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선교완성을 위해 저에게도 할 일이 남겨져 있다는 것이 기뻐요”

주님 만날 그 날을 사모하는 이근희 전도사(수지선한목자교회)

이근희 전도사가 인터뷰 말미에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자신이 복음으로 살지 못했던 이유는 말씀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지금도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심오하고 신비로운 어떤 큰 능력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는 말씀과 기도라고 고백했다. 인생 끝자락에서 겨우 이것이 실제 되게 하셨지만 그래도 은혜라며, 주님 만나는 날에 불러드릴 찬양을 매일 연습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고백하는 이근희 전도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어떻게 주님을 만나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어요. 어머니께서 신앙의 첫 열매셨죠. 어머니가 2살 때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외할머니는 27살에 청상과부가 되셨어요. 홀로되신 외할머니는 긴 인생길을 이겨낼 힘을 절에서 얻으셨는지 절을 4개나 지으셨어요. 친가도 여승이 있을 만큼 양가가 불교에 대한 신앙이 강한 가운데 어머니께서 예수님을 믿으셨으니 핍박이 오죽했겠어요. 어려운 순간들을 기도로 사셨던 것 같아요.”

– 어머니가 홀로 믿음을 지키시기 힘드셨겠네요.

“어머니는 새벽 예배 갔다 오시면 늘 우리 머리맡에서 기도를 하셨어요. 그 기도소리에 시끄러워서 잠이 깼죠. 엄마는 남을 섬기는 일에 열심이셨고 구령의 열정이 대단하셨어요. 74세에 소천하셨는데, 소천하시는 저녁까지 노방전도를 하셨어요. 어머니께서는 예수 믿는 자는 바르게 살아야 된다고 자식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어요. 예의 없는 행동을 하면 책망이 대단했어요. 정직해야 되고, 기도해야 되고, 믿음 생활 잘 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어요. 이것이 어릴 때부터 저의 신앙관이 되었던 것 같아요.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좋다고 성경에 말씀하셨으니 무조건 믿고, 착하게 살자.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자. 절대 하나님을 욕 먹이지 않도록 착하게 살자. 남을 도와주고 져주면서 살자. 기도할 때도 다른 건 못 구했어요. 성경에 나온 대로 지혜를 달라고만 기도했어요.”

– 어머님의 신앙에 영향을 많이 받으셨군요.

“학교에 가면 무조건 성경 한 장씩 읽고 기도했어요. 그때는 그런 애들이 많았어요. 친구들과 점심시간에 모여서 기도하고, 신학기가 되면 교실을 찾아다니면서 전도했어요. 전도는 늘 제 머릿속에 있었어요. 군인과 결혼한 이후, 몇 년 밖에서 살다가 관사로 들어가서 생활했어요. 군 교회에 출석하게 되면서 사병들을 만나게 됐어요. 많은 사병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다 하나님을 예배하러 온 것은 아니었어요. 군인 신분이기에 이런 저런 이유로 출석하러 온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 젊은이들이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을 위한 군대가 일어날 것 같았어요.”

전도하는 학생, 열심있는 집사로신앙생활했으나…

– 일반인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교회 생활이네요. 사병들과 생활이 어떠셨어요?

“저희 같은 직업 군인들과 가족들은 민간교회를 다녀도 되지만, 전도하기 위해 군 교회를 섬겼어요. 교회에는 신우회가 있는데, 신우회를 통해 전도활동을 했어요. 부침개, 초코파이, 빵, 믹스 커피 등 형제들이 좋아하는 것을 준비해서 함께 예배를 드렸어요. 군인들은 전속이 잦은 편인데 가는 곳마다 그런 식으로 전도를 했어요. 신우회 형제들 중 어떤 사람들은 신학교에도 가고, 목사도 되고, 선교사가 되기도 했어요.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면 너무 뿌듯했어요. 그렇게 하늘나라 상급이 쌓일 것 같았어요.”

