과 바울의 소명>에서 다음과 같은 소제목으로 40여 페이지에 걸쳐(169-210), 바울이 그의 다메섹 도상에서의 갖게 된 소명사건을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이사야 42장을 참고하였을 것이라 명쾌하게 밝혔다. ① “하나님이 기뻐하셨다…” ② “이방의 빛’이 되리라는 소명”, ③ “내가 곧 아라비아로 갔다”, ④ “택정하심” ⑤ “‘이전 것’과 ‘새 것’”, ⑥ “하나님의 구원의 심판 혹은 그의 의의 복음을 전파함”, ⑦ “이방인들의 소망”, ⑧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 끝까지”, ⑨ “백성의 언약”, ⑩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⑪ “이스라엘의 완악해짐”, ⑫ “결론”.

[9] Seyoon Kim, 『바울신학과 새 관점』, 171.

[10] Seyoon Kim, 『바울신학과 새 관점』, 175.

[11] Martin Hengel and Anna M. Schwemer, Paul between Damascus and Antioch: The Unknown Years, trans. by John Bowden (London: SCM Press, 1997), 386, Anchor Bible Dictionary, vol 4, 970-73.

[12] 아레다 IV 왕은 다메섹 동남쪽 아라비아 지방 중심으로 펼쳐졌던 나바티안 왕국의 왕으로서 헤롯 안디바의 장인이기도 하였다. 로마 황제 갈리굴라는 다메섹을 아레다 IV 왕에게 주었다.

[13] Seyoon Kim, 『바울신학과 새 관점』, 175.

[14] Josephus, Ant. 1.220-21; cf. Hengel and Schwemer, Paulus, 190. Martin Hengel, “Paul in Arabia”, Bulletin for Biblical Research 12.1 (2002) 50에서 재인용.

[15] 페트라는 요르단의 최대 명소로 유네스코가 공인한 세계문화유산이다(1985년). 세계 신(新)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이다. 페트라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명장면으로도 유명하며 전 세계 관광객들이 계속 몰려온다.

[16] Margaret Thrall,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Second Epistle to the Corinthians (ICC; Edinburgh: T&T Clark, 2000), 2:770.

[17] 김철홍. “바울이 아라비아로 간 까닭은?” 한국신약학회/NTSK 신약논단 2009년

봄호(1호) www.iktinos.org/seminar/upfile/070920김철홍.pdf, 3-8.

[18] 김철홍. “바울이 아라비아로 간 까닭은?”, 7.

[19] 김철홍. “바울이 아라비아로 간 까닭은?”, 2-3.

[20] John R. W,. Sott. 『로마서 강해』, 정옥배 역 (서울: IVP. 1996). 506.

[21] John R. W,. Sott. 『로마서 강해』,, 506-507, 김철홍 3. James D. G. Dun. Romans 9-16, World Biblical Commentary 38B. (Waco: Word, 1998) 867-868.

[22] 김철홍. “바울이 아라비아로 간 까닭은?”, 6.

[23] 이한수, 『갈라디아서』, (서울: 선교횃불, 1997), 53.

[24] F.F Brcue, Paul, Apostle of the Heart set Free (Grand Rapids: Eerdmans 1977), 475.

[25] N.T. Wright, 『바울 평전』, 121-122.

[26] Frank. J. Goodwin, 『바울신학의 생애』, (서울: 크리스챤 서적 1989), 37.

[27] Robert E. Picirilli, 『사도 바울』, (서울: 솔로몬 1994), 105.

[28] Martin Hengel, Paul in Arabia, Bulletin for Bilblical Research 12. (2002). 65-66.

[29] Echard J, Schnabel, 『강해로 푸는 사도행전』, 482.683,699.

[30] Bruce M. Metzger, A Testual Commentary, 439. 유상섭, 『설교를 돕는 사도행전』, 재인용 60. 대부분의 사본에는 행 15:34은 (없음)으로 나온다. 그런데, 몇몇 사본에 이와 같은 추가적인 내용은 실라가 며칠 후에 바울과 함께 등장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31] Robert E. Picirilli, 『사도 바울』, 10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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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 아신대학교(ACTS) 선교대학원 교수 및 GMS 아랍권 선교사(천안장로교회 파송. since 1989). 그의 책으로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CLC, 2009)과 아랍권 및 이슬람권 선교와 관련된 여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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