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주님 따르는 삶에 평생 아이만 돌보라 해도 아멘입니다”

왕의 귀환을 기다리는 은혜 입은 자 김진태 형제 (영도 땅끝교회)

2012년 5월 현재 세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는 한 형제가 있다. 막내는 이제 겨우 7개월 남짓 된 갓난아기. 아내를 6개월간 공동 생활하는 훈련학교로 보내고 처음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시간을 엎치락 뒷치락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더욱 주님이 소망이 된다고 고백한다. 평생 주님만 따르기로 결정한 그를 만났다

–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아내와 세 자녀를 둔 가장입니다. 아내는 지금 복음사관학교(GNA)라는 6개월 과정의 공동체훈련 과정에 참여하여 훈련 중이고, 저는 현재 세 자녀와 함께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 아이 키우는 일이 만만한 일이 아님을 경험하고 있는중입 니다.”

– 홀로 아이들을 돌보면서 더욱 주님을 의뢰하는 시간이 되시겠군요.
“정말로 주님 마음을 더 알게 해주시는 시간이에요. 아이들이 왜 우는지, 왜 이렇게 표현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관심 갖고 살펴보니 알게 되고,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한번은 첫째(영훈)가 계단에서 넘어진 적이 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맨발로 달려 나가게 되더군요. 또 둘째(영하) 아이가 밥을 잘 못 넘길 때를 보며 온통 아이에게 집중된 저를 보게 되었죠. ‘연약한 나도 이 정도인데 하늘 아버지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실까?’ 생각만 하면 은혜고, 주님의 사랑이 묵상돼요.”

– 이런 시간을 갖게 된 계기가 있겠죠?
“저는 최근까지 한 선교단체의 동역간사와 중보기도학교 섬김이로, 아내는 아이들 (영훈, 영하, 샘물)을 키우며 계속 집에 있었어요. 그전에는 현재 아내가 훈련을 받고 있는 GNA에서 훈련을 받았어요. 그때 아내는 막내를 임신하고 입덧할 때였죠.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고 난 뒤 어느 날이었어요. 아내는 늘 아이들 돌보기에 바빴고,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어려워하는 모습을 제가 보게 되었어요. 화가 나서 ‘왜 그러느냐, 무슨 어려움이 있느냐’ 물었어요. 뜻밖에도 아내는 믿음조차 흔들릴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더군요. 한참 대화를 나누다 아내에게 GNA 훈련을 권면하게 되었고, 저는 6개월간 아이들을 돌보기로 했죠. 그 때는 막내가 태어난 지 4개월 쯤 되었던 시기였어요.”

– 결정에 따른 대가지불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가장 큰 걱정은 4개월 된 막내였죠. 또 평소에도 저희 가정을 근심스럽게 바라보시던 장인어른의 의견도 부담스러웠어요. 이 일을 통해 저희에게 마음을 완전히 닫으시면 어떻게 할지 걱정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매일 찾아오셔서 신경써주고, 아이들에게 마음 써 주세요. 주님이 하셨어요. 아 내가 출발하기 전, 아이를 두고 갈 걱정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죠. 그런데 그때 우리 가정에 주신 올해 약속의 말씀을 붙들게 되었어요. 이사야 54장 말씀이었어요. 자녀에 대한 걱정도 오로지 주님께 맡겨드렸죠. 감사하게도 주님은 정확하게 말씀대로 인도해 주셨구요.”

– 아이돌보기가 주업이 된 것 같은 요즘의 근황을 소개해주세요.
“처음에는 복음이 어떻게 영화롭게 될지? 그런 기대감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2~3 주 지나면서 보게 된 건 저의 절망이었어요. 아이들과의 관계, 어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생기는 갈등. 한번은 24365기도 시간이 다 되었을 때였어요.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둘째 아이가 제 바지 가랑이를 잡고 울며 보채더군요. 빨리 끝내고 기도하려는 마음에 저도 모르게 짜증을 내게 되었어요. 결국 아이의 엉덩이를 때린 후 기도의 자리에 나아갔어요. 그런데 저의 목적 때문에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그 생각으로 도저히 기도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큰 아들이 묻더군요. 아빠 왜 우냐고. ‘아빠는 착한 아빠가 되고 싶은데 안되는구나’ 그렇게 말했죠. 그러니까 ‘아빠 마음에 예수님이 있잖아요’ 라며 아들이 위로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었어요. 그런 시간을 보내며 정말 제가 어떤 큰 은혜가운데 사는지 보게 되요. 정말 주님만이 저의 소망입니다.”

