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단 하나의 의미, 즉 문자(文字)적 의미만을 지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설령 비유나 풍유를 사용하고 있을지라도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문자적인 의미이다. 문자적인 의미는 모든 것의 뿌리요 기반이고 결코 실패하지 않는 닻이기에 그것을 고수하면 실수를 범하거나 곁 길로 빠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가장 기초가 되는 문자적인 해석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 윌리엄 틴데일.『그리스도인의 순종』 (The obedience of a Christian Man, 307) 에서.
문자의 중요성(א)
20세기를 거쳐 현금 성경 해석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 방법은 굉장히 다양하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현란한 수많은 해석 방법들이 있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문자(文字), 문법(文法), 문학(文學), 문맥(文脈)에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해석해 가는, 일명 사문(四文) 성경 해석 방법을 좀 구체적으로 성경의 예를 들어 가면서 함께 보고자 한다. 아마 이 연재가 끝나면 4월 16일 “한국교회 성경해석 무엇이 문제인가?” 밴드에 문제를 제기했던, 왕상 13장을 다룰 것이다. 인내함으로 기다려 주기를 바란다.
기차 레일(rail)을 벗어난 한국 신학교 & 교회
유대인의 대화 기술에는 상대방과 대화할 때 망치로 상대방의 머리를 한번 치고 대화하라는 말이 있다. 상대방의 머리를 한번 치면 어떻겠는가! 그 충격에 정신을 잃고 말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는 주도권을 잃지 않고 제압하여 이끌고 가라는 의미라고 생각되어진다.
나도 오늘 성경 해석에 있어서 수많은 방법들이 있지만 가장 기초가 되고 중요한 문자적(文字的, literal)인 성경 해석을 다룸에 있어서, 이 테크닠(기술)을 한 번 사용해서 들어가고 싶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 문자적인 성경 해석이 중요함은, 위의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의 초두 글에 명확하게 요약되어 잘 나타나 있다. “Sola Scriptura!“(오직 성경으로!) “Ad Fontes!” (오리지널 텍스트로!) 이는 종교개혁자들이 생명을 걸고 싸워 얻어 쟁취해 내서 교회에 가장 값진 유산으로 남겨 준(지금은 이를 무시하고 버렸지만), 기차 두 레일(railway line)과 같은 성경 해석의 원리이자 기본 원칙이다.
여기서 내가 사용한 “문자적”이란 뜻은 전반적으로 넓은 의미라기 보다는 히브리 문자(letter of alphabet) 그 자체에 국한되는 협소한 의미이다. 따라서 문법적 해석과 문학적인 해석은 따로 구별하여 설명 될 것이다.
문자를 초월한 언어
히브리어로, “문자”(文字, letter)는, 문자 그 이상을 초월한다.
히브리 문자는 다른 언어와 달리 그 히브리어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성(獨特性, uniqueness)이 있다. 사실 모든 언어의 문자는, 문자(letter)에 불과할 뿐이고 소리를 내는 기호(simple sign)일 뿐이다. 그러나 히브리어는 단순한 문자가 아니다. 히브리어로 문자(letter)를 “אוֹת”(오트)라고 한다. 그러나 히브리어 “אוֹת”(오트)는 “문자”라는 뜻이 있을 뿐 만 아니라 “기적”(miracle)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가 “עִבְרִי”(이브리, 무서워 벌벌 떨고 믿음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한 우리 인생가운데 넘어가게 하는 힘과 능력을 가진 언어) 될 수 있는 이유다.
출애굽기 4:8-9절을 보자.
וְלֹא יִשְׁמְעוּ, לְקֹל הָאֹת הָרִאשׁוֹן וְהֶאֱמִינוּ לְקֹל הָאֹת הָאַחֲרוֹן. גַּם לִשְׁנֵי הָאֹתוֹת הָאֵלֶּ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그)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그들이 이 두 이적(표적)을 믿지 아니하며
히브리어로 문자(letter)는 바로 ”אֹת”(אוֹת =오트), “기적”이다!
(In Hebrew, letter is miracle!).
히브리어는 장벽을 뚫고 넘어가게 하는 기적의 언어! “עִבְרִי ”(이브리) 이다.
참으로 놀라운 선언이다. 히브리어를 그냥 문자로 알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히브리어 세계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기적의 세계로 들어가는 환상적인 경험을 나는 늘 텍스트 앞에서 마주하곤 한다. 히브리 텍스트 앞에 서면 단순한 부호의 문자가 아닌, 내 영혼에 기적을 일으키는 감동에 사로잡힌다. 극적인 감동과 승리의 사건, theophany, 神顯(신현)을 동이 터오는 새벽에 영혼의 감격으로 맞이하는 주를 향한 갈망(渴望), 이 생생한 기적을 경험한다.
이것이 바로 히브리어와 다른 언어의 커다란 차이다.
커다란 차이는 슈퍼 이지!(Super-easy!)
그런데 다른 언어와는 커다란 차이를 내는 언어가 히브리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난 참… 바벨론어라면 몰라도?!”
