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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선교사의 삶 속에서 소진과 회복 (2.끝)

ⓒ 이영선

본고에 등장하는 사례의 ‘나’는 필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필자가 지도한 박사과정 학생의 논문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재구성된 이야기의 화자다. 따라서 선교사가 소진을 경험하고 회복탄력성에 이르는 과정을 한국 선교사를 의미하는 ‘나’라고 하는 입장에서 전개하여 제3자가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선교현장에서 경험한 아픈 상처가 주님의 은혜로 어떻게 회복되는지에 초점을 둔 이 고백을 통해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에게 도전과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편집자>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선교지로 향하다

“나는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는 작은 교회에서 전임전도사로 사역하다가, 그 교회에서 만난 자매와 결혼하였고 또 목사 안수도 받았다. 같은 교회에서 조금 더 사역하다가 교회의 후원으로 선교의 푸른 꿈을 품으며 아시아 L국으로 선교사 파송을 받았다. 드디어 고등학교 2학년 때 기도하다가 받은 선교사로의 부르심과 헌신 서약을 실천하는 순간이었다.

목사 주제가 같은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을 나직이 부르며 현지에서 뼈를 묻어 한 알의 밀알이 되리라는 비장한 각오로 편도 항공권을 끊었다. 밤 비행기의 창측에 앉아 현지에 착륙하는 시간에 현지의 밤 하늘과 땅을 구경하였다. 5년 전에 아내와 신혼여행을 왔던 때보다는 불빛도 많아졌다지만 도시는 여전히 중심가 몇 구역에만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공항에 착륙하여 선배 선교사의 마중과 안내로 숙소까지 가는 길은 여전히 어두컴컴했으며 공항 시설도 낙후되었고 현지인들의 옷매무새도 그리 신경 쓴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처음에 선교사 파송을 받았을 때는 선교의 열정으로 가득했다. 가족도 돌보지 않고 선교에 집중하였기에 몇 년이면 큰 선교의 열매를 거둘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현지는 선교가 법으로 금지된 창의적 접근 국가로, 식사 기도 같은 신앙적 표현도 눈치 보이고 숨겨야 했던 지역이다. 고국에서는 그토록 자연스럽던 신앙적 표현뿐만 아니라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공안들이 어디에나 소리 없이 존재하고 있었다. 선교사를 제국의 앞잡이로 보게 했던 기독교의 잘못된 과거의 역사가 기독교의 장막을 쳤던 것이다. 공안의 전방위 감시체제로 인해 신분을 감추고 생활하면서 사역해야 하는 어려움이 늘 있었다. 수시로 소환하는 공안, 해마다 반복되는 비자 갱신과 비자 거절의 불안함, 강제 추방의 두려움이 상존하는 현지 생활에서 나는 과도한 긴장을 하였다.

이질적인 문화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많았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선교 초기에 언어를 배우면서 겪었던 스트레스는 미각을 잃어버릴 정도로 심각한 일이었다. 또한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문화장벽이 많았다. 의식주의 문제 뿐만 아니라 인사 예절, 교통 체계, 이웃들과의 소통 등 수 천 수 만의 문화적 차이를 매일 만나면서 현지에서의 생활이 스트레스 아닌 스트레스가 되어 버렸다. 그런가 하면 고국에서 자연스럽게 향유해 온 문화와는 완전히 절연되어 가끔씩 상실한 문화에 대한 애수에 젖는다. 아내는 선교사들 사이에 공유되는 한국 드라마 비디오를 보다가 주인공이 초코파이와 우유를 건네는 장면을 보다가 그걸 먹고 싶어 울고 또 울곤 했다.

이웃들에게 선뜻 행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현지 문화의 무거운 분위기도 있다. 십 년이나 지나 이웃 사촌이 될 만도 했지만 경미한 자동차 접촉 사고만 있어도 으레 현지인들 편에 서는 이웃 사람들을 보며 나는 현지에서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낯설음을 만나기도 한다. 이렇듯 새로운 문화의 현지 생활은 우리를 계속해서 비상사태 상황에 살도록 긴장을 유발했다.

그러기에 같은 나라 사람들을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현지 선교사회에서 마음을 풀어놓고 이야기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나보다 10년이나 먼저 온 선배 선교사는 우리의 고충과 어려움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였다. 선배 선교사들은 현지 문화와 생활을 훨씬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우리보다 늦게 온 초임 선교사들은 선배 선교사의 사역에 소속되어 비자를 받기 위해서 선배 선교사의 눈치를 계속해서 보아야 했다.