– 혹시라도 어려운 시간을 맞으면서 후회가 되시지는 않나요?
“주님이 부르셨음을 믿어요. 오히려 이 시간을 통해 아내를 이해하게 되요. 아이들을 대하던 아내의 모습에 화내고 판단했는데… 저도 똑같이 반응하고 있더군요. 저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면 볼수록 힘이 빠지고, 이전이나 달라진 게 없는 인격을 볼수록 절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분명히 달라 진 것 하나는 있더군요! 이제는 내가 아니라 주님이 사신다는 것. 십자가 복음이 정말 저에게 유일한 소망 이라는 것. 정말 나 죽었구나. 저에 대한 절망의 자리를 만날 때마다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분명 알아요. GNA 훈련 통해 체질화 된 것 하나는 매순간 십자가로 가는 거였어요. 이전에는 제 영성이나 인격을 고치려 애썼는데 이제는 아니에요.”

– 어떤 계기로 그 십자가 복음 앞에 서게 되셨는지 궁금하네요.
“2007년 5월, 표면적으로는 선교지로 나가기 전에 복음을 정리해보자는 식으로 복음학교를 신청했어요. 그런데 사실 제 마음은 죄 문제로 완전 공황상태였죠. 결혼하고 선교지에 나가면 죄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 될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복음 앞에 서고 나서야 알게 되었어요. 내가 존재적 죄인이라는 사실을요. 늘 ‘죄’와 ‘나’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그동안 열심히 죄를 이겨 보려고 영성과 성령을 구하며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죄와 내가 하나라는 사실을 복음 앞에서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제 안에 사형선고가 내려졌어요.”

–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는 말이 어떤 의미 인지 더 구체적으로 나눠주시겠어요?
“처음 복음 앞에 섰을 때는 사실 ‘내가 죽었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어요. 그래서 저의 존재에 대해 늘 변명해야 했죠. ‘이렇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지금의 아내와 간음하게 되었고, 또 다시 그 죄를 합리화하려고 했죠. 아내의 임신소식에 낙태까지 하려고 했는데. 아내가 복음 앞에 서고, 결혼으로 이어지게 되었어요. 모든 상황을 당시 소속되었던 선교단체 리더십에게 고백하며 저에게 실제 된 복음을 나누었는데 오히려 그 곳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와야 했어요. 21살 때 선교사로 헌신하고 모든 학업, 직장을 포기하고 이 일에 몰두하며 달려왔는데 도저히 포기 할 수 없는 마지막 1%의 여지를 주님이 끊어버리시는 것 같은 시간을 보냈죠. 결국 모든 것을 뒤로하고 조선 설계회사에 취직해 약 3년을 보냈어요.”

– 지난 3년여의 시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나요?
“아주 평범했어요. 죄의 열매도 거의 맺지 않는 삶이었죠. 그런데 믿음 없는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경험하는 시간이었어요. 직장 생활하면서 교회 사역도 잠시 했는데 뭔지 모를 두려움에 사람들 앞에서 죄 고백하는 듯 복음을 나누었어요. 그때는 몰랐죠. 그게 복음을 영화롭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때마다 죄책감을 떨쳐내기 위해, 두려움을 없애려고 그렇게 하는 저의 내면의 두려움을 보게 됐죠. 복음은 완전한 데 온전히 누릴 수 없는 믿음에 부도난 나를 발견하고 나서야 복음 앞에 온전히 설 수 있었어요. 그런 시간 속에서 아내가 먼저 중보기도학교를 하고 저에게 그 학교를 권면해서 다니게 되었죠. 쏟아지는 복음 앞에 서며 늘 은혜 자체였어요. 제 안에 점점 갖게 되는 생각이 ‘나 같은 사람이라도 될까? 라는 마음이 들 때 주님이 말씀으로 확 증해 주시더군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나아오라’ 그래서 한 발 내딛게 되었어요.”

