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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선 칼럼] 예루살렘 교회가 서로 물건을 통용하게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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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의 발 앞에 둔 밭과 집을 매매한 돈의 처분 문제와 사회 경제의 미래학 (1)
放在使徒脚前田产房屋所卖的价银处理问题和社会经济的未来学 使徒行传 4章 32-35节

(행 4:32, 개역)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33, 개역)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행 4:34, 개역)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행 4:35, 개역)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행 4:32, NKJV) Now the multitude of those who believed were of one heart and one soul; neither did anyone say that any of the things he possessed was his own, but they had all things in common.(행 4:33, NKJV) And with great power the apostles gave witness to the resurrection of the Lord Jesus. And great grace was upon them all.(행 4:34, NKJV) Nor was there anyone among them who lacked; for all who were possessors of lands or houses sold them, and brought the proceeds of the things that were sold,(행 4:35, NKJV) and laid them at the apostles’ feet; and they distributed to each as anyone had need.
32.那许多信的人,都是一心一意的,没有一人说,他的东西有一样是自己的,都是大家公用。33.使徒大有能力,见证主耶稣复活。众人也都蒙大恩。34.内中也没有一个缺乏的,因为人人将田产房屋都卖了,把所卖的价银拿来,放在使徒脚前。35.照各人所需用的,分给各人。

1장 성경의 해석과 적용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성경은 삶에 적용하는 기준이 된다. 그 기준이 어떠한 정도인가? 하는 것은 신앙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신앙이 강한 사람은 성경이 인생의 절대 기준이 된다. 사실 성경을 인생의 절대 기준으로 삼도록 하는 것이 기독교가 지향하는 올바른 신앙의 개념이 된다. 그런데 성경을 해석하는 것에 있어서는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계시는 참된 진리의 말씀이다. 그런데 그 말씀을 신자가 받아들이고 삶에 적용하는데 있어서는 여러 가지 다른 해석과 적용이 나올 수 있다. 본문의 말씀은 그와 같은 해석과 적용에서 상당히 예민한 것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본문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2장 본문의 내용

1절 예루살렘 교회의 특징

먼저 본문의 내용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는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고 했다. 이것은 일단 신앙의 일치를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의 조명 아래 성경을 해석하며 신자들이 일치된 신앙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이런 신앙에서 나온 행위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고 하는 이가 없다고 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이와 같은 일이 진행된 이유는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자들 가운데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었다. 그렇게 함으로 신자들 가운데 핍절한 사람이 없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2절 현재에도 가능한가?

우리가 생각할 것은 ‘현재에도 이것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어떤 목사가 사도와 같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고 그것으로 인해 신자가 큰 은혜를 얻으면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과 같이 집과 밭을 팔아 그 돈을 목사의 발 앞에 놓고 신자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 필요한 만큼 그 돈을 가져가게 하는 일이 발생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 가운데 소수의 사람들은 지금도 이와 같은 생활의 형태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현재 기독교인의 인식과 관점이 초대 예루살렘의 교회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3절 왜 예루살렘 교회의 체제는 오늘날 지속되지 않는가?

1항 헌금한 교인

또 하나의 질문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행해졌던 이 놀라운 모습은 왜 교회에서 지속되지 못하고 또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게 소멸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교회가 이 형태를 지속하지 못한 것은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에 신자가 밭과 집을 판 돈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놓는 일이 계속 일어나야 하는데 지금도 일반인들이 밭이나 집을 사고 파는 것은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이 집과 밭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놓으면 그 다음에 다시 그와 같은 일을 하려면 요즘의 생각으로 볼 때, 30년 정도 일하고 저축해야 다시 집을 사는 일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쉽지 않은 것은 처음 밭과 집을 샀을 때는 젊어서 노동을 하니까 돈을 좀 벌어서 그 일이 가능했겠지만 두 번째 다시 밭과 집을 사기 위해서 노동을 하는 나이는 50~60대일 텐데 이 나이의 사람에게 일을 시켜주는 기업은 거의 없다.

한국의 상황에서 본다면 이 연령대는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택배 일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 아파트 경비 일을 하면 좋은데 이것도 직업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나이가 좀 더 있으면 전철을 무료로 타는 것을 이용하여 우편물 택배를 하는 일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원하는 만큼의 돈을 벌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마 야간에 대리운전을 생각할 수 있지만 요즘 같이 코로나 상황에서는 이 일감도 거의 없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교회를 현재의 한국으로 옮겨놓고 생각해보면 한번 밭과 집을 팔아서 사도의 발 앞에 갖다 놓고 교회의 신자가 필요로 한 만큼 가져다가 쓰는 일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반복하여 일어나거나 계속될 수는 없다. 즉 신자들이 밭과 집을 팔아서 그 돈을 교회에 드리고 그 돈을 필요에 따라 다 사용한 후에는 더 이상 바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 가난한 기독교인들이 가난하지 않을 수 있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집과 밭을 팔아서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지속될 수 없다. 또 부유했다가 가난해지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가난이 사라지고 교회의 사람들이 모두 필요한 만큼 돈을 가져다가 쓰면서 사는 그런 형태는 지속될 수 없다.