선교사회에는 위계적 질서가 있었고 소위 라인이 존재했기에 선교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절한 라인에 줄을 서야 했다. 선교사들간의 사역 영역 혼란으로 경쟁심이 가열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으며 심지어는 전화나 편지, 투서를 동료 선교사의 후원교회에 보내 음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가끔씩은 동료와의 문제에 시간 낭비하는 것은 아까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국 사람들 만나는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였다.

탈진으로 내몰리는 선교사의 삶

나를 선교사로 파송해 준 후원교회에 대한 아쉬움과 고통도 많았다. 후원교회는 선교를 잘 안다고 착각하는 듯했다. 현지와의 소통도 없이 교회가 예산을 줄테니 70주년 기념 교회를 지으라는 것이다. 이 나라는 창의적 접근 지역이고 현지 교단과의 협력 선교도 여의치 않아 교회를 짓는 것이 상당히 난감할 때도 있다. 그러나 교회는 막무가내다. 어느 원로 장로님이 금혼식 기념 감사로 지정헌금을 하였기에 반드시 이 지역에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나에게 왜 센터를 짓고 결과물을 보이는 선교를 하지 않느냐고 다그친다. 창의적 접근 국가에서의 창의적 선교 상황을 매년 교회에 보고하고 설명하였으나 선교부장이 바뀌면 다시 외적 선교로 쉽게 돌아가 버린다. 후원교회의 선교에 대한 몰이해로 이제는 피곤함을 넘어 바닥까지 소진되어 버린다. 이미 두 번 선교사 사표를 낸 적이 있을 정도로 후원교회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는 크다. 그나마 내가 겪는 상황이 덜 폭력적이라는 건 이웃 지역의 동료 선교사가 후원교회의 일방적인 선교 후원 단절로 그 자녀들이 휴학할 수밖에 없는 경우를 볼 때다. 친구 선교사는 단체 이메일로 수십 명 선교사에게 똑같이 전해진 그 소식을 듣고 망망대해에서 손으로 노를 저어가는 심정이라 넋두리한다.

아내를 혼자 두고 멀리까지 선교 사역을 하느라 가정을 챙기지 못한 기억도 가슴에 아린다. 심야에도 군화발로 방에 들어와 수색하는 공안들이 남편의 부재 중에 또 오지 않을까 긴장하고 불안해하던 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내는 가끔씩 불안 증세를 보인다. 아이들은 어렸을 적부터 현지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여 불안과 우울 증세를 보이곤 했다. 현지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기도 했고 그런 자녀들이 점점 크면서 일 중심적인 선교사들인 부모에 실망하며 마음의 문을 닫기 일쑤였다. 후배 선교사 가정은 초등학교 자녀들을 현지에서 교육할 수 없으니 한국에 보내 조부모가 키우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단다. 외부의 힘에 의해 아이와 떨어지는 결정을 해야 하는 선교사에게 선교가 자식을 버릴 정도의 일인가 하며 자식과 견줄 가치를 찾지 못하여 선교를 포기할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보여 마음이 더 무겁다. 선교지에서 가족은 힘이 되기도 하지만 아픈 상처가 되기도 하는 듯하다.

내가 진행하고 있는 사역도 만만치 않다. 내가 사역하는 봉사현장은 농촌 시골이고 빈곤한 지역이어서 현지인들은 나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감당이 안 되는 현지의 많은 요구가 큰 부담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어떨 때는 지원하고도 모욕감을 느낄 때가 있다. 자기네들끼리 현지어로 말하며 나를 힐끗 보고는 낄낄대는 모습을 볼 때는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현지에서 내가 조작당한다는 느낌이다. 현지인의 딱한 사정을 듣고 도와 주었는데 이제는 자녀 장학금 뿐만 아니라 생활비도 내놓으라는 요구에 화가 나고 실망하여 돕고 싶은 마음이 꽉 닫혀버리기도 한다.

선교 협력하는 현지 교회는 나를 돈 가져오는 기계로 보는 듯할 때도 있다. 현지 동역자와의 갈등으로 큰 심적인 고통을 당한 적도 있다. 한국인 선교사와 동역하는 현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그런 부류라고 생각하며 비난의 화살을 계속해서 쏘아댄다. 이러한 비난에 대한 배신감으로 나는 4개월간 잠을 못 잔 적도 있었는데, 새벽녘에야 잠을 이루었지만 꿈에도 현지 동역자가 나타나서 나를 괴롭혔던 시기이다. 그러다 보니 현지 동역자에 대한 미움이 생겼고 동역자의 아이들까지도 미워지게 되었다.