– 전도의 열매를 보셨으니 얼마나 기쁘셨겠어요. 군 생활 이후에는 어떻게 됐나요?

“1996년도에 남편이 전역을 하면서 사업을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겁이 났어요. 주는 건 자신 있는데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받는 게 자신이 없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사업은 IMF사태도 만나고 5년 만에 실패했어요. 그전까지 아이들 키울 걱정에 돈 걱정 하는 사람들을 볼 때, 정말 이해를 못했어요. ‘하루 세끼 먹고 살면 되지, 뭐 저렇게 돈돈돈 하나.’ 그런데 정작 제 손에 돈이 없어지니 모든 살 소망이 끊어진 사람처럼 되더군요. 그때 내가 교만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망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여겨졌어요. ‘하나님이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여태까지 하나님 위해서 살았고, 어린 사람 한 명에게도 발을 닦아주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하나님이 내게 이러실 수 있나.’ 하나님이 저를 버리셨다는 생각이 드니까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과 관계를 끊고 하나님과도 관계를 끊었어요. ‘난 하나님 모르는 사람입니다. 말도 걸지 마세요.’ 2년여 시간을 송장처럼 살면서 틈만 나면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나 좀 데리고 가달라고 졸랐어요.

▲ 2014년, 복음선교관학교 아웃리치로 떠난 조지아에서 팀원들과 함께. 제공: WMM

사업 실패… 망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여겨져

– 이렇게 큰 위기가 왔군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어요?

“남편이 전역할 무렵 사람들이 우리에게 예수 믿고 복 받은 사람이라고 했어요. 열심히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 같은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어려움을 겪으니 그 말이 가장 마음에 걸렸어요. 이제 예수 믿고 망한 사람이 됐는데, 어떻게 하실 거냐고 습관처럼 주님을 탓하던 어느 날, 주님이 갑자기 저를 툭 건드리시는 것 같았어요. ‘네가 나를 위해 뭘 했느냐? 다 네 의를 위해서 한 일들이지.’ 그동안 입이 굳어 기도도 못했는데, 그 말을 듣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어요. ‘제가 저를 위해서 했다고요?’ 이해가 안 됐어요. ‘제가 주의 이름을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했는데, 나를 위해서 한 거라고요.’ 그렇게 2~3시간을 울었던 것 같아요. 힘이 다해 털썩 주저 앉아 있는데, 주님이 다시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네 이름이 났잖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내 이름이 난 것은 맞았어요. 군 교회에서 이근희 집사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 주님이 그렇게 깨닫게 해주신 거였군요. 그 다음은 어떻게 됐어요?

“‘문제가 이거였나.’ 생각이 들면서 진리란 무엇일까 궁금해지고,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그때 목사님이 신학교를 추천해주셔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학교에서 알게 된 목사님 교회의 사역자로 섬기게 됐어요. 모든 일에 열심과 최선을 다했어요.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고, 어떤 주어진 규칙이나 교회의 뜻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께 나의 전심을 드리는 것으로 생각하며 힘껏 교회를 섬겼어요.”

– 신학을 하시고 교회 사역을 하시면서 주님의 말씀에 대해 알게 되셨나요?

“교회 사역이 쉽지 않았어요. 사역이 바쁘기도 하고, 진리를 아는 일보다 저에게 실제 되지도 못한 진리를 교인들에게 선포해야 하는 일이 더 많았어요. 그래서 더 하나님을 알고 싶은 목마름이 깊어졌어요. 한번은 여름에 대학생 선교대회가 우리 교회에서 열렸는데, 그때 강사로 오신 김용의 선교사님의 말씀을 듣고 가슴이 쿵쾅거렸어요. 말씀하시는 깊이는 다 이해 못하겠지만 ‘이거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선교사님의 메시지가 더 듣고 싶고, 말씀을 들으면 목마름이 해결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기도했는데 주님이 인도해주셨어요. 얼마 후 담임 목사님이 5박 6일 교역자 수련회를 가자고 하셨어요. 그게 김용의 선교사님이 섬기시는 복음학교였어요.”

