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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 칼럼] 율법으로냐? 믿음으로냐?

ⓒ 안호성

믿음 생활을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친다고 말씀합니다. 복음을 만나 성령으로 시작된 삶이 육체로 마치는 인생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과 계속 동행할 수 있고,기어이 성령으로 마치는 인생이 될 수 있을까요?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2-3)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고 고백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제로는 성령과 동행하지 않고 육체로 마치는 삶이 많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하고 묻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살면 육체로 마치고, 믿음으로 살면 성령으로 마치게 됩니다. 그럼 먼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나는 율법의 행위로 사는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성령으로 사는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가?

성도는 예수님의 모든 동선을 그대로 따라가는 사람

율법을 실천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의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은 우상입니다. 사탄의 전략이기도 합니다. 율법주의가 육체로 마치게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께 갈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행위를 열심히 해도 구원 받지 못합니다. 우리의 행위로는 하나님께 이를 수 없습니다. 율법주의는 행위에 초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행동하기 전에 우리 마음이 먼저 주님께 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어디까지 따라갑니까? 예수님의 공생애와 십자가까지만 따라갑니까? 아닙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까지 가신 예수님의 동선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따라갈 수 있습니까? 우리 행동으로는 하나님 보좌 우편까지 가지 못 합니다. 마음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행동보다 마음이 먼저입 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라고 합니다.

모든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또 찾아야 하는데, 우리 마음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가득합니다. ‘헌신을 말하면 나로부터 비롯된 힘과 에너지로 봉사하고 사랑으로 행동하는 이미지를 떠을립니다. 성경에 헌신의 내용은 많이 나오지만, ‘헌신’이라는 단어 자체는 네 번 나옵니다. 한 번은 ‘마레’(출 32:29), 세 번은 ‘네다바(삿 5:2, 9/ 시 110:3)를 옮긴 것입니다. 두 단어 모두 하나님을 우리 마음에 채운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마음에 가득 채워 주님을 기뻐하고, 주님을 즐거이 따르는 것이 헌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리더십이 없습니다. 리더십을 발휘하면 분열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리더십 대신 로드십을 세웁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일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로드십에게 어떤 가이드라인을 주었을 때 로드십이 이 가이드라인을 따르다가 더 효율적인 듯한 방법으로 어떤 일을 그냥 해버렸습니다. 일을 하고 보니까, 꼭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꼭 옳다고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드십이 목사님을 의식해 행동을 수정한다면, 그것이 바로 율법주의 입니다. 믿음은 행동을 수정하기 전에 마음을 수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행동하기 전에 마음을 주님께 먼저 쓰는 것입니다.

리더십 대신 로드십으로, 주님의 마음으로 일하라

크리스천이 도둑질하면 마음에 울렁거리는 통증을 느낄 것입 니다. 죄의식이나 죄책감도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덤덤해질 수 있지만 도둑질하고 난 뒤의 마음은 시끄러울 것입니다. 그때 도둑질하면 안 되니까, 더 이상 도둑질하지 않겠다고 입술로 회개하고, 도둑질하지 않는 것에 힘을 쓴다면 그것이 율법주의입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무엇을 탐하는 마음부터 수정합니다. 우리는 돈과 권력과 사람을 탐합니다. 성적인 문제는 사람을 탐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관계를 탐하기에 파벌주의가 생깁니다. 신앙은 탐하는 마음을 먼저 돌이키는 것입니다. 마음을 어디에 두고 싶은지 알아야 합니다. 마음을 어디에 쓰고 싶은지 알아야 합니다. 마음에 무엇을 담고 싶은지 아셔야 합니다. 생명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선한 일을 하고 착하게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하고 착한 것을 찾다가 마음이 병듭니다. 마음을 어디에 쓰는지도 알아야 하지만, 마음에 무엇을 담고 싶어 하는지도 깨달아야 합니다. 돈, 가족, 레저, 즐거움이나 쾌락, 명예 등 우리가 담고 싶어 하는 것들입니다. 율법적으로 착해지고, 선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마음이 하나님께 먼저 가 있는 것이 중요 합니다. 율법주의와 믿음의 극명한 차이는 마음입니다. 믿음은 먼저 하나님께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 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 3:1)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어리석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아노에토스’입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저는 때로 제 마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 24시간 온전히 마음을 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나를 볼 때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 성도들의 뒷모습을 볼 때 괴롭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뜻이 잘 홀러가지 않는 것 같아서 괴롭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을 통해 영광 받기 원하시는데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 절망적입니다. 생명이 흘러가지 않는 것 같아서 절망적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소우주입니다. 육체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생각과 마음은 소우주입니다. 마음에는 무엇이든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한 번 틀어지면 다른 것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한 번 틀어지면 얼음보다 더 차가워질 수 있는 것이 마음입니다. 소우주와 같은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에 돈을 담고 자녀를 담고 은밀한 쾌락을 담고 있습니다. 원망과 미움과 고집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반하는 것입니다. 소우주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이 채워진다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것이 보이지 않느냐고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든 안 믿든, 예수님께서 이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 사실이 믿음으로 다가오면 일회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신앙의 사건이 됩니다. 이천 년 전 예수님이 돌아가신 일이 신앙의 사건이 되면 주님은 오늘 우리의 현실이 됩니다. 지금 있는 곳에서 나를 위해 돌아가신 십자가 예수님이 선명해집니다. 이것이 보이지 않으면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마음에 다른 것을 채우며 삽니다.