– 지금 경제 활동을 하고 계시나요?
“이전에는 보험이나 통장, 월급 등 보이는 물질을 의지하며 살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공급함 없이는 살 수 없는 삶을 누리고 있어요. 하나님의 공급함을 여러 방법을 통해 경험하구요. 한번은 톨게이트 통행료로 3만원이 필요한데 2만원 밖에 없어 약속된 장소를 가지 못하는 상황을 맞았어요. 주님이 부르셨으니까 믿음으로 걸음을 뗐고, 주님이 하실 것만 신뢰했죠. 아는 분께 네비게이션을 빌리기로 했는데 그분이 약속을 잊고 다른 장소에 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너무 당황스럽더군요. 주님 은혜로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었고, 그분을 찾아 다른 장소까지 멀리가게 되었어요. 그리고 네비게이션으로 다시 목적지를 확인했는데 총 비용이 2만원으로 줄어드는 거예요. 지역에 따라 톨게이트 비용이 달라진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거죠. 그런데 주님은 아셨던거죠. 이전 같으면 ‘없으면 없는대로 살면 되지’ 라고 믿음이 아닌 내 힘이나 젊음 의지 하며 살았을 거예요. 그런데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세요. 하루를 살아도 오직 믿 음으로 살아야 함을 말씀해 주세요.”

– 끝으로 한 가지만 더 질문하고 싶은데요. 혹시 이런 삶을 계속 살아야 한다면…?
“말씀기도 하던 중에 부르심에 대해 묵상하게 된 적이 있었어요. 찬송가 459장을 찬양 하면서 주님 따르라는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보게 되었어요. 앞으로의 삶이 어떠하든 변함없는 진리로 승리할 것이 라는 가사예요. 그 내용처럼 주님 사랑해서 주님 따르는 삶에 지금처럼 아이만 돌보라 해도 상관없어요. 지금까진 세상 영광 위에 나를 잘되게 하려고 살았지만 이제는 주님 만 사랑하며 따르는 길이라면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 기도제목을 나눠주시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복음 만난 후 저를 위한 기도제목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물어보시니까 생각난 것이 주님을 더 알고 더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그분을 알수록 그분을 더 사랑하게 된 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넘어지고 자빠져도 그때마다 주님만 바라보며 또 일어나 주님 따라가는 자가 되길 소망해요.”

왕의 귀환을 기다리는 은혜 입은 자
김진태 형제 (영도 땅끝교회)

2012년 5월 현재 세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는 한 형제가 있다. 막내는 이제 겨우 7개월 남짓 된 갓난아기. 아내를 6개월간 공동 생활하는 훈련학교로 보내고 처음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시간을 엎치락 뒷치락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더욱 주님이 소망이 된다고 고백한다. 평생 주님만 따르기로 결정한 그를 만났다

 –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아내와 세 자녀를 둔 가장입니다. 아내는 지금 복음사관학교(GNA)라는 6개월 과정의 공동체훈련 과정에 참여하여 훈련 중이고, 저는 현재 세 자녀와 함께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 아이 키우는 일이 만만한 일이 아님을 경험하고 있는 중입 니다.”

– 홀로 아이들을 돌보면서 더욱 주님을 의 뢰하는 시간이 되시겠군요.
“정말로 주님 마음을 더 알게 해주시는 시간이에요. 아이들이 왜 우는지, 왜 이렇게 표현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관심 갖고 살펴보니 알게 되고,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한번은 첫째(영훈)가 계단에서 넘어진 적이 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맨발로 달려 나가게 되더군요. 또 둘째(영 하) 아이가 밥을 잘 못 넘길 때를 보며 온통 아이에게 집중된 저를 보게 되었죠. ‘연약한 나도 이 정도인데 하늘 아버지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실까?’ 생각만 하면 은혜고, 주님의 사랑이 묵상돼요.”

– 이런 시간을 갖게 된 계기가 있겠죠?
“저는 최근까지 한 선교단체의 동역간사와 중보기도학교 섬김이로, 아내는 아이들 (영훈, 영하, 샘물)을 키우며 계속 집에 있었어요. 그전에는 현재 아내가 훈련을 받고 있는 GNA에서 훈련을 받았어요. 그때 아내는 막내를 임신하고 입덧할 때였죠.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고 난 뒤 어느 날이었어요. 아내는 늘 아이들 돌보기에 바빴고,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어려워하는 모습을 제가 보게 되었어요. 화가 나서 ‘왜 그러느냐, 무슨 어려움이 있느냐’ 물었어요. 뜻밖에도 아내는 믿음조차 흔들릴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더군요. 한참 대화를 나누다 아내에게 GNA 훈련을 권면하게 되었고, 저는 6개월간 아이들을 돌보기로 했죠. 그 때는 막내가 태어난지 4개월 쯤 되었던 시기였어요.”