– 그곳에서 목마름이 해결되셨나요?

“나에게 복음은 예수 잘 믿는 일이었어요. 구원은 당연히 따라오는 일이었죠. 예수 이름으로 착하게 살고, 바르게 행하면 상급이 쌓이는 것이고, 예수님 믿는다는 것은 횡재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복음학교에서 첫 번째 선포되는 말씀이 제가 존재적 죄인이라는 것이었어요. 물론 제가 죄인이라는 사실은 너무 잘 알고 인정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가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죽어야 할 만큼 내가 지은 큰 죄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드는 것이 문제였어요. 엄마 말을 안 듣고 동생하고 싸우고 시샘도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하죠. 그리스도인이니까요. 모든 죄를 조금씩 짓고 사는 것은 인정하지만 끝까진 가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예수님께서 저를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말이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었다는 건 인정하고 믿어야 되니까 믿는 것이지, 나에게 실제는 아니었던 것이죠. 그래서 복음학교에서 들었던 존재적 죄인이라는 말이 그 어떤 것보다 충격이었어요.”

말씀이 비추이자 존재적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돼

– 자신이 존재적 죄인이라는 질문이 어떻게 해결이 됐나요?

“제 존재가 얼마나 비참한 죄인인지 복음의 진리에 나를 비추어 글을 작성해 나가면서 보게 됐어요. 말씀이 제 안을 비추이자 그제야 제 안에 있는 죄의 뿌리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죄를 짓지 않으려고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돌아보면 죄의 열매가 맺혔던 이유가 있었어요. 죄의 싹이 나올 때마다 끊어내도 또 나오고, 또 나오고, 내 안에 죄의 씨가 있었어요. 이 씨가 박혀 있는 게 존재적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듣게 되니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이 저에게 실제가 되고,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예수생명으로 살아난다는 말씀이 실제가 됐어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사망의 문이 박살이 났구나. 사망이 주님을 가둘 힘이 없구나.’ 이것을 알게 된 것이 저에게 참으로 복된 소식이었어요. 나를 가둘 사망의 문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을 때,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것 같은 제 마음에 주님이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주님이 제게 새로운 천지창조를 행하실 것 같은 기대가 생겼어요.”

<이상 253호에 게재>

▲ 아웃리치로 떠난 조지아에서 팀원들과 함께 기도하는 이근희 전도사. 제공: WMM

– 십자가의 진리를 명확하게 깨닫게 해주셨군요. 복음을 깨달은 이후의 삶이 궁금해요.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하면서, 내가 잘하고 있나, 못하고 있나, 내가 잘못해서 주님 욕 먹이는 거 아닌가 하며 불안하게 믿음 생활하던 저에게 복음은 큰 기쁨이었어요.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이 예수만 믿으면 되겠구나. 그런데 기쁨도 잠시, 사역에 바빴죠. 복음에 비추임을 받았으면서도 진리로 결론 내는 씨름의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사역에만 흠뻑 빠져있던 저에게 둘째 아이를 낳은 아들이 도움을 요청해 경기도로 올라오게 됐어요. 그게 2011년이었는데, 분당에 잇는 교회에서도 1년 사역을 하다가 완전히 사역을 내려놓게 됐어요. 그때부터 주님은 저의 진짜 모습을 보게 하셨어요.”

– 진짜모습이요?

“주님께서 순간순간마다 저에게 복음이 실제냐고 물으시는 것 같았어요. 모든 걸 참고, 용납하고, 예수님 때문에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갖추고 있다고 스스롤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들네와 살면서 제 자신에게 충격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어요. ‘나한테 이런 모습이 있었어?’ 성질도 못 참고, 남을 잘 용납도 못하는 저를 발견한 것이죠. 손녀들을 돌보면서 기도24·365 시간도 못 지키니까 마음 매우 곤고했어요. 정죄감과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복음을 안다면서 왜 이것밖에 안 되지? 복음을 안다고 하면서 왜 이런 언행을 할까?’ 성질을 내고 있으면서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더군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고 했던 바울의 고백이 매순간 터져 나왔어요.”

