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GTK 칼럼]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효과적인 기도

ⓒ unsplash

마틴 루터는 기도는 호흡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죽은 사람은 숨을 쉬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에게 호흡과 같은 기도를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죽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퇴보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기도를 소홀히 한 결과입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삶 속에서 어떤 급한 일이 있거나 모든 일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될 때 너무나 쉽게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합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종종 기도하고 싶은 느낌이 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분이 내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하고 싶은 느낌이 들지 않을 때가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라고 한 토레이의 말처럼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삶에서 필수적인 일이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 중요한 기도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그리고 바른 자세로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법을 배웠던 것과 같이 기도를 잘 배워야 합니다. 폴 밀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를 잘 배우면 세상이 우리 아버지의 세상임을 알게 됩니다. 만사가 내 아버지의 소관이기에 나는 구할 수 있고, 그분은 들으시고 행동하십니다. 내가 그분의 자녀이기에 변화가 가능한 것입니다. 희망이 태동합니다.” (폴 밀러의 일상 기도 중에서)

주기도문으로 널리 알려진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으로 예수님은 기도 방법을 묻는 제자들에게 기도의 모범으로 사용하도록 가르쳤습니다( 11:12; 마 6:9). 그러나 참된 의미의 주기도문은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주님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지상 사역을 마치시고 아버지께 드렸던 기도입니다. 저는 오늘 기도의 본이 되신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드린 요한복음 17장의 첫 구절과 성경에서 가르치는 여러 말씀들을 통해서 주님께 드리는 효과적인 기도에 대해서 워렌 워스비 목사님의 글을 중심으로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아버지께 드린 예수님의 기도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요 17:1)”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효과적인 기도는

1. 마음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주님은 지금 무릎을 꿇으셨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지금 눈을 들어 하나님을 우러러보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지만, 성경에는 그러한 모습으로 기도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실 구약 성경의 유대인들은 두 손을 하늘로 뻗어서 무엇인가 받을 것을 기대하며 두 손을 하늘로 펼치고 기도했습니다. (왕상 8:22; 느 8:6; 시 28:2; 딤전 2:8). 이 외에도 성경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기도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음의 자세입니다. 무릎을 꿇거나 손을 모으거나 손을 하늘로 펴서 드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 마음을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자세가 그 사람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몸의 자세가 아니라 마음의 자세입니다.

2.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의 성경적 패턴은 성령의 능력으로 아들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드리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말씀드리는 근거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자로 입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사람들이 아들에게 혹은 성령님께 기도하는 것을 듣습니다. 이것은 잘못 되었을까요? 스데반은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 쳤을 때 그는 하늘에서 예수님께 기도하기는 했지만 (행7:59), 성령께 드리는 기도는 찾을 수 없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우리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전달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모두 신격 안에 있으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세 분 하나님께 각각 전달할 수 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의 패턴은 우리가 아들의 이름과 영의 능력을 통해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유다서1장 20절은 “성령으로 기도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옳은 듯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 드리는 기도에 응답하십니다(요일 5:14, 15).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 수 있고(골 1 : 9, 10), 그 말씀은 성령님께서 깨우쳐 주십니다. (요 16:13, 14). 이렇듯 성경의 전체 맥락으로 성령님의 사역을 생각할 때 유다서에 성령으로 기도하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는 우리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신분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사실로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실 의무가 있으신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아버지와 교제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공유하는 것은 아버지의 기쁨이시라며 예수님은 “그러면 너희가 악하여 자녀에게 좋은 선물을 줄 줄 안다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들에게 선한 것을 얼마나 더 주시겠냐!” (마태복음 7:11)라 하셨습니다.