아니 당연히 아브라함의 언어, 그가 태어나서 부터 70년을 넘게 사용해 온 언어, 그 언어 바벨론어를 써 야지, 언제 그 노인이 새로운 땅에 와서 정착하기도 힘든데, 새 언어 가나안어인 히브리어를 배워서 쓴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우리 초등학교 때부터 해도 안된 영어 때문에 얼마나 골머리가 아픈가?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여간 힘드는게 아니다. 그렇지 않는가?
그러나 성경을 보면 그 이유가 있다. 이스라엘의 조상의 언어가 바벨론어가 아니라 히브리어가 되어야 만하는 이유가, 그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바로 그건 히브리어가 슈퍼 이지(Super-easy) 언어이기 때문에 그렇다.
언어의 혁명을 거쳐 탄생한, 성경이 기록된 히브리어는 쉬운 언어가 아니고, 매우 쉬운 언어가 아니고, 최고로 쉬운, 슈퍼 이지 언어(Super-easy) 이다. 행여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으면 좋지 않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의도는 매우 긍정적이다. 히브리어도 안티-쎄미(anti-semi) 때문에 고난을 이빠이(いぱい.충분히) 받았다. 그러나 히브리어는 온갖 고난을 이기고 부활한 특별한 언어, “עברית”(이브리트) 였다. 인류 언어사에 죽었다가 살아난 언어는(다 조사는 해보지 못했지만) 거의 없다.
온 열방에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기에 가장 적합한 언어가 히브리어였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당연히 바벨론어를 사용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어를 사용했고 히브리어를 유산으로 받았다. 그리고 그 언어로 구약 성경이 쓰여졌다. 신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한 우물을 파온 나는 이 독특한 언어의 신비한 매력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긴 세월을 보냈고 지금은 히빼시가 되어버린 운명(고난을 각오한)이 되었다. 참으로 놀랍다!
나는 주님의 은혜 덕분에 가나안 땅, 이스라엘에서 아브라함이 사용했던 그 언어, 바벨론어(아카드어)를 2년 넘게 배웠다. 얼마나 어휘가 많고 보아도 알 수 없는 그림 같은 언어가 풍부한지! 나의 연구실에는 믿음의 조상 그 분이 사용하셨던 언어, 무려 25권이나 되는 사전이 있다. 그러나 히브리어 사전은 BDB 사전 고작 1권 뿐이다. 분량이 그러니, 상식으로 보아도, 바벨론어에 어찌 히브리어가 경쟁상대가 되겠는가! 차로 사전을 싣고 다니면서 공부해야 할 언어,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언어를 택하지 않았다. 놀라운 일이다!
세상에 연약한 것들을 택하사
히브리어! 유다가 멸망하고 온 나라가 흩어지면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기에 이스라엘의 학풍 전체가 바벨론으로 떠밀려갔다. 바벨론 학파, 우리말로 하자면 한글 연구 서울대학교 학파가 거기서 뭉친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 성경 전수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해 온, 맛쏘라 성경 모음문자 체계는 그 유명한 바벨론 학파를 따른 것이 아니라 볼품없는 티베리안 학파의 모음 체계가 채택 되었다.
유학 시절, 하도 신기해서 구약성경 맛쏘라 텍스트 수업 시간에 교수님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되었지요? “신비”일 뿐이라는 교수님의 대답이였다. 참으로 놀라운 신비다. 언어 뿐 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보면 항상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여 그렇게 흘러갔고 지금도 영안이 열린 자만 볼 수 있는 그 지류를 따라 생명은 흘러간다.
사도 바울의 말을 들어 보라
고전 1:26-29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어!
넘어가는 사람(עִבְרִי)들이 썼던, 죽었다가 몇 천년 후에 부활되어 지금 쓰고 있는 “עִבְרִית” 이브리트! 북서 셈족어(North-west Semitic language) 가운데 가장 적은 22개의 알파벳으로 구성된, 22개 가운데 두 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처음부터 은혜(공짜)로 주시어, 20개면 되는, 하나님의 호의와 은혜가 담겨진 언어, 어떻게 가장 적은 숫자의 알파벳에,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는 문법에, 어찌 그리 다른 언어보다 풍부한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 놓으셨는지! 히브리어를 만난지 30년이 넘었지만 볼 때마다 정말 감동이요 기적이다.
나는 구약을 공부했기에 여러 언어들을 공부했다. 아카드어-우가릿어-아람어-아랍어-성경히브리어-현대히브리어-영어-독어-불어 등, 지금은 일본어를 배우고 있는데 알파벳만 히라가나. 카타카나 자그마치 100 개에 가깝다. 그것만 외우기도 벅차다. 난 아직까지 고대어나 현대어나 히브리어 같은 언어를 만나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만난 일이 없을 것이다. 은혜의 언어를! 내 영혼에 기적의 언어를!
나 같은 무능하고 연약한 사람이 히빼시가 되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은혜요 신비로다!
To be continued 계속됩니다. [복음기도신문]
김명호 | 헤브론선교대학교 성경언어대학 교수. 복음과 기도의 기초 위에 성경의 원어 연구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을 위한 다음세대를 세우는 사역으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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