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칼빈(John Calvin)은 창조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해서 극장 비유를 사용하길 즐겼는데, 그는 창조를 “하나님 영광의 극장”이라고 불렀다 ”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창조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노래한다. 창조의 모든 세부 사항은 아무리 숙련된 화가라도 차마 명함 조차 내밀 수 없는, 심오한 예술적 능력을 가진, 실로 뛰어난 예술가에 의해 설계되었다. 단 하나의 창조의 붓질도 의미없는 게 없다. 하늘을 뒤덮는 파란색과 흰색 레이어도 다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이다. 이슬을 머금은 풀에서 반짝이는 초록빛의 모든 색조에도 다 목적이 있다. 들판에 부는 바람에 휩쓸린 꽃이 만들어내는 모든 색조는 마치 잘 준비된 합창단의 솔로처럼 적재적소에 기막히게 배치되었다. 창조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으며, 그 이야기의 저자이자 그 이야기를 완벽하게 하는 존재는 바로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 자신이다. 그런데 창조는 도대체 무엇에 관한 노래인 것일까?
존 칼빈(John Calvin)은 창조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해서 극장 비유를 사용하길 즐겼는데, 그는 창조를 “하나님 영광의 극장”이라고 불렀다. 그 극장에서 하나님은 실로 위대한 예술 감독이고 상연되는 연극의 모든 장면은 하나같이 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는 다 주연 배우인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간을 통해서 역사 속에 들어온 하나님이라는 사건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해서 존재한다. 칼빈은 또한 창조를 하나님을 드러내는 “두 권의 책” 중의 한 권이라고 불렀다. 첫 번째 책이 바로 창조이다. 시편 19편 1절,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가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창조는 또한 능력있고 또 세밀한 묘사와 함께 하늘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가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온 세상을 창조했다는 진리를 선포하는 설교자라고도 말할 수 있다. 창조는 무작위한 우연에 의해서 어쩌다 생긴 게 아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알고 또한 그에 따라 모은 것을 다 설계한 하나님에 의해 의도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이 사실이 바로 히브리서 11장 3절의 저변에 깔린 의미(underlying point)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과 또한 그것도 눈에 보이는 뭔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의 말씀을 통해서 창조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어떤 작가가 표현했듯이, 하나님은 이 세상이 존재하도록 만드는 ‘설교’를 하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자 우주가 생겼다. 하나님이 생기라고 말하기 전까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뭔가가 존재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우주가 생겼고 그 우주는 생명으로 넘치게 되었다. 히브리서에 등장하는 이 창조 신학이 목회적으로 중요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모든 것을 창조하고 그분의 능력의 말씀으로 이 세상을 유지하는 바로 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속하신 분과 동일하다는 것을 밝혀준다. 히브리서 1장 1절에서 4절까지는 이 점을 보다 더 명확하게 알려준다. 예수님은 능력에 제한이 있는 구속자가 아니다. 영원한 아들인 그를 통해서 세상이 창조되었고 또 지금도 그로 인해서 이 세상이 유지되고 있다.
이렇게 능력있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는 모세 5경에서도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 이는 결코 시공간에 의해서 제약받지 않는다. 그의 능력은 이 세상 끝까지 미치는데, 그것은 그가 하늘과 땅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나오게 한 구원의 말씀은 다름 아니라 지금도 이 우주를 유지하고 있는 창조의 말씀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이집트나 가나안의 신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은 아무리 환경이 나빠지더라도 하나님을 또 그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신뢰할 수 있다. 바로 이것과 동일한 주제가 히브리서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교회는 어떤 상황을 만나더라도 모든 것을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손바닥 위에 놓고 유지하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신뢰하고 순종해야만 한다. 오늘이 여전히 ‘오늘’이라고 불리는 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야한다. 왜냐하면 그의 말씀은 처음 선포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내는 두 권의 책 중에서 첫 번째 책이 창조라고 말했다. 그러나 창조가 이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가르쳐주지만,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창조는 우리에게 구원의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는다. 아마도 그렇기에 창조에 관한 언급이 히브리서 11장 초반에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창조는 구원의 기반이 된다. 창조는 계시를 드러내는 첫 번째 책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담은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내는 ‘두 번째 책’이 된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죄로 인해 훼손된,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들을 구속하기 위해 피조물의 일부가 되었다고 믿는다.
히브리서의 내용은 처음 창조에서 새로운 창조로, 그림자에 불과한 옛 언약에서 더 큰 영광을 드러내는 새 언약으로, 첫 번째 안식일에서 이루어진 약속에서 영원한 안식일을 통해 성취된 약속에 이르기까지의 이동을 강조하고 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으로 ‘그들’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우리’가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저자는 단지 우리에게 믿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다. 그는 우리를 창조에서 시작하여 구원의 완성에 이르러서는 절정에 이르는, 믿음의 이야기로 초대하고 있다. 그리고 창조의 노래를 진정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의 귀뿐이다.
‘그들’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우리’가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저자는 단지 우리에게 믿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다. 그는 우리를 창조에서 시작하여 구원의 완성에 이르러서는 절정에 이르는, 믿음의 이야기로 초대하고 있다. 그리고 창조의 노래를 진정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의 귀뿐이다.
창조의 노래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 노래가 작곡가의 영광을 노래한다는 점에 있다. 히브리서 11장 3절은 우리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의 창조물을 통해서 뭔가 알 수 있게 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믿음이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다름 아니라 우리를 인도하는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창조를 통해서 예술 작품을 보고 또 말씀을 통해서 그분의 목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이야기 뿐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까지 들려주신다.
노먼 록웰(Norman Rockwell)의 유명한 작품 중에는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한 화가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있다. 그 그림에서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화가는 다름 아닌 록웰, 바로 그 자신이다. 이 그림은 화가의 창의성을 증언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잠시 밖에 나가보자. 창문을 열고 창조의 노래를 들어보라. 믿음으로 자연이 영광스런 창조주와 구세주를, 그리고 우리의 친구되신 그 분을 찬양하는 것을 들어보라. 자연이 부르는 창조적인 노래에 영감을 준 이가 구속의 말씀에도 영감을 주었으며, 또한 그분의 아들을 통해서 가장 극적으로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셨다. 오늘 당신이 그분의 음성을 듣는다면, 그분을 믿고, 순종하며, 창조의 노래에 기꺼이 참여하도록 하라. [복음기도신문]
“ 창조의 노래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 노래가 작곡가의 영광을 노래한다는 점에 있다 ”
에릭 와킨스 Eric B. Watkins | 플로리다주 세인트오거스틴에 위치한 Covenant Presbyterian Church 담임목사. ‘The Drama of Preaching’의 저자.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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