가장 어려울 때 그래도 나를 격려해주고 위로해주던 대상은 아내였는데 아내와의 관계도 살얼음판이다. 나는 현지 사역하느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데 아내는 나의 부재 시에 자기가 얼마나 불안한지 이해하지 못한다며 서러워하고 사랑받지 못한다는 마음에 괴롭다고 한다. 게다가 내가 하고 있는 사역에 복음의 정수가 빠져 있는 것 같다고 하며 힘들게 봉사 사역하고 돌아온 나에게 차갑게 핀잔을 준다. 선교지에서는 친구와 친지와의 교류 없이 부부끼리 24시간 같이 살아야 하는 현실이기에 부부 갈등이 생기면 해결할 창구가 없이 연약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삶의 자리이다.

예측이 안 되는 현지 생활은 부부의 갈등을 더 깊게 팬다. 아내는 신체 호르몬의 변화를 경험하는 갱년기 증상에 나에 대한 억울함이 증폭되는 형국이다. 부부 갈등이 막장까지 간 경우에는 3일 동안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말다툼한 경우도 있다. 선교 현지에서 민낯으로 만나는 부부의 갈등은 사역으로 지치고 현지인들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 받은 상황에서 소진으로 내몰아 가는 카운터펀치가 되어버린다.

회복으로 향하는 한 걸음

소진은 밖에서부터 허물어지는 경우가 많다. 무의식적으로 받는 현지의 스트레스와 안식년이 불가능할 정도의 바쁜 사역 일정, 역량을 넘어서는 사역량의 부담이 강도 높게 내리 누른다. 만성적인 귀차니즘과 함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삐딱하게 받아들이고 뾰족하게 반응하게 된다. 스트레스 상황을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스트레스가 넘치면 타인들이 먼저 인식하게 된다. 소진은 몸으로 반응하여 신체화되며 그럼으로써 기쁨이 없는 의무감만 남은 것 같아 내 존재가 한 순간에 허물어져 버린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기력함을 절감하며 가슴에 칼이 꽂힌 듯한 통증을 느끼기도 하고, 타인을 향한 분노와 증오가 자주 일어나며 하나님의 침묵에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영적인 노력으로 내가 소진되었음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더욱 곪아버린 내면의 상처를 부둥켜 안고 기도하지만 그냥 앉아 있을 뿐 기도의 언어를 잃어버렸다. 심리적인 문제를 도외시하고 영적인 문제로만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에 해결은 더욱 힘들어지고, 자책감이 나를 향해 계속 화살을 쏘아댈 뿐이다. 나는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져 버린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바닥에 널부러진 나를 건드린다. 마치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손을 내밀어 주신 듯한 느낌이다. 불이 다 꺼져버려 재만 남은 내 존재의 모닥불을 하나님이 뒤적거려 재 속에서 알불을 찾아 내 얼굴 앞에 놓으신다. 문득 회복되고자 하는 열망이 일어났다. 전에 느끼지 못했던 하나님에 대한 친밀감. 모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깨달으면서 나는 소진의 구렁에서 기다시피 해서 겨우 빠져 나온다.

소진의 밑바닥에서 한 걸음 한 걸음 회복으로 향하는 길을 걸어간다. 다시 사랑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현지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주셨다. 다시 사랑의 은사를 간구하게 되었다. 배신당했던 현지 사역자와의 갈등을 회복하고는 동역자를 다시 형제로 받아들였다. 현지인들의 감사를 마음 그대로 받아들이고 현지 교회가 보여주는 열정과 성장에 다시 힘이 났다. 내가 가진 것을 더 주고픈 마음이 생기면서 현지 사람들에게 관심이 쏠렸다.

어려움을 돌아봐 주는 형제가족의 손길과 힘든 시간 동안에 손을 놓지 않았던 가족들이 다시 힘이 되어 주었다. 물질 지원 뿐만 아니라 심리적이고 영적인 차원의 기도 지원, 선교사 자랑을 해주는 후원교회는 현장의 결정을 점점 더 존중함으로써 나의 선교적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마음 통하는 동료 선교사들은 독서 모임과 친구 관계 맺기를 통해서 나에게 든든한 지지자 역할이 되어 주었다. 전문적인 상담 지원으로 심리적 소진을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고민과 소진을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은 증인 레질리언스를 고양시켜 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친 나의 마음을 클릭해 주셨음에 감사한다. 말씀이 깨달아지는 순간에 회복이 시작되었다. 답답한 마음에 그냥 하나님 앞에 앉아 있으며 눈물만이 내 기도의 언어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만져주셨다. 영적 회복이 육신의 건강으로 이어지고 심리적 호전이 신체의 건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한 몸의 건강이 지속가능한 건강한 선교를 보장하기도 했다. 이제는 아침의 여유를 감사하고 만끽하며 인간 관계에서의 여유가 외부적 요인에 흔들리지 않는 완충 공간의 역할을 한다.