– 삶에서 죄인의 모습을 보게 되신 거네요.

“그때서야 자기의에 취한 자가 바로 저라는 사실이 깨달아졌어요. 그렇게 복음이 나에게 실제가 되지 못하고, 믿음과는 결부가 안 되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살고 싶어서 선교 훈련을 받기로 했어요. 복음을 들을 때는 울고불고 하며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이거구나 깨닫다가도 다시 되돌아가고, 또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다가 또 되돌아가고, 훈련 받으러 가면 살겠는데 오면 죽겠는 삶을 2년 동안 살았어요. 훈련을 받을 땐 아침에 묵상한 말씀이 저녁에 어떻게 성취됐는지 보이니까 너무 좋은데, 집에서는 그게 안 되고 몇 년 오락가락 하다가 병이 났어요. 대상포진에 디스크, 교통사고, 다리골절에 항생제를 먹으니까 위에도 병이 생겨 밥을 못 먹었어요.”

– 이번엔 좀 다른 위기가 찾아오신 것 같아요.

“이후에도 여러 질병에 시달리면서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제가 정말 믿음이 없는 자라는 사실을 더욱 깨닫게 됐어요. 기도하면서 회개하게 하시고, 건강도 영혼도 조금씩 회복되고 있던 차에 코로나가 터졌어요.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게 뭘까 기도하다가 아픈 시간 동안 주님이 내 신음소리에도 응답해주시고 말씀해주셨던 게 생각이 나면서 나에게 여기가 기도할 곳이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그러고 보니 그동안 기도해왔던 게 생각이 났어요. 차별금지법 문제와 동성애 문제들이 어느새 학교 공교육까지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큰일났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우리 다음세대가 다 죽게 생겼네. 주님한테 살려달라고 내가 기도해야 아이들이 살겠구나 생각했어요. 코로나로 아이들이 집에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에 더욱 기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어요. ”

– 코로나에 오히려 기도를 하게 하셨군요. 요즘엔 어떻게 지내세요?

“최근 조직검사를 하는 일이 있었어요.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고 만약에 안좋은 일이 생기면 어떻게 기도부탁을 해야할까 생각하다가 어머님께서 죽음을 준비하시던 기도가 생각났어요. 어머니는 자녀들이 힘들지 않도록 오래 끌지 않고 잠을 자다가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는데, 그렇게 갑자기 소천하셨어요. 어머니는 마지막 날까지 전도하시다가 저녁에 주님 품에 안기셨어요. 저도 이제 그렇게 기도할 때가 되었구나 생각했어요. 그러다 온라인으로 열리는 신앙훈련에 참여하다가 요한계시록을 보게 됐는데, 순교가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의 방법인거예요.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게 순교였어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해왔는데, 순교야말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현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순교는 늙은이도 할 수 있잖아요.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위해 저에게도 할 일이 남겨져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 순교를 이렇게 기쁘게 받으시다니요. 주님이 보여주신 영광이 놀랍네요. 마지막으로 기도제목 나눠주세요.

“그동안 믿는다고 말하면서 69년을 내 마음대로 열심히 살아왔어요. 그러나 주님은 저에게서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으시고 함께 하셨어요. 넘어질 때마다 일으켜주시는 시간을 통해 일어서나 넘어지나 모든 순간이 은혜였음을 깨닫게 됐어요. 주님이 저 하나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의 증인들을 셀 수 없이 보내주셨어요. 그래서 저도 주님의 마음을 흘려보내는 통로로 서고 싶어요. 마지막 때 추수할 일꾼으로 순종하여 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 순간이 주님의 영광에 싸여 천국에 입성하게 되면 영광 중의 영광이겠죠.” [복음기도신문]

Y.K.

▲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제공: 이근희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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