2항 목사의 헌금 처리

이번에는 반대로 생각해보자. 이즈음의 한국에서 신자가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밭과 집을 팔아서 목사의 발 앞에 갖다 놓는다면 목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시고 30배, 60배, 100배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받을 것인가? 만일 그 신자가 몇 채의 집이 있고 논밭이 더 있다면 그렇게 축복하고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목사의 발 앞에 갖다 놓았다는 것은 성경 말씀을 따라 사도의 발 앞에 갖다놓았다는 것과 같은 뜻이지 목사 개인이 그 집과 밭을 판 돈을 가지라는 뜻이 아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면서 목사 개인에게 갖다가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침을 꿀꺽! 삼키는 목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을 빨리 바꿔라. 그런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인간이라면 이미 목사가 아니다. 빨리 목사를 그만 두어야 구원의 가능성이 있지, 그렇지 않으면 거의 블랙홀에 빨려드는 것처럼 지옥으로 가는 생각과 행위에 빠져 있기 때문에 극히 위험하다.

이 시대에 한국에서 사는 정상적인 목사라면 그 신자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그리고 그의 경제가 어떠한 지를 살펴야 한다. 앞서 말했듯 대개 일반적인 신자에게 있어서 밭과 집이라고 하는 것은 평생 모은 돈일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것을 팔아서 목사의 발 앞에 갖다 놓는 것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의 경우라면 신자가 그와 같은 행동을 하기 전에 미리 교육을 할 것이다. 그것은 신자가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면 주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신자가 갖고 있는 것을 바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고, 그러나 그것은 마음에 품고 평생을 그와 같은 마음으로 사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마음으로 주변에 도와주어야 할 사람들을 가만히 도우면서 사는 삶이 되라고 말해 줄 것이다. 그래도 만일 밭과 집을 팔아서 바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돈을 받지 않을 것이고 그것으로 다시 집과 밭을 사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괜히 집과 밭을 사고 팔면서 세금만 많이 물게 되고 또 중개 수수료도 만만치 않으니 아예 처음부터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게 엄하게 막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혹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한국이란 나라의 경제 사정이 매우 좋아서 그렇게 밭과 집을 바쳐도 금방 다시 살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혹시 모를까? 그와 같은 사정이 아닌 것을 뻔히 아는데 신자가 바쳤다고 해서 그것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4절 예루살렘 교회의 특징은 어떤 이유에서 발생했을까?

그렇다면 예루살렘 교회에서 밭과 집을 팔아 사도의 발 앞에 갖다 놓고 신자들이 필요한 만큼 나누어 쓰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것은 성경에서 보면 사도가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하니 그것으로 인해 신자가 큰 은혜를 입었다고 했다. 예수의 부활이 강조된 것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볼 때에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고 세상은 종말을 맞게 될 것이란 믿음이 강해졌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예수님께서 3~5년 내에 재림하실 것이 확실하다면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될 것인가? 기독교인들은 재물을 축적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신앙생활을 보다 경건하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보다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의 신자들은 집과 밭을 팔아 사도의 발 앞에 두고 모든 신자가 필요에 따라 사용했던 것이다. 그 돈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욕심낼 필요가 없다. 몇 년 동안 살고 나면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이 땅에서의 삶은 정리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만 가져다가 썼을 것이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교회의 경제에 대한 모습은 소비와 분배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 재생산을 중심에 두지 않았고 또 그렇게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몇 년이 지나도 기대했던 예수님의 재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교회 내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그것은 곧 사도행전 5장에 기록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으로 표면화 되었다. 신자의 밭과 집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팔아서 바치는 것이었지 강요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다 바치지 않으면서도 마치 다 바치는 것처럼 거짓을 행했다. 이것은 이 두 사람의 마음에 자신들의 것을 챙기면서도 교회에서는 마치 다 바치는 것처럼 하여 칭찬을 받고 신앙이 좋은 것처럼 보이기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다 들여다보시는 주님을 피할 수 없었고 그들은 죽음의 벌을 받았다. 이 사건은 하나님을 속일 수 없음을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예루살렘 신자들의 마음에 다시 개인적인 재산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사건 후에 예루살렘 교회가 모든 재산을 필요에 따라 나누어 쓴다는 말은 기록되지 않았다. 오히려 선교사 바울이 예루살렘 지역에 기근이 들자 신자를 돕기 위해 소아시아의 교회들로부터 구제헌금을 모아서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는 일이 있었다.

(행 24:17, 개역)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롬 15:25, 개역)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롬 15:26, 개역)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계속>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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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선 선교사 | GMS(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선교회) 소속으로 중국에서 사역 중 추방된 이후 인터넷을 활용한 중국 선교를 계속 감당하고 있으며 세계선교신학원에서 신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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