이천 년 전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 죄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죄를 왜 지었습니까? 불순종 때문입니다. 우리의 불순종으로 죄가 들어왔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은 불순종으로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악과를 따 먹은 죄의 결과를 해소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원죄가 없으면 십자가도 없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우리는 눈이 밝아져 선과 악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선과 악을 분별하는 능력이 죄라고 말합니다. 그럼 선악도 모르고 어떻게 사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 해 보십시오. 에덴에서는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으로만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기쁨이었습니다. 선악을 알고 난 뒤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하나님 없이도 기쁜 것이 많아졌습니다. 돈이 좋습니까, 싫습니까? 다 좋다고 합니다. 누가 돈이 좋다고 했습니까? 사탄이 준 꾐입니다. ‘돈이 있어야 기쁘지, 돈이 힘이야!’ 바로 그것이 세상의 가치입니다. 돈이 있어야 기쁘다고 하니까 돈이 우리 마음에 들어옵니다. 돈이 마음에 자리 잡으니 우리는 돈을 향해 달려갑니다. 돈을 더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돈이 잘 안 벌립니다. 그러면 합법적인 도둑질을 해서라도 돈을 취하고 싶어 합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마음에 먼저 들어옵니다. 마음에 그것이 들어오면 마음에 착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려고 달려갑니다. 선악과를 먹었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내 마음에 있는 그것을 떼어내고,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선악을 구별하지 않고 주님께 마음 붙이기 위해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마음에 달라붙어 있는 세상의 것들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입니다.

지금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크리스천들의 삶의 패턴은 어떻습니까? 살아가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가족, 건강, 자녀, 승진, 취업, 사업! 어디에서 문제가 생기면 크리스천은 삼가 스스로 정돈 합니다.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주님께 나와 열심히 기도합니다. 거룩을 쌓습니다. 다시 시작한 사업이 잘 되고, 자녀 취업도 잘 되고, 가족이 행복할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문제 해결 때문입니다. 이것이 율법주의입니다. 하나님이 목적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율법주의입니다.

여러분도 자녀들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으십니까? 자녀들을 마음에서 떼어낼 때 실제로 아픕니다. 그러나 마음에 붙어 있는 것을 떼어내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때 전능자의 손길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먼저라고 주님을 앞세우니 마음에서 자녀를 떼어낼 때의 아픔도 평강으로 바뀌는 놀라운 역사를 행하십니다. 그리고 자녀를 예전보다 더 사랑하게 됩니다 내가 볼 때 선하고 옳은 것에 열심을 내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 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갈 3:4-5)

어리석게 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육체로 마치려는 성향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세상의 가치,세상을 이끌어가는 힘에 마음이 달라붙어 있는 것을 깨닫고 돌이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과 사귀면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 “주님! 저는 주님만 생각하고 싶은데 간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저는 주님께 마음 쓰고 싶은데, 저 사람만 보면 마음이 흐트러져요!” 모두 주님과 사귀는 과정입니다. 그럼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주님께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단련시키고 성장시키십니다.

이 일을 했고, 저 일을 이루었다는 것, 아무 의미 없습니다. 매사 부족한 것을 통해서도 우리를 바꾸시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소우주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통해 영광 받으십니다. 40대가 넘어가면 세상 이치를 깨닫게 되지 않습니까? 세상의 기쁨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 아시지 않습니까? 영원하신 주님께 마음이 가 있어, 스스로 웅덩이를 파지 않고, 생수의 근원 되시는 주님께 마음 붙이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믿음은 행동 이전에 마음을 주님께 두는 것

주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외식(外飾)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1차적인 뜻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선한 것이라도 마음이 거기에 다 달라붙어 있어서 열심을 낸다면 ‘외식’입니다. 율법주의는 율법을 실천하는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행동 이전에 마음을 주님께 두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주셨으니, 십자가에서 함께 죽어야 합니다. 주님만이 하실 수 있음을 고백하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제가 조금 해보니, 주님께서 힘을 주십니다. 과거의 이아침은 죽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과 함께 사는 이아침만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소우주의 고백을 보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 마음을 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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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 목사 | 하나님이보시기에참좋았더라교회 담임. 다음세대를 위해 토브원형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이 삶에서 믿음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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