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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칼럼] 대체신학 이슈와 12 사도 연구 (1)

Ⓒ unsplach

이 글에 앞서 필자는 논문 “대체신학 이슈와 초림 예수 즉위 연구”(본지 연재 제목은 대체신학인가 성취신학인가?”)를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격려 속에 연재했다. 본지는 이러한 독자들의 관심을 반영, 예수의 즉위식과 열두 사도의 이야기에 관한 필자의 계속된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편집자>

목 차

I. 들어가는 말
II. “대체신학 이슈와 초림 예수의 즉위 연구” 요약
III. 예수의 1차 즉위식과 12 사도
IV. 예수의 2차 즉위식과 12 사도
V. 예수의 3차 즉위식과 12 사도
VI. 나가는 말

I. 시작하는 말

“대체신학의 악”, “대체신학은 마귀”, “사탄의 장난 대체신학”, “대체신학의 위험성”, “대체신학의 불편한 진실”, “사탄의 최대의 걸작품 대체신학”, “사탄의 전략-대체신학”, “교회에 스며든 사악한 교리 중 하나”, “대체신학이라는 누룩”, “대체신학은 거짓”, “한마디로 웃기지도 않는 신학”. “대체신학에서 깨어나라”, “모든 이단은 대체신학에서”, “대체신학의 오류와 모순”, “대체신학의 베일”, “대체신학의 허구”, “루터와 히틀러의 대체신학”,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독자적인 언약을 강탈하려는 ‘강탈, 도둑 신학’”, “이스라엘을 못 보게 만든 마귀의 대체신학”, “대체신학은 이스라엘을 열라”, “이스라엘을 못 보게 하는 마귀의 대체신학”, “대체신학과 이스라엘 회복”.

이상은 세대주의자들이 개혁신학을 대체신학이라 비판하는 여러 구호이며, 이들은 모두 다 최근 유튜브 강의 제목들이기도 하다. 강의에 따라 조회 수도 아주 많고, 댓글들도 아주 뜨겁다. 이는 곧 세대주의자들이 개혁주의자들을 향하여 신학적 담론을 펼쳐보자는 우렁찬 외침이기도 하다. 그들은 성경 예언 성취의 주인공은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의 혈통적 후손들인 이스라엘이라는 확신 가운데, 개혁주의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보혈로 구속받은 교회 공동체로 대체하는 것은 마귀 짓이며, 아주 심각한 죄라고 단정한다. 그들은 교회 공동체가 이방인으로서 예수의 보혈 운운하면서 감히 그 주인공의 자리를 탐하면 아니 된다고 주장한다.

세대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예루살렘을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해야 하나님의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구약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가운데 제시하는 대표적인 신조가 둘이다. 하나는 “이스라엘을 축복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면 저주하신다.”(창 12:1~3)이다. 또 하나는 “예루살렘을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하면 형통하게 된다.”(시 122:6)이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심적이다. 이른바 ‘예루살렘 신드롬’ 병에 걸려 예루살렘의 보호시설에 수용된 환자가 1년에 평균 100여 명으로 예루살렘에 대한 기대, 실망, 망상의 정신질환을 겪고 있기도 하다.[1]

한편, 개혁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보혈로 구속받은 교회 공동체 중심적이다. 따라서 개혁신학에 따르면,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축복의 통로로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은 곧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보혈로 구속받은 교회 공동체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공동체가 곧 새 이스라엘이며 참 이스라엘이다. 본 논문의 목표는 곧 예수의 열두 제자와 그들로 대표되는 교회 공동체가 곧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새 이스라엘이며 참 이스라엘로서 회복되는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을 논증하는 가운데, 개혁신학은 대체 신학이 아니라 실체 신학이며 성취신학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논증을 ‘예수의 1차 즉위식과 열두 사도’, ‘예수의 2차 즉위식과 열두 사도’, 그리고 ‘예수의 3차 즉위식과 열두 사도’라는 제목으로 진행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 논문은 필자의 논문 “대체신학 이슈와 초림 예수 즉위 연구”(ACTS 중동연구 2021)에 이어지는 글이다. 따라서 먼저 그 논문에 대한 요약부터 진행하고자 한다.

