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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자기 주장으로 넘치는 세상, 급진적 태도로 현실을 적시하라

▲ 사진: unsplash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당파적 주장에 빠져있어서 제대로 된 현실을 보지 못한다. 이런 현실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할 교회에서조차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은 참으로 비극이다

나는 오늘날 서구 문화에서 가장 크게 떠오르는 갈등이 반드시 정치적 좌파와 우파 사이에 발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편의 주장(narrative)이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을 때조차도 그 현실에 맹렬하게 헌신한 사람들과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고 현실보다 주장 그 자체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사람들 간에 일어나는 갈등이다. 

미국에서는 COVID-19가 바로 여기에 딱 맞는 사례를 제공했다. 전염병에 대한 접근 방식이 정치적 주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적지 않은 우파가 존재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코로나에 대한 그들의 자세는 현실을 정직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유모 역할을 하는’ 거대 정부의 과도한 권한, 부패한 대형 제약회사, 개인의 자유 침해, 정부 통제의 수단으로서의 백신이라는 그들의 주장이 그들에게는 현실이 되었다. 어떤 수준의 과학적 합의나 통계도 그들로 하여금 그런 주장을 재고하게 하거나 최소한 복잡하게 만들지도 못한다. 

좌파 진영에도 비슷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 결과 그들은 객관적인 현실보다 자신들의 주장과 편견에 더 우선순위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안 쓰는 사람은 무조건 백신 혐오자나 또는 인류 학살을 좋아하는 보수주의자라는 식의 생각이다. 

아틀란틱(The Atlantic)에 실린,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진보주의자에 관한 기사인 ‘폐쇄를 중단할 수 없는 사람들’에서 엠마 그린(Emma Green)은 이렇게 썼다. “COVID-19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진보주의자들은 증거에 의해서 지지받지 않는 정책과 행동을 계속 수용하고 있다. 운동장 출입 금지, 해변 폐쇄, 대면 학습을 위한 학교 재개 거부 등이 그것이다.”

현실을 향한 감정보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사실에 비추어 사는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주장과 분노보다 증거와 논리에 의해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이야말로 진정한 급진파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당파적 주장에 빠져있어서 제대로 된 현실을 보지 못한다. 이런 현실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할 교회에서조차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은 참으로 비극이다. 궁극적으로 주관적인 주장이 경쟁하는 이 세상에서 보다 많은 기독교인이 급진적인 태도로 바른 현실에 올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정보 환경에서 사람들의 주장이 왜 그렇게  흡수력이 좋은지, 그 이유를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왜 특정 주장에 빠지는가?

인간은 항상 불편한 현실보다 나를 편하게 해주는 이야기를 선호하는 유혹 속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그런 인간의 본성은 뱀의 이야기를 믿은 하와의 선택에서 시작되었다(창 3:1-7). 그러나 오늘날 현대 기술 시대에는 이런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특정한 역학 관계가 있다. 여기 세 가지를 소개한다. 

1. 우리는 차고 넘치는 정보에 짓눌리고 있다 (특정 주장은 따라서 더 쉽다) 

너무 많은 기사, 연구, 통계, 의견 및 ‘전문가’ 권장 사항과 같은 정보로 가득 찬 세상에서 현실의 핵심에 도달하는 것은 어렵고 때로는 아예 불가능해 보인다. 

끝없이 쏟아지는 정보가 뇌를 강타할 때,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깔끔한 주장을 반영하지 않는 정보는 그냥 배제하는 게 모든 증거를 검토하면서 그 증거가 말하는 진짜 현실이 무엇이지 일일이 확인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다. 이미 갖고 있는 주장에 적합한 새로운 데이터만 그때그때 빠르게 연결하는 것은 정보 과부하의 세계에서 살아남도록 하는 하나의 메커니즘이다. 

이런 상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이것은 나태한 것이며 심지어 매우 위험하기까지 하다. 현실은 종종 우리가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현실을 바로 파악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힘든 노력이고 인내를 요구한다. 

2. 우리는 너무 조급하다 (특정 주장은 빨리 알 수 있다)

사실을 수집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특정 주장은 빠른 답변을 제공한다. 모든 복잡한 영광(glory) 속에서 현실을 발견하는 것은 시간을 요구한다. 즉각적인 만족을 약속하는 세계에서 누가 인내심을 가지고 있는가? 현실을 특정 주장으로 깔끔하게 바꾸는 선택이 훨씬 더 만족스럽다. 그리고 세상은 그런 주장을 팔고 있다. 

뉴스 속보가 발생하면 특정 주장을 양산하는 기계들이 작동하며 새로운 ‘증거’를 기존 주장 속에 포함시킨다. 2016년 펄스(Pulse) 나이트 클럽에서 학살이 있었을 때, 그 사건은 즉시 동성애 혐오 주장 속으로 편입되었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머리에는 그런 프레임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서 수년에 걸쳐 위세를 떨치던 ‘동성애 혐오 증오 범죄’라는 주장이 와해되었다. 너무도 빠른 뉴스 주기 속에서 사는 우리는 잘못된 주장을 수정하기 위해 오래된 뉴스를 검색하지 않는다. 일단 어떤 주장이 집단적으로 채택되면 사실과 상관없이 후대 사람들에게 그 주장은 ‘현실’이 된다. 

