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GTK 칼럼]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 안호성

이 제목은 아마 많은 분이 아실 찬양의 제목에서 가져왔습니다. 성경에서 ‘고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예수님을 제외한다면 아마 욥일 것입니다. 욥의 이야기는 교회를 어느 정도 다닌 사람이라면 모르기 힘들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욥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 욥기를 읽다가 몇 장 읽지 못하고 포기했던 기억도 있고, 정말 오기로 끝까지 읽었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처음 두 장은 정말 감동적이고 도전적이기도 했지만, 3장에서 욥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면서 시작되는 친구들과의 긴 논쟁은 처음에는 당황스러웠고 다음에는 지루했습니다. 도대체 뭐가 다른지도 잘 모르겠는 이런 말들을 왜 이렇게 늘어놓는 것인지, 특히나 1-2장에서 그렇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던 욥은 왜 친구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인지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해가 힘들었던 것은, (약간은 불경스럽게 들릴 수 있지만) 마지막에 나타나신 하나님도 그동안의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욥기를 읽는 사람들은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입니다. 친구들과의 긴 논쟁에 지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명확하게 밝혀 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됩니다. 왜 욥이 고난을 받았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해답을 원하는 것이죠.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요.

욥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도리어 욥에게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욥 38:2-3)라고 하시면서 질문을 쏟아 내셨습니다. 질문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 세계에 대해 욥이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 베헤못과 리워야단이라는 두 짐승을 매우 비중 있게 언급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일련의 질문들을 통해 사람이 얼마나 작고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지를 욥이 분명히 깨닫게 하셨습니다.

욥이 궁금해했던 것, 욥의 친구들은 답을 안다고 확신했던 것, “왜 욥이 고난을 받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하나님은 직접적인 답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욥이 하나님을 바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난의 이유를 알고 싶은 것은 아마 그러면 상황을 이해할 수 있고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욥이 정말 그 이유를 알면 모든 고난이 사라지고 위로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첫째로 그 이유를 다 알 수 없습니다.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이유와 목적을 사람이 다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설령 그 일부를 이해했다고 해도 욥이 “그럼 제가 이런 고난을 받을 만 하군요”라고 인정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인정을 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모든 고통을 잊고 위로를 받게 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즉, “고난의 이유”를 아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바로 보는 것이었고, 하나님은 욥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그 누구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지혜로우십니다. 공의로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다스리십니다. 그 어떤 일도 하나님께 있어 “뜻밖에”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우연도 없고 억울한 일도 없습니다.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 하는 일이 있을 뿐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일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의 이 고백이 참 중요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아마 욥은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선명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하셨든 말씀이 새로운 계시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그 말씀이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던 욥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욥은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 42:6)

욥은 욥기 2장 8절부터 티끌과 재 가운데 있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슬퍼했고 억울해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을 공격하고 계시는 것처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욥은 회개합니다. 여기서 “회개하다”라는 단어의 의미가 흥미롭습니다. 이 같은 단어가 2:11에서는 욥의 친구들에게 사용되어서 “위로하다”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러 왔지만 입을 열자 계속해서 회개하라고만 했었습니다. 여기서 욥은 마침내 회개하였고 그것이 욥에게는 참된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그렇게 많은 말을 했지만 결코 욥을 위로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그 많은 말은 결국 참되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욥을 이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욥을 정죄하면서 욥이 더 자기 방어만 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욥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욥은 자신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위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난 중에 있을 때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고난 중에 있는 성도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위로도, 왜 그런 고난을 당하는지 이유를 찾아내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 근거 없이 ‘그냥 괜찮아’라고만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을 바르게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절대적인 주권자 하나님, 공의로우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물론 실제로 욥과 같은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그러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고난 중에는 우리의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괴롭지 않을 때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언제든 그렇게 하기를 훈련해야 합니다. 언제나 더 하나님을 알기 원하고 동행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눈으로 뵈옵는 삶이 우리의 삶이 된다면, 그 삶에 고난이 있든 평안이 있든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말하며 위로를 얻은 욥은 여전히 티끌과 재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의 자녀들이 부활하지도 않았고 그의 소유가 회복되지도 않았습니다. 고난 중에서 시야가 좁아지면 우리는 뭐든 상황이 달라져야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하지만 순서는 그 반대일 때가 훨씬 많습니다. 정말 그럴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은혜가 상황에 관계없이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난이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고 견고하게 하고 단련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고난 중에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때 그 모든 은혜가 우리를 찾아옵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괴롭지 않을 때도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은 그 얼굴의 빛을 비춰주실 것입니다. [복음기도신문]

최종혁 목사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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