II. “대체신학 이슈와 초림 예수 즉위 연구” 요약

필자는 논문 “대체신학 이슈와 초림 예수 즉위 연구”에서 개혁신학은 대체신학이 아니라 실체 신학이며 성취신학이라 입증하였다. 감사하게도, 이 논문이 <복음기도신문>에 “대체신학인가 성취신학인가”라는 제목과 “초림 예수 즉위 연구”라는 부제로 6회에 걸쳐 연재되었다(2021.7.3.-21).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셨다(창 32:28; 35:10). 이스라엘(야곱)이 임종하기 전에 열두 아들을 모아놓고(창 49:1), 그의 후손들이 장차 유다왕국을 세우게 될 것이라 예언했다(창 49:8~12).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조부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들이 큰 민족(국가)을 이룰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국가는 곧 유다왕국이 될 것이라고 밝혀진 셈이다. 야곱의 유다왕국에 대한 예언은 다윗의 세 번에 걸친 즉위식을 통해 성취되기 시작했다.

다윗의 1차 즉위식을 앞두고,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삼상 16:1b). 그리하여, 사무엘은 이새의 막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이것이 곧 다윗의 1차 즉위식이 되었다(삼상 16:1-13). 다윗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였지만, 사울에게서 떠났다(삼상 16:13~14). 그리하여, 다윗은 블레셋의 골리앗을 죽이고 그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갔다(삼상 16:54). 다윗의 이와 같은 행동과 사무엘서의 저자의 기록 의도가 각각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유발된다.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의 2차 즉위식이 헤브론에서 그의 동족 유다 지파의 대표들과 더불어 거행되었다(삼하 2:1~7). 칠 년 반이 지난 후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의 다윗에게 기름을 부음을 받음으로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삼하 5:1~3). 우리는 그가 온 이스라엘을 통치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그의 왕궁을 건축하고, 마침내 보좌에 앉았다는 점을 고려해서, “다윗의 3차 즉위식은 헤브론에서 그가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열두 지파의 장로들로부터 기름을 부음을 받아 시작되고, 예루살렘에 건축된 왕궁의 보좌에 오름으로 완성되었다”(삼하 5:11~12)라고 이해하였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 할 때,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 왕조에 대한 약속과 함께 그 왕국이 영원하게 된다는 약속의 말씀을 받았다(삼하 7:1~17; 대상 17:1~15). 그리하여, 그는 후손들이 유다왕국의 왕으로 등극할 때 선포될 여러 즉위/등극 시(예, 시편 2, 89, 132)를 기록했다. 예컨대,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 2:7)라는 구절은 등극 시의 하이라이트이다. 이는 곧 다윗의 후손이 유다왕국의 왕으로 즉위/등극하는 순간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가 된다는 뜻이다. 또한, 그 왕국의 국경은 “땅끝”(시 2:8)으로 선포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친히 영원하리라고 약속되었던 유다왕국이 멸망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종말의 메시아에 대한 다양한 대망이 생겨났다. 바벨론 제국의 포로가 된 다니엘의 경우 그가 환상 가운데 “인자 같은 이의 등극식”을 다음과 같이 보았다.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3~14).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 나이가 영원한 노인의 모습으로 계시하면서, 그의 아들을 “인자 같은 이”로 계시하셨다. “인자 같은 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그가 구름을 타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가는 것을 통해서 확증된다. 구약에서 구름은 하나님의 운반체로 이해되어, 하나님만이 구름을 타고 다녔다(단 7:14).