창의적 접근 국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빵에 녹여 봉사하고 섬기는 것이 그 자체로 선교 사역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하면서, 회복 후에 사역을 더 힘차게 하고 있다. 외적인 건물보다는 내면적인 측면에 치중하며 현장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며 주체적인 사역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성장하는 사역과 어려움을 상쇄하는 현지 사역의 보람을 누리며 이 맛으로 선교한다는 자부심까지 생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 회복탄력성의 지렛대는 부부의 지지이다. 힘든 세월을 버텨준 아내, 외부적인 어려움에 같이 대응함으로 서로가 기댈 언덕이 되어 준 부부간에 상대방을 향한 존중에서 시작하여 지켜지는 아름다운 거리(距離)는 서로의 기도 조언에 순종하는 영적인 승화로 이어졌다.

소진은 암흑의 고통이지만 또한 어두운 밤이 축복이 되었으니, 소진 후 성장이 그것이다. 소진의 비가 온 뒤 더 단단해졌고 소진 후 사역의 시야가 더 넓어졌으며 현지를 더 깊이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는 소진을 마냥 피하지 않고, 큰 산을 넘은 경험으로 작은 산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게 된다. 소진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며 하나님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회복된 상태에서 소진의 의미를 보았으므로 회복된 나에게 소진은 복된 과정이었다고 고백한다. 소진의 경험을 통해 나는 소진의 자리를 박차며, 떠나고, 잊고, 쉴 용기가 생겼다.

인내가 나의 강점이 되었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할 자존감을 진작하게 되었다. 하나님 안에서 나를 바라보며 성찰을 돕는 손길들을 통해서 나를 나로 성찰해 가고 있다. 순종 안에서 자유로움을 향유하며 하나님과 현지인들에 대한 사랑이 커질수록 내 안에 힘이 생겼다. 작은 실패를 경험해도 여유로운 마음이 실패를 현실에 대한 넓은 안목을 주는 배움의 터로 만들어 주었다. 나를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시켜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선교에 사용되는 지우개로 쓰여짐에 또한 감사한다. 바닥에서 다시 경험한 정체성의 변화를 경험하며 외롭지만 행복한 선교 현장에서 예수 믿는 배짱으로 살아가며 선택 받은 선교사의 정체성을 오늘도 새롭게 다진다. 주님, 나는 선교사입니다.” (주1)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말씀으로 회복되는 선교현장

필자는 선교사들이 소진의 과정 속에서 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할 때 선교사는 반드시 중도 탈락, 혹은 영적으로 중도 탈락을 하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 확신한다. 선교사의 삶에 있어서 소진은 누구나 경험하게 된다. 육체적 소진, 영적 소진, 정신적 소진 속에서 탈진하게 되는데, 이러한 선교사의 삶을 선교사 스스로 극복해 가기에는 한계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탈진의 최저점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한국 교회는 소진을 경험하고 있는 선교사를 어떻게 케어해야 할 것인가를 깊이있게 연구하고 선교사 돌봄을 직접적으로 실천하는 단계의 선교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선교사의 몸값은 세상의 어떠한 화폐로도 평가할 수 없을 만큼 높아야 한다. 선교사들은 잃어버리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이다. 한 명의 선교사를 위해서 중보 기도한 기도의 분량과 더 나아가 선교사 자신이 헌신적으로 몸바쳐 습득한 선교적 자원들이 선교사의 중도탈락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기 전에 그들을 책임지고 집중 케어를 해야 할 것이다. 소진을 경험한 선교사가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이 존재하기에, 그들을 위해 끊임없는 돌봄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주님도 승천하시기 전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가 탈진과 소진의 최저점에 있을 때 그를 부르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3번 물으시면서 그를 회복시키시는 모습은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는 교회가 선교사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마음을 느끼게 해 준다. 요한복음 21장에 주님이 베드로에게 질문하시기 전의 상황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던 그 당시의 장면을 연상케하는 장면이 있다. 그 곳에는 숯불(요21:9/ 막14:67 베드로가 불 쬐고)이 있었고, 예수님께서 3번 질문을 하심으로 인해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것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와같이 함으로 인해 베드로가 가지고 있었던 그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해 주시고, 그를 새롭게 회복시켜 주심을 보게 된다. 주님이 명하신 위대한 대위임령을 한국 교회가 실천하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몸소 실천하신 돌봄을 구체적으로 행할 때 온전한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할 수 있다고 본다.<끝> [선교타임스=복음기도신문]


(주1) [안홍철, “선교사의 소진과 회복탄력성에 대한 선교신학적 연구,” 미간행 철학박사학위논문, 주안대학원대학교, 157-163.]

김종성 교수(주안대학원대학교 선교학)

선교사의 삶 속에서 소진과 회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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