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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전심이란?

ⓒ 복음기도신문

전심(1)

사랑하는 사람의 전심(全心) 즉 “온 마음”을 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가 배타적인 관계 안에서 전심으로 나만을 사랑하기를 바라는 것, 나뉘지 않는 마음을 주는 것을 우리는 간절히 원한다. 역으로 나 외에 다른 이를 사랑한다면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고 극도의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상대방의 전심을 기대한다.

놀랍고도 흥미로운 사실은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전심을 원하신다는 것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 10:12-13)

마음, 뜻, 힘, 목숨 등은 각각 사람의 어떤 면을 가리키거나 강조하긴 하지만, 정확하게 사람의 구성을 설명하기보다는 전인격적인 헌신 곧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생각, 계획, 의지, 삶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분은 제자들에게 전심을 원하셨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 10:37-38)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6)

예수님은 가정을 파괴하려고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자녀를 사랑하는 것을 분명히 기뻐하신다(마 19:19; 엡 6:4). 하지만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에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와 자기 목숨이 걸림돌이 된다면, 그것까지 포기할 수 있을 만큼 예수님만을,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을 사랑하라고 요구하신다.

이단이 강요하는 ‘전심’과 어떻게 다른가?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 종종 다루는 기독교 사칭 이단을 보면 하나같이 신도들에게 이와 같은 “전심”을 요구한다. 교주가 내리는 명령에 절대복종하게 만들고, 재물이나 시간, 재능을 바치게 하고,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와 연을 끊더라도 교주가 가르치는 도에 충성을 다하게 한다. 이단들은 위에서 인용한 말씀을 오용하여 신도를 착취한다. 자기의 노예처럼 사는 것이 곧 하나님께 전심을 다 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도록 만든다.

하지만 몇 가지 이유로 이단이 강요하는 전심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전심과 완전히 다르다. 첫째, 하나님은 은혜로 전심을 불러일으키시지 폭력이나 심판으로 강요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애굽의 노예로 살면서 착취와 핍박 아래 고통으로 울부짖던 자기 백성을 전능하신 손으로 구원하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셔서 자기 백성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여 주심으로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그 사랑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전심으로 자기 하나님을 사랑할 동기와 이유가 되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그 죄에 대한 모든 저주를 받으셨다. 죽기까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신 그 사랑이, 바로 백성이 주님께 전심을 드리는 이유이다. 이단이 신도에게 전심을 이끌어내는 모습을 보라. 각종 폭력과 체벌, 강제 노역, 감금, 강압, 차별, 폭언 등 온갖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이 가득하다.

둘째, 하나님이 전심을 요구하시는 것은 백성의 행복을 위해서다. 많은 이단이 천국과 지옥이라는 종말에 시점을 고정하고, 그때 받을 보상을 위해 혹은 심판을 면하기 위해 지금 모든 것을 다 내놓을 것을 요구한다. 궁핍하고, 규모 없는 삶을 살고, 관계가 끊어지고, 자유를 박탈당하고, 종교에 매여 불행하게 살지만, 그래야만 나중에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는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이 땅에서는 불행하기를 원하실까?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을 정복하고 차지하기 위해 요단강을 하나님과 함께 건넜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함께 부활하여 하늘에 앉힌 바 된 교회는 주님을 통해 모든 좋은 은사를 가지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필요한 모든 것을 아뢰어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분은 자기 백성의 머리카락도 세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하기도 전에 알고 계신 은혜로운 분이시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그리스도인이 서로를 위해 이렇게 간구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들의 영혼을 잘되게 하실 뿐만 아니라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세상과 육신은 왜 ‘전심’을 거부하는가?

이단이 신도의 ‘전심’을 악한 방식과 목적으로 강요한다면, 세상과 육신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올바른 전심을 거부한다. 성경은 이것을 “두 마음”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말고 세상 혹은 자기 육신이 원하는 것을 함께 마음에 품는 것을 말한다.

내가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시 119:113)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8)

야고보는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사랑하려는 행위를 “간음”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 4:4).

예수님은 재물과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사람이 보통 하나님과 함께 마음에 두려 하는 것은 대부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들이다. 건강, 재능, 부, 권력, 명예, 인기… 세상과 육신을 부패시키는 마귀가 하는 일은 하나님에 비길 만한 것들을(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탐스럽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선하고 좋은 것들을 악용하여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선악과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주어진 선한 것이었으나 마귀는 그것을 하나님과 함께 마음에 두는 우상으로 바꾸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선하신 것들이지만 마귀에 의해 하나님과 함께 사랑하고 섬길 우상이 된다.

마귀의 이 전략이 치명적인 이유는 하나님과 함께 다른 것을 마음에 두는 순간, 다시 말해 하나님에 대한 전심이 두 마음으로 변하는 순간, 마귀의 계략대로 하나님은 우리의 원수, 우상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줄 수 없는 헛물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예레미야가 말한 것처럼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유일한 생수의 근원에서 끊어지는 대신 물 한 방울 주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만 잔뜩 갖게 된다(렘 2:13).

마귀가 하는 짓이 참 악하다. 주시는 이는 하나님 아버지이신데, 포장만 그럴듯하게 해서 우리를 현혹하고는 전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에서 떠나 반짝반짝 빛나고 소리도 그럴듯한 빈 상자를 좇아 헛되고 헛된 삶을 살도록 만든다. 세상과 육신은 마귀의 통제 아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전심’을 거부한다. 어떻게든 마음을 쪼개어 하나님을 덜 사랑하게 만든다.

다시 전심으로…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의 배교를 예측하고 이와 같이 말했다.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삼상 7:3). 유다 왕 여호사밧이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 아세라 목상들 등 우상을 제거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이켜야 한다(대하 17:6). 마음과 뜻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전심을 드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는 배타적인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리스도와 함께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큰 배신이 아닌가?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복음기도신문]

조정의 | 유평교회 담임.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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