3. 우리는 너무 자기 중심적이다 (특정 주장은 그런 우리를 만족시킨다)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 때문에 현실보다 특정 주장을 더 중시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바로 인간이 자기 중심적인, 죄 많은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특정 주장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것을 우리 맘대로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통제하려는 우리의 시도에 저항한다. 죄인 된 우리는 현실이 우리에게 아무리 틀렸다고 말해도 나 자신에게 ‘옳다’는 느낌을 주는 특정 주장을 더 선호한다. 

그리고 특정 주장으로 인해 우리 스스로가 가지는 느낌을 좋아하기 때문에 (기존 편견을 확고히 하고, 내가 가진 견해의 정당성까지 확신시키는) 특정 주장을 담은 뉴스는 잘 팔리기 마련이다. 게다가 내가 믿고 싶은 뉴스만 더 많이 보게 만드는 알고리즘은 우리를 소셜 미디어에 더 중독되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해당 광고주에게 더 많은 돈을 벌도록 한다. 

이것은 말 그대로 악순환이지만, 그럼에도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고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부인하는 자세를 갖지 않는다면 이런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다. 자아 밖에 존재하는 진리를 향한 겸손한 복종만이 우리를 특정 주장으로 왜곡된 거품과 교만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특정 집단을 넘어 진리로

나는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의 전 칼럼니스트인 바리 와이스(Bari Weiss)가 서브스택(Substack) 뉴스레터 창간 목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 것을 보고 감탄했다. “이 뉴스레터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누군가가 원하는 모습으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게 아니다. 어떤 팀이나 특정 집단의 안락함이 아니라, 진리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뉴스레터다.”

어떤 팀이나 특정 집단의 안락함이 아니라, 진리를 찾는 사람들.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을 이 세상에서 찾으라고 하면, 그것은 기독교인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문화적, 정치적, 개인적 주장이 주는 편안한 애착을 포기할 때에만 가능하다. 

교회는 각종 주장이 난무하는 세계에서 바른 현실을 가장 분명하게 옹호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우리에게는 진리의 기초(성경)와 해방의 진리(예수)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완전하고도 진정한 주장이다. 성경의 주장은 현실을 뒤집는 게 아니라 현실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한 기준과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도록 하는 렌즈를 제공한다. 

내가 작년에 ‘에코 챔버를 탈출하라. 지금은 설득할 때다(Exit the Echo Chamber. It’s Time to Persuade)’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파가 아니라 선지자다(We Need Prophets, Not Partisans)’에서 주장했듯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당파적 권력이나 집단 내 지위를 요구하기보다는 초월적인 진리를 위해 싸워야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든 면에서 많은 기독교인이 현실보다는 특정 주장을 더 강조하고 있고 또는 특정 주장이 그들이 인식하는 현실을 결정하도록 만들고 있다. 바로 이런 상황이 오늘날 우리 복음주의권을 찢어놓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쓴 ‘지혜의 피라미드(The Wisdom Pyramid)’에서 이렇게 제안했다. 이제는 기독교인들이 각종 주장을 쏟아내는 매체(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좀 더 많은 시간을 우리로 하여금 현실 속에 뿌리박게 하는 소스(성경, 교회, 자연)에서 보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초월적이고, 시간을 통해 검증되고 손에 잡히는 진짜 현실을 보라는 것이다.

성경과 기독교 전통 안에는 각종 주장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도 현실에 뿌리박도록 하는 충분한 자료가 담겨있다. 지혜를 형성하는 자원에 시간을 쏟자. 트럼프 탄핵과 같은 음모론에 쏟을 시간을 성경에 쏟도록 하자. 스쳐 지나가는 잡담 같은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에 교회가 이천 년 동안 쌓은 전통으로 나 자신이 만들어지도록 하자.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헛되고 추상적인 유혹을 떨쳐내고 창조를 통해 드러내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자연과 생물학 속에서 나 스스로를 제한하도록 하자. 

하나님이 만드신 현실, 그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현실은 내가 만들고 나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는 인간의 헛된 주장보다 훨씬 더 큰 만족을 준다. 기독교인이여, 헛된 주장이 아닌 하나님을 드러내는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싸우자. 

우리는 당파적 권력이나 집단 내 지위를 요구하기보다는 초월적인 진리를 위해 싸워야한다

브랫 맥크레켄 Brett Mccracken | 미국 TGC의 편집장. Southlands Church에서 장로로 섬기고 있으며, ‘Hipster Christianity: When Church and Cool Collide’를 비롯하여 여러 권의 책 저술.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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