메시아는 “기름 부음을 받는 자”라는 뜻의 히브리어이고, 영어로는 헬라어 크리스투스에서 유래된 Christ, 한자어로는 基督, 한글로는 기독, 또는 그리스도이다. 구약 시대에는 모든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이 기름 부음을 받아 메시아가 됨으로써 그들의 직책을 각각 수행했다. 특별한 경우로서, 사무엘과 에스겔은 제사장과 선지자로서 이중직을 각각 섬겼고, 다윗은 왕직과 더불어 간혹 선지자직도 겸하여 수행하였다. 그런 가운데, 종말이 되면, 삼중직을 수행할 메시아가 나타나서 이스라엘을 회복한다는 것이 구약의 핵심이다. 그 회복은 메시아의 두 개의 과업 성취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하나는 메시아 왕국 설립이고, 또 하나는 메시아 성전 건축이다(참조, 삼하 7:11~17 등). 유대교와 기독교는 편의상 “종말의 삼중직 수행자로서의 메시아”를 “메시아”라고만 칭한다. 유대교에 따르면, 메시아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기독교에 따르면,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이다. 한편, 이슬람은 메시아가 필요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적 그리스도적이다.

예수의 초림은 종말의 시작점(히 1:2)이고, 또한 성령의 오심도 그러한 시작점의 연장이며(행 2:17~18), 예수의 재림은 소위 종말의 끝(마 24:6; 막 13:7; 눅 21:9)이다. 구약에서 말하는 마지막 때(종말), 즉 메시아 왕국의 도래는 예수의 오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미」와 「그러나 아직 아니」의 시간성의 긴장은 개혁주의 종말론과 그에 따른 개혁주의 신앙과 삶의 기초가 된다.

신약성경에 따르면, 나사렛 예수가 곧 메시아가 되어 그의 과업을 잘 수행하고 있다. 예수께서 메시아 왕국의 왕이 되셔서 그의 왕국을 지금도 통치하고 계신다. 그를 거역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은 그의 재림 때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메시아 왕국은 예수의 초림 사건으로 시작되었고 그의 재림으로 완성된다. 메시아 성전도 마찬가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받은 교회 공동체가 바로 메시아 왕국이요 메시아 성전이다. 메시아 왕국으로 다윗의 집과 메시아 성전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집은 한 집으로 통합이 되었다. 두 집의 주인이 바로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에 의해 하나로 통합된 집이 바로 그의 보혈로 구속받은 교회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교회 공동체, 즉 신자들의 최종적으로 완성된 모습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이다.[2]  한편, 큰 음녀 바벨론은 곧 불신자 공동체이다. 재림 예수께서 그들을 심판하여 불과 유황 못에 던지신다.[3]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의 기초가 되는 가운데 “대체신학 이슈”를 제기하도록 하는 세대주의 조직신학자4)로 널리 알려진 크레이그 블레이징 A. (Craig A. Blasing)은 그의 글 “이스라엘과 성경해석”에서 개혁신학에 기초한 새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그렇다면 새 예루살렘은 어디에 있겠는가? 현재 미국의 오하이오가 될 수가 있겠는가?[5] 새 창조의 세계에서 미국의 오하이오는 새 오하이오가 되고 한국의 서울은 새 서울이 될 터인데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새 예루살렘이 되는 것이라고 이해가 된 것 같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는 두 도시 즉 바벨론과 예루살렘이 각각 불신자 공동체와 신자 공동체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바벨론은 큰 음녀 바벨론으로 칭함을 받으며 심판을 받고 새 예루살렘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공이 된다. 예루살렘이 아닌 오하이오나 서울에서 사는 자들 가운데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 공동체에 속하는 자도 있다. 또한, 오하이오나 서울이 아닌 예루살렘에 살아도 큰 음녀 바벨론 공동체에 속하여 심판받을 자들도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되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공으로서의 교회 공동체가 곧 새 예루살렘이 된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기에 진정한 기독교는 교회 공동체로서의 새 예루살렘 중심적이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에 거하지 않고 새 예루살렘, 즉 그의 보혈로 구속받은 교회 공동체에 거하신다. 성경 예언 성취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이고, 그 성취의 장은 땅끝까지 이르는 온 세상이다.