– 결정에 따른 댓가지불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가장 큰 걱정은 4개월 된 막내였죠. 또 평소에도 저희 가정을 근심스럽게 바라보시던 장인어른의 의견도 부담스러웠어요. 이 일을 통해 저희에게 마음을 완전히 닫으시면 어떻게할지 걱정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매일 찾아오셔서 신경써 주고, 아이들에게 마음 써 주세요. 주님이 하셨어요. 아 내가 출발하기 전, 아이를 두고 갈 걱정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죠. 그런데 그때 우리 가정에 주신 올 해 약속의 말씀을 붙들게 되었어요. 이사야 54장 말씀이었어요. 자녀에 대한 걱정도 오로지 주님께 맡겨드렸죠. 감사하게도 주님은 정확하게 말씀대로 인도해주셨구요.”

– 아이돌보기가 주업이 된 것 같은 요즘의 근황을 소개해주세요.
“처음에는 복음이 어떻게 영화롭게 될지? 그런 기대감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2~3 주 지나면서 보게 된 건 저의 절망이었어요. 아이들과의 관계, 어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생기는 갈등. 한번은 24365기도 시간이 다 되었을 때였어요.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둘째 아이가 제 바지 가랑이를 잡고 울며 보채더군요. 빨리 끝내고 기도하려는 마음에 저도 모르게 짜증을 내게 되었어요. 결국 아이의 엉덩이를 때린 후 기도의 자리에 나아갔어요. 그런데 저의 목적 때문에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그 생각으로 도저히 기도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큰 아들이 묻더군요. 아빠 왜 우냐고. ‘아빠는 착한 아빠가 되고 싶은데 안되는구나’ 그렇게 말했죠. 그러니까 ‘아빠 마음에 예수님이 있잖아요’ 라며 아들이 위로를 하는거예요. 그리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었어요. 그런 시간을 보내며 정말 제가 어떤 큰 은혜가운데 사는지 보게 되요. 정말 주님만이 저의 소망입니다.”

– 혹시라도 어려운 시간을 맞으면서 후회가 되시지는 않나요?
“주님이 부르셨음을 믿어요. 오히려 이 시간을 통해 아내를 이해하게 되요. 아이들을 대하던 아내의 모습에 화내고 판단했는데… 저도 똑같이 반응하고 있더군요. 저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면 볼수록 힘이 빠지고, 이전이나 달라진 게 없는 인격을 볼수록 절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분명히 달라 진 것 하나는 있더군요! 이제는 내가 아니라 주님이 사신다는 것. 십자가 복음이 정말 저에게 유일한 소망 이라는 것. 정말 나 죽었구나. 저에대한 절망의 자리를 만날 때마다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분명 알아요. GNA 훈련 통해 체질화 된 것 하나는 매순간 십자가로 가는 거였어요. 이전에는 제 영성이나 인격을 고치려 애썼는데 이제는 아니에요.”

– 어떤 계기로 그 십자가 복음 앞에 서게 되셨는지 궁금하네요.
“2007년 5월, 표면적으로는 선교지로 나가기 전에 복음을 정리해보자는 식으로 복음학교를 신청했어요. 그런데 사실 제 마음은 죄 문제로 완전 공황상태였죠. 결혼하고 선교지에 나가면 죄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 결 될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복음앞에 서고 나서야 알게 되었어요. 내가 존재 적 죄인이라는 사실을요. 늘 ‘죄’와 ‘나’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그동안 열심히 죄를 이겨 보려고 영성과 성령을 구하며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죄와 내가 하나라는 사실을 복음 앞에서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제 안에 사형선고가 내려졌어요.”

