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조상국 칼럼]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순종’

ⓒ unsplash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1~2)

나는 고등학교 2학년때 지병으로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후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야 했다. 고 2때 학교를 중퇴해야 했고, 가구 공장, 신문 배달과 같이 지금으로 말하자면 3D 업종에 매달려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삶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물려받은 재산 없고, 학연, 혈연, 지연 없는 오직 내 몸 하나 밖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었다. 이런 나는 스스로 장돌뱅이와 같이 이리저리 돌아 다니며 하루살이처럼 살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때를 가끔씩 생각해 볼 때면 여전히 나의 마음 한 구석이 먹먹해진다.

내가 사업을 시작한 나이는 26살이었다. 당시 드물게 사용되던 애플 매킨토시 컴퓨터 딜러를 시작으로 사업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사업은 잘 되었고 내 삶에 없던 것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 가장 위대한 사건은 ‘결혼’이었다. 홀어머니 모시고 혼자 살아갈 생각을 해오던 내게 결혼은 정말 내 인생의 가장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자녀 계획을 세우기도 전, 계획하지 않은 아이들이 셋이나 태어나게 되었다. 아직 남편이라는 자리가 익숙하기도 전에 듣기만 했던 허니문 베이비로 첫아이가 결혼하고 1년이 채 안돼 태어났다. 첫 딸이 태어나고 적응이 되어가는 즈음, 둘째 아들이 3년만에 덜컥 태어났다. 우리 부부는 둘째를 생각하지 않았지만 주님의 뜻은 다르셨다. 첫 아이를 키우기도 버거워하는 때에 둘째가 태어난 것이다.

둘째가 태어나는 시점에 우리 부부는 함께 사업을 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맞벌이 부부가 그러하듯이 우리 부부도 아이들을 돌보고 양육하는 것보다는 ‘돈 버는 사업’에 열중했다. 돈은 당시에 우리가 일하는 것에 비해서 더 많이 벌렸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세상에서 ‘정직하지 못한 사업’을 하면 법의 심판을 받을 때까지 돈은 그냥 벌어진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이태원이라는 곳에서 함께 돈을 벌어들였다.

그 때도 우리 부부는 ‘교회에 다녔다’. 그러나 ‘죄사함을 얻은 거듭난 성도’는 아니었다. 둘 다 말은 안 했지만 우린 마음 안에서 똑 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살다 죽으면 우린 지옥 갈 사람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돈’에 전부를 걸었다. 달리 할 일도 없었고,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매일의 일상이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눈뜨면 일터로, 하루 종일 사람 상대하며 돈을 벌었다. 그리고 집에 오면 파김치가 되어 아이들과 30분 놀아 주기도 벅차서 짜증을 부리곤 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벌만큼 벌고, 쓸 만큼 쓰는데도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돈의 노예’가 되어 삶을 허비했다.

이런 우리 부부가 과연 ‘죄사함을 얻는 진정한 회개’가 있었겠는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만에 하나 그때 죽었다면 우리 부부는 당연히 ‘지옥’에 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부부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그렇게 잘나가던 사업이 ‘망하는 은혜’를 주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 그대로 ‘쫄딱 망했다’. 저축해 놓은 보험, 적금, 집, 재산을 모두 처분해야 했다. 정말로 완전히 거덜이 난 지경에 이른 것이다. 망해도 이렇게까지 완전하게 망할 수가 있을까 궁금할 정도였다.

그 때쯤 나의 마음은 가난해지기 시작했다. 웬만해선 가난해지기 힘든 장돌뱅이의 마음이 심히 가난해져서 결국에 ‘주님의 초대’에 응하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어떤 분의 이끌림을 따라 나 스스로 ‘교회에 자발적 출석’을 시작하게 됐다.

쫄딱 망한 이후 교회에 자발적 출석… 그리고 인도네시아 선교

내가 속한 교회는 ‘작은 교회 공동체’였다. 삼사십대 서너 가정과 청년들이 모인 교회이다 보니 교회가 젊어 보였다. 그렇게 섬기던 교회가 인도네시아 선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작은 섬에 땅을 사고 미션 스쿨을 짓고 하는 사역에 교회는 전력질주를 하게 되었고 이 사역에 가장 먼저 그 땅을 밟게 된 사람은 사역을 오래 했던 어느 사람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나’였다. 그렇게 지목된 나도 무엇에 이끌려 가는 마음으로 순종을 드리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홀로 동남아시아 오지를 향하게 되었는데,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서 싱가폴 공항 한쪽 구석에서 6시간 동안 뜬 눈으로 밤을 새운 그날이 지금도 생생하다. 선교와 아니, 교회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었던 나는 그렇게 어쩌다 인도네시아 비행기에 탑승하게 되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나라는 죄인이 그곳에 갈 일이 없고, 갈 수도 없었다.