“나는 그냥 하나님의 마음을 그분께 기도로 드렸을 뿐이다. 그런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으실 그분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라고 한 폴 밀러의 말과 같이 아버지의 마음은 자신의 자식들을 사랑하시기에 그들과 좋은 것을 나누시기를 갈망하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뜻을 더 잘 알게 될수록 아버지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은 더욱더 쉬워질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통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흔히 하나님이 내 때에 내 방식대로 내 뜻을 이루어 주시지 않는다.”(폴 밀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목적은 하늘에서 사람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으로 기도하고 싶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그것은 우리 내면의 가장 높고 깊은 표현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뻐하고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한다면, 우리 자신 속에서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 변화는 너무나 복된 소망입니다. 왜냐하면 그 소망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자기 자신의 소망이 된다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 본이 되신 분은 물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 4:34)”

그러므로 기도는 한 마디로 단순히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가 준비하신 잔을 받을 때가 되었지만, 예수님은 두려워하시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주인을 보호하려 했지만,예수님은 그를 꾸짖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요 18:11).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면 그분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들이 빵을 구하면 돌을 주겠습니까? 물고기를 구하는데 뱀을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우리는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살전 5:17). 이 명령은 분명히 우리가 온종일 중얼거리며 기도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의미는 우리의 진정한 기도는 우리 마음의 소망으로 표현됩니다. 우리의 입술이 우리 마음이 원하는 것과 다른 기도들 한다면 이는 위선입니다. 그런 기도를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 우리 마음의 소망은 점점 더 경건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망은 주님께 끊임없이 올려지는 우리의 기도로 나타날 것입니다.

4.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속성이 아니라 그의 모든 속성의 속성입니다!

여러분은 아마 “주기도문”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염려를 우리의 염려보다 먼저 두도록 가르친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는 일용 할 양식, 용서, 죄로부터 보호와 같은 우리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기 전에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으로 할 때, 우리는 온전하게 우리의 필요를 올바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허락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땅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실 수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지 않으셨다면 오늘날 죄인들에게 구원은 없었을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시지 않았을 것이고, 교회도 없었을 것이며 신약 성경도 그리스도인의 삶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도로 영광을 받으실까? “ 우리는 기도할 때 이렇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까 하고 자문하는 것은 자신의 기도 온전함을 시험하고 자신의 기도가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지 아닌지를 감지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5. 믿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사람의 관점에서만 기도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제자들로 영광을 받으셨다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의 결과로 제자들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그들은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로 대부분 순교를 당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연약한 믿음을 아셨고 그들의 실패를 아셨지만, 믿음으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로 제자들은 과거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앞을 내다보셨다면 잡히시고, 유죄 판결을 받으시고,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을 미리 아셨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패배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그는 그것을 진정한 승리로 보았기에 큰 시련을 앞두시고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한복음 12:23)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믿음으로 기도할 때 신성한 관점에서 사물을 보기 시작하게 되고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들의 기도 생활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이러한 기본을 항상 생각하며 주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일로 우리의 기도가 본질을 벗어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엡6:6)”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끊임없이 매 순간 쉬지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기도 생활은 어떻습니까?

오늘의 이 글이 여러분의 기도 생활을 점검하는 기회가 되어 아버지께 드리는 여러분의 기도가 더욱 풍성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복음기도신문]

김상우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출처를 기재하고 사용하세요.> 제보 및 문의:

Print Friendly, PDF & Email

관련기사

20240518_OYC_image main
[오영철 칼럼] 가난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부유한 삶을 사는 사람들
20240418 Bible
[TGC 칼럼] 바울의 복음은 예수의 복음과 다르다?
20240518_WHJ_India4
[원정하 칼럼] 땅글 캄보디아, 경제적 자립 지부 선언하다
20240518_KJI_islam
[김종일 칼럼] 무슬림 복음 전도에서 ‘문화 변용’ 문제

최신기사

[오영철 칼럼] 가난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부유한 삶을 사는 사람들
국제기독간호사협회, 6월 스페인서 기독 간호사 및 조산사 세계대회 개최
[오늘의 한반도] 반동연·자유인권행동, 인권위 동성애 반대자 혐오세력 매도 중단 촉구 외 (5/21)
[오늘의 열방] 네덜란드, 정신 질환자 20대 여성 안락사 허용 논란 외 (5/21)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
[TGC 칼럼] 바울의 복음은 예수의 복음과 다르다?
[원정하 칼럼] 땅글 캄보디아, 경제적 자립 지부 선언하다
Search

실시간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