예수의 즉위식/등극식/대관식도 다윗처럼 세 번에 걸쳐 거행되었다. 그런데, 예수의 세 번에 걸친 즉위식이 거행될 때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성부 하나님이셨다. 성부 하나님께서 친히 성자 예수의 즉위식을 세 번에 걸쳐 거행하셨다. 세 번은 곧 예수께서 ① 세례를 받으실 때, ② 변화산에서 변화되셨을 때, ③ 베다니에서 “호산나…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찬송을 받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직후였다. 특히, 종말론 주제만이 아니라 모든 신학의 주제에 있어서 유일무이한 최대 학자라고도 일컬어질 수도 있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 번째 하늘의 소리를 사탄의 폐위와  그 자신의 즉위로 친히 해석하셨다(요 12:31). 이는 곧 초림 예수의 즉위론이 옳으며, 천년왕국이라 널리 알려진 메시아 왕국이 이미 출범되었다는 뜻이다.

다윗의 세 번에 걸친 즉위식은 초림 예수의 세 번에 걸친 즉위식을 위한 그림자가 되고 예표가 되었다. 그리고 다윗 언약에 기초한 즉위 시와 다니엘이 환상 가운데 본 “인자 같은 이”의 즉위식은 각각 예언적 말씀으로 초림 예수의 즉위로 모두 다 성취되었다. 이는 곧 구약과 신약은 서로가 유기적 관계이며, 구약의 이스라엘은 예표나 그림자나 예언이며, 신약의 예수와 그의 교회 공동체는 그 실체와 성취 관계라는 뜻이다. 따라서 개혁신학은 ‘대체 신학’이 아니라 ‘실체’ 신학이며 ‘성취’ 신학이다.

“초림 예수의 즉위론”에 기초한 개혁신학에 따르면, 메시아 예수께서 공생애를 마치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메시아 왕국의 왕이 이미 되셨다. 따라서, 메시아 왕국은 곧 예수의 공생애 사역의 결과로 이미 출범되었다.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셨던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좌정하신 후 성령으로 그 왕국을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 왕국의 국경은 땅끝이며, 백성은 곧 그의 보혈로 구속받은 교회 공동체이다. 또한, 이는 그들이 곧 회복되는 이스라엘이며, 그 회복의 대상은 야곱의 혈통적 후손들만이 아니라 모든 아담의 후손들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메시아 왕국에 대한 현 천년론에 입각한 개혁주의적 이해가 요한계시록 20장에서 유일하게 언급되고 있는 천년왕국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다시 말해서, 이 왕국은 예수의 초림으로 시작되었고 그의 재림으로 완성된다. 또한, 그의 재림 때 그의 교회 공동체는 온전하고 완벽하게 회복된 에덴으로서 새 예루살렘이라 일컬어진다. 한편, 그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 불신자들은 큰 음녀 바벨론이 되어 심판받는다. 재림 예수께서 그렇게 완성된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친다(고전 15:24~28). 이 “초림 예수의 즉위론”이 “무천년설”이라는 이름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실현되고 있는 천년설”, 또는, “현 천년설”이라 일컬어지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천년의 “천”은 긴 기간을 의미하는 상징 수이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1] Simon Sebag Montefiore, 『예루살렘 전기』, 유달승 역, (서울: 시공사, 2012), p. 16.

[2] 이필찬,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서울: 성서유니온, 2002). 246.

[3] G.K. Beale, D.A. Carson, A.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Use of the Old Testament. Baker Academic, (Grand Rapids, Michigan 2007), 621.

[4] Craig A. Blaising, “The Future of Israel as a Theological Question,”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44:3 (2001): 435. 

[5]  Blaising, Craig A. 외, 『이스라엘 민족 영토 그리고 미래』 김진섭. 권혁승 역, (서울: 이스트 윈드, 2014),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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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 아신대학교(ACTS) 선교대학원 교수 및 GMS 아랍권 선교사(천안장로교회 파송. since 1989). 그의 책으로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CLC, 2009)과 아랍권 및 이슬람권 선교와 관련된 여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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