내가 방문한 섬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니아스’라는 섬이었다. 꼬박 이틀만에 도착한 섬의 광경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쓰나미가 지나간지 6개월이 지나갔지만 여전히 마을과 도시의 건물들은 폐허가 된 채 방치돼 있었고 아무것도 복구가 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혼이 나간 것처럼 있었고, 거의 대부분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그 섬에 도착해서 알게 된 놀라운 것은 니아스섬은 ‘크리스천들이 모여 사는 섬’이라는 것이다. 당시 섬 주민의 95%가 그리스도인이었다. 인도네시아는 철저한 이슬람 국가이다. 그들은 크리스천들을 따로 한곳에 모아 두고 거기서 살 것을 요구했고 강제 이주 한 크리스천들이 그곳에서 대대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니아스를 동서남북을 두루 다니며 섬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해변의 한 마을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마을 이장님 댁에 주민들이 함께 모여 있었다. 나를 데리고 섬을 둘러보는 가이드를 해주셨던 분이 현지 교회 젊은 목사님이시다 보니 내가 그곳에 간다는 것을 미리 알리셨던 것이다.

그렇게 머나먼 타국에서 만난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모두가 새까맣게 그을린 사람들, 영양 실조에 걸린 것처럼 삐적 말라 있는 사람들. 그들의 눈은 여전히 여진으로 인한 공포에 초점이 흐려져 있었고 마을의 집들도 대부분 지진으로 무너진 상태였다.

교회를 지어달라는 요구에 세계관 바뀌어

이렇게 처참한 상황 속에서 나의 세계관을 바꾸게 되는 일이 일어났다. 마을 사람들과 이장님이 함께 하는 자리에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하여 먼 나라에서 온 이방인’에게 청한 그들의 요구 때문이었다. 그들이 내게 요구한 오직 한 가지는 ‘교회를 지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먹을 음식과 필요한 생필품이나 의복을 구해야 하고, 집을 고쳐야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는데 모두가 함께 ‘교회를 건축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라는 말이 미친 소리처럼 들렸다. 현지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인 ‘그들’과 교회를 다니며 가난과 고난에 처한 그들을 돕기 위하여 그 곳에 와있는 ‘나’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분명 세계관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나라면 먹고 살 것을 생각하며 세상의 것을 구해야 했지만 그분들은 자신 보다는 교회를 먼저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가지고 계신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부끄럽고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난 이들보다 교회를 사랑하지 못했다. 그리고 난 이들보다 더 주님을 알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남을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나의 마음은 숙연해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혼자 잘 하지 못하던,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는 ‘기도’를 주님께 올려 드렸다. 긴 기도의 시간도 아니었고 많은 간구와 기도도 아니었다. 오직 한 가지만을 주께 기도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나를 비롯하여 내게 맡기신 자녀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믿음으로 살아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곳에 남아있는 동안 한국에 돌아가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들었다. 세상의 학교에서 세상을 배우는 아이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배우는 학교에 보내주시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이 기도에 언제 응답하실지, 그리고 과연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이 아이들을 공교육의 현장에서 빼내어 홈스쿨을 시작할 수 있을지 나조차도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돌아왔지만, 나는 여전히 아이들을 공교육 현장에서 빼내 올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이후에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이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다. 당장에 일터에 함께 나아가야 하는 우리 부부가 없는 하루를 아이 셋만 집에 두고 나갈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도저도 하지 못하는 사이 시간을 흘러갔고 아이들에게 ‘믿음을 유산’으로 주기 원했던 나의 기도도 내 생각 속에서 사라져 간지 오래되던 어느 날 주님은 잠자고 있던 우리 부부를 깨우셨다.