–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는 말이 어떤 의미 인지 더 구체적으로 나눠주시겠어요?
“처음 복음 앞에 섰을 때는 사실 ‘내가 죽었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어요. 그래서 저의 존재에 대해 늘 변명해야 했죠. ‘이렇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지금의 아내와 간음하게 되었고, 또 다시 그 죄를 합리화하려고 했죠. 아내의 임신소식에 낙태까지 하려고 했는데. 아내가 복음 앞에 서고, 결혼으로 이어지게 되었어요. 모든 상황을 당시 소속 되었던 선교단체 리더십에게 고백하며 저에게 실제 된 복음을 나누었는데 오히려 그 곳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와야 했어요. 21살 때 선교사로 헌신하고 모든 학업, 직장을 포기하고 이 일에 몰두하며 달려왔는데 도저히 포기 할 수 없는 마지막 1%의 여지를 주님이 끊어버리시는 것 같은 시간을 보냈죠. 결국 모든 것을 뒤로하고 조선 설계회사에 취직해 약 3년을 보냈어요.”

– 지난 3년여의 시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나요?
“아주 평범했어요. 죄의 열매도 거의 맺지 않는 삶이었죠. 그런데 믿음 없는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경험하는 시간이었어요. 직장 생활하면서 교회 사역도 잠시 했는데 뭔지 모를 두려움에 사람들 앞에서 죄 고백하는 듯 복음을 나누었어요. 그때는 몰랐죠. 그게 복음을 영화롭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때마다 죄책감을 떨쳐내기 위해, 두려움을 없애려고 그렇게 하는 저의 내면의 두려움을 보게 됐죠. 복음은 완전한 데 온전히 누릴 수 없는 믿음에 부도난 나를 발견하고 나서야 복음 앞에 온전히 설 수 있었어요. 그런 시간 속에서 아내가 먼저 중보기도학교를 하고 저에게 그 학교를 권면해서 다니게 되었죠. 쏟아지는 복음 앞에 서며 늘 은혜 자체였어요. 제 안에 점점 갖게 되는 생각이 ‘나 같은 사람이라도 될까? 라는 마음이 들 때 주님이 말씀으로 확 증해 주시더군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나아오라’ 그래서 한 발 내딛게 되었어요.”

– 지금 경제 활동을 하고 계시나요? “이전에는 보험이나 통장, 월급 등 보이는 물질을 의지하며 살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공급함 없이는 살 수 없는 삶을 누리고 있어요. 하나님의 공급함을 여러 방법을 통해 경험하구요. 한번은 톨게이트 통행료로 3만원이 필요한데 2만원 밖에 없어 약속된 장소를 가지 못하는 상황을 맞았어요. 주님이 부르셨으니까 믿음으로 걸음을 뗐고, 주님이 하실 것만 신뢰했죠. 아는 분께 네비게이션을 빌리기로 했는데 그분이 약속을 잊고 다른 장소에 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너무 당황스럽더군요. 주님 은혜로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었고, 그분을 찾아 다른 장소까지 멀리가게 되었어요. 그리고 네비게이션으로 다시 목적지를 확인했는데 총 비용이 2만원으로 줄어드는 거예요. 지역에 따라 톨게이트 비용이 달라진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거죠. 그런데 주님은 아셨던거죠. 이전 같으면 ‘없으면 없는대로 살면 되지’ 라고 믿음이 아닌 내 힘이나 젊음 의지 하며 살았을 거예요. 그런데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세요. 하루를 살아도 오직 믿 음으로 살아야 함을 말씀해 주세요.”

– 끝으로 한 가지만 더 질문하고 싶은데요. 혹시 이런 삶을 계속 살아야 한다면…?
“말씀기도 하던 중에 부르심에 대해 묵상하게 된 적이 있었어요. 찬송가 459장을 찬양 하면서 주님 따르라는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보게 되었어요. 앞으로의 삶이 어떠하든 변함없는 진리로 승리할 것이 라는 가사예요. 그 내용처럼 주님 사랑해서 주님 따르는 삶에 지금처럼 아이만 돌보라 해도 상관없어요. 지금까진 세상 영광 위에 나를 잘되게 하려고 살았지만 이제는 주님 만 사랑하며 따르는 길이라면 무엇이든 상 관없어요.”

– 기도제목을 나눠주시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복음 만난 후 저를 위한 기도제목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물어보시니까 생각난 것이 주님을 더 알고 더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그분을 알수록 그분을 더 사랑하게 된 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넘어지고 자빠 져도 그때마다 주님만 바라보며 또 일어나 주님 따라가는 자가 되길 소망해요.” 글.
부산=최홍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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