오랜 시간을 세속과 친구삼고 여전히 은혜는 있었으나 실제가 아닌 꿈처럼 여기며 살던 우리에게 ‘복음학교’를 통하여 ‘총체적복음’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 부부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모두 함께 복음 앞에 세워주시는 은혜를 입게 되었다. 그렇게 2~3년을 숨가쁘게 달려가던 중 다음세대를 선교사로 양성하는 ‘헤브론원형학교’의 개교 소식이 우리에게 전해졌다.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학교 설명회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학교 설명회 자리에 갔던 추운 겨울, 폐교의 허름한 강당에서 치러진 ‘헤브론 첫 학교 설명회’때 주님은 선교사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몇해 전 니아스에서 아이들을 주께 올려 드리며 기도했던 나의 기도의 응답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 주셨다. 정말 감격스러웠다.

그렇게 주님께서 큰 아이와 둘째를 1기로 입학하게 해 주셨고, 셋째는 3기로 입학하는 은혜로 말미암아 ‘돈’밖에 모르던 우리 가정에 ‘선교사가 셋이나 되는 하나님의 영광의 가문’으로 바뀌어지는 역사를 이루어 주셨다.

자녀 셋을 선교사로 보내고 지금까지 9년이 지나가고 있다. 큰 아이는 2년 태국 단기선교를 다녀온 후 비즈니스 선교단체(oikonomos mission)에 첫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서 현재까지 순종의 걸음을 걷고 있다.

둘째 아들은 L국으로 파송을 받았다가 코로나로 한국에 들어온 후 6개월 공동체 훈련을 받은 후에 현재 미주 헤브론원형학교에서 광야에 홀로 서게 하시는 약속으로 단기선교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다. 마지막 막내는 이제 11학년으로 내년을 지나 후년이 되면 언니와 오빠와 같이 단기선교를 떠나게 된다.

주님은 세 자녀를 ‘로마서 12장 1-2절’로 불러 주셨다. 그 때 우리 부부가 택하게 된 것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순종,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순종하는 선교사’의 부르심이었다. 더 고민할 이유도, 생각도 필요 없었다. 오직 하나님께만 순종을 드리는 것이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순종임을 깨닫고 우리는 그 순종을 드렸다.

그러나 이 순종은 아이들을 올려 보내는 순종으로 끝나지 않았다. 부모인 우리도 자녀들과 함께 복음을 듣고 보고 배워야 함을 지난 9년 동안 가르치셨다.

내 자녀들은 선교사로 보내 놓고 나는 안락한 의자에 앉아 우아하게 차를 마시거나 책을 보며 자기만의 시간을 누리려 하는 욕심, 내 자녀들은 선교사로 드렸다고 하면서 여전히 ‘돈 버는 일’에 미쳐서 밤 11시도 좋고 12시도 좋다고 돈 만 버는 일에 매진하는 욕심, 내 자녀들은 기숙학교에 보내 놓고 평일에 내가 원하는 대로 이기적인 삶을 살고 싶어하는 욕심으로 가득한 이전의 부모인 우리 부부는 매일 십자가에서 죽는다.

헤브론으로의 부르심은 자녀만의 부르심이 아니라 부모도 함께 불러 주셨기에 부모인 우리도 부모 선교사로 함께 믿음의 경주를 달려야만 한다. 나는 이것을 위해서 하던 일을 멈추고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야 하고, 학교와의 연합과 섬김에 함께 나아가며, 언제든지 말씀하시면 함께 할 준비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시작도 함께였고, 마지막 경주를 마치기까지 우리는 함께 달려갈 것이다.

난 비즈니스 선교사다. 그러나 다음세대가 세워지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내 밥그릇을 내려 놓을 준비가 되어있다. 다음세대를 세우지 못한다면 한국교회의 앞날은 불투명하다. 이것을 위하여 다음세대를 세우는 일에 모든 그리스도인과 특별히 기업인들은 힘을 합해야 한다.

돈은 버는데 다음세대가 망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공교육 12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자녀들은 근근히 다니던 ‘교회’를 떠난다. 왜냐하면 공교육에서 아이들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부인하는 죄’를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 가정에 정말 특별한 은혜를 주셨다. 이제 우리 모두가 선교사로 부르심에 합당한 ‘복음전파’의 사명을 가지고 온 열방을 향해 달려 가고 있다. 언제 주님이 오실지 모르는 이 시대에 더욱 오실 주님을 기대함으로 ‘이 세대를 본받지 않은 순종’을 드리는 부모세대와 크리스천 기업인들이 일어나도록 우리는 더욱 기도할 것이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디모데전서 6:17)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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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국 | 1997년부터 ‘mission’이라는 의류 유통업을 운영해 오고 있다. 2017년에는 oikonomos mission 단체를 설립하고 비즈니스 영역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청